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항로유지보조금의 최대 수혜가 예상되는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photo 신화·뉴시스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항로유지보조금의 최대 수혜가 예상되는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photo 신화·뉴시스

코로나19 진원지였던 중국의 국유항공사들이 막대한 정부보조금을 무기로 다시 떠오를 채비를 꾸리고 있다. 중국 민용항공국(민항국)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간 기록한 중국 항공업계의 영업손실액은 245억9000만위안(약 4조2358억원). 이 중 항공사의 손실만 209억6000만위안에 달한다. 이에 중국 재정부와 민항국은 후베이성 우한(武漢) 봉쇄를 단행한 지난 1월 23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중국과 항로를 유지하는 모든 국제항공편을 대상으로 비행거리와 좌석수 기준으로 좌석당 0.0528위안(복수 취항 노선의 경우 0.0176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0.0528위안(약 9원)은 비록 푼돈에 불과해 보이지만, 승객이 없어 비행기를 띄울 수조차 없는 요즘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가령 중국 최대 항공사인 중국남방항공이 광저우(廣州)와 미국 뉴욕 간 1만2852㎞(약 7985마일) 구간에 361석을 갖춘 B777 항공기를 계속 띄운다고 치자. 남방항공은 해당 구간에 단독 취항하기 때문에 거리와 좌석당 0.0528위안의 보조금을 적용받아 왕복 운항에 약 49만위안(1만2852×361×0.0528×2)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한국 돈으로 약 84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해당 구간의 왕복항공권을 5000위안(약 86만원)으로 계산했을 때, 정부가 약 98명분의 왕복항공권 값을 항공사에 직접 현찰로 꽂아주는 셈이다.

이런 계산에 따르면,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노선은 대략 편당 3만~5만위안(약 861만원), 미주와 유럽 노선은 10만~30만위안(약 5173만원)의 항로유지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지난 1월 23일부터 3월 3일까지 중국 각 항공사가 수령할 보조금을 계산하면, 중국국제항공 1억7700만위안(약 305억원)을 비롯해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이 각각 1억6800만위안(약 289억원), 1억2700만위안(약 21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밖에 하이난(海南)항공은 5000만위안, 춘추(春秋)항공은 1900만위안, 길상(吉祥)항공은 785만위안의 보조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출과 달리 고스란히 항공사 수익

항로유지보조금은 항공사에 직접 주는 것이라서 운영자금을 은행 긴급대출 형태로 빌려줬다가 나중에 회수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따른 최대 수혜는 중국발 국제선 단독 취항 비중이 높은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과 2, 3선 도시발 해외 운항 비중이 높은 중국 최대 저가항공사(LCC) 춘추항공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국제항공과 춘추항공의 국제선 운항 비중은 각각 40%와 36%에 달한다.

중국 민항국에 따르면, 항로보조금은 중국에 취항하는 외국 국적항공사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지급된다. 가령 베이징과 뉴욕 간 1만971㎞(6817마일)에 중국국제항공과 함께 취항하는 미국 유나이티드항공 역시 293석 규모의 B787 항공기를 띄우면 약 11만위안(약 1897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외항사들이 승객 감소에 따른 항로 구조조정에 착수하더라도, 승객을 태우지 않아도 보조금이 나오는 중국 항로는 구조조정 우선순위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항공당국은 항로보조금이란 무기를 통해 자국 항공사들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도산하는 것을 막고, 외항사 네트워크를 최대한 유지해 동아시아 허브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반면 국제선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항공사들은 거의 유일하게 흑자가 나는 김포(서울)~제주 노선과 같은 내수시장만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체력이 없다. 이에 코로나19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국적항공사들이 연쇄 도산하면, 막대한 항로보조금을 무기로 회생한 중국의 국유항공사들이 한·중 하늘길을 독식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한·중 하늘길에서 현실화하는 것이다.

중국 국유항공사들은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막대한 정부보조금을 무기로, 열악한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한·중 하늘길을 야금야금 잠식해왔다. 코로나19 사태 전에 중국의 3대 국유항공사에 지급된 각종 정부보조금은 이미 수조원대 규모다.

중국 민항국에 따르면, 상하이를 모항으로 하는 중국동방항공이 지난해 63억2400만위안(약 1조853억원)의 보조금을 받은 것을 필두로, 광저우를 모항으로 하는 중국남방항공과, 베이징을 모항으로 하는 중국국제항공이 각각 41억5200만위안(약 7137억원), 36억1400만위안(약 6212억원)의 정부보조금을 받았다. 지난해 기준 국내 1위 외항사인 동방항공만 놓고 보면 국내 1위 저가항공사(LCC) 제주항공의 지난해 매출(1조3840억원)에 맞먹을 정도의 보조금을 받고 있었던 셈이다.

