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촬영한 신반포15차 아파트 재건축 부지.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16일 촬영한 신반포15차 아파트 재건축 부지.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 1번 출구와 멀지 않은 곳에 신반포15차 아파트부지가 있다. 총 180가구 규모에 불과했던 신반포15차는 규모로는 ‘아담한’ 아파트다. 재건축을 한다 하더라도 600여 가구에 불과한 이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을 둘러싸고 건설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반포15차 아파트는 국내 최고가 아파트 단지인 ‘아크로리버파크’와 바로 붙어 있다. 아크로리버파크가 재건축되던 2014년 통합 재건축도 잠시 논의됐지만 무산됐다. 2017년에는 후분양제를 내세운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었지만 공사비 문제로 지난해 말 계약이 해지됐다. 이후 조합원 논의 끝에 새로운 입찰 절차를 진행 중이다. 본래 4월 초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시공사 선정을 위한 조합원 총회를 4월 23일로 미뤘다.

신반포15차 재건축 수주에 뛰어든 건설사는 삼성물산, 대림산업, 호반건설 등 총 3곳이다. 삼성물산은 5년 만에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림산업은 신반포15차 재건축을 수주해 인근 아크로리버파크와