자국 항공사에 대한 막대한 정부보조금 지급은 거의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3대 국유항공사는 2018년에도 동방항공이 54억3000만위안(약 9352억원)을 수령한 것을 필두로, 남방항공이 44억5000만위안(약 7668억원), 중국국제항공이 31억3000만위안(약 5393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심지어 민간항공사인 춘추항공도 같은 해 11억4100만위안(약 1966억원)의 정부보조금을 받았다.

막대한 보조금을 받다 보니 정부보조금이 항공사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동방항공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43억200만위안이었는데, 정부보조금은 63억2400만위안에 달했다. 영업이익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47%에 달하는 것이다. 남방항공 역시 지난해 받은 정부보조금이 41억5200만위안으로 영업이익(26억5100만위안) 규모를 훨씬 웃돌았다. 결국 중국 항공사들은 중국 국민들이 내는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막대한 보조금을 기반으로 중국 항공사들은 문어발식 경영도 지속할 수 있었다. 중국국제항공이 선전항공·마카오항공·다롄항공, 중국남방항공이 샤먼항공·충칭항공, 중국동방항공이 상하이항공 등 지역 항공사들을 두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3대 국유항공사와 각 지방정부 등이 합작해서 운영하는 지역항공사들은 실질적으로 3대 국유항공사들의 지배를 받는 자회사 형태다.

‘4월 위기설’ 나도는 항공업계

이에 우리 항공당국도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중국 항공사에 한·중 간 하늘길을 통째로 내주기 전에 항공업 구조조정과 함께 실질적인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제주항공이 인수하기로 한 이스타항공이 임직원 300여명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에어부산, 에어서울 인수를 결정한 HDC현대산업개발도 인수 포기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신규 면허를 발급받은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3사는 아예 날아보기도 전에 개점휴업할 판이다. 4월 중 1~2개 항공사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도 업계에 나돈다.

국내 항공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해부터 신규 항공사(플라이강원·에어로케이·에어프레미아) 추가진입에 따른 과당경쟁과 징용공 판결에 이은 반일(反日) 불매운동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미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김포(서울)~하네다(도쿄) 등 주요 노선 이외에 취항이 자유로운 국적항공사의 한·일 노선 운항 비중은 25%로 한·중 노선(16.8%)보다도 높다. 이에 지난해 미주와 유럽 노선 운항 비중이 높은 대한항공이 290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을 제외하고 아시아나항공(-3683억원), 제주항공(-329억원), 진에어(-491억원), 티웨이항공(-192억원), 에어부산(-505억원) 등 모든 국적항공사가 일제히 적자로 전환한 상태였다.

반면 코로나19로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대책은 저비용항공사(LCC) 대상 긴급운영자금 3000억원 대출 지원에 이어, 착륙료와 정류료 등 각종 감면 656억원을 비롯해 납부유예 5005억원 등에 그친다. 이는 중국 국유항공사 1곳이 평시에 받은 보조금보다 적은 금액이다.

물론 항공사에 직접 지급되는 보조금은 평시에는 자원분배를 왜곡시키는 등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중국에서도 자국 항공사에 지급되는 막대한 보조금 때문에 항공사가 서비스 개선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자국민들이 보조금 덕분에 싼 자국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 물 쓰듯 외화를 쓰고 오는 등의 문제로 항공사 보조금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마련된 항공사 보조금으로 부유한 계층의 해외 원정쇼핑을 우회 지원한다는 비판이었다.

동아시아 각국 항공산업 보호 사활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서 항공사에 직접 지급되는 보조금은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항공사 도산을 막고 수출입에 필수적인 항공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등 상당한 역할이 있다. 동아시아 경쟁국들 역시 항공산업 유지를 위해 싱가포르가 3억5000만싱가포르달러(약 2993억원), 홍콩이 20억홍콩달러(약 3146억원), 대만이 43억대만달러(약 1742억원) 등 각종 형식의 보조금을 항공업계에 지급하기로 한 상태다. 한번 추락하면 동아시아 항공 경쟁에서 영원히 도태될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 항공사에 580억달러(약 72조원)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각국이 항공사 지원에 나서고 있는데 중국의 항로유지보조금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국제항공과의 한 관계자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국적사와 외항사를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중국에서 어떻게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아직까지 중국과 같은 방안은 검토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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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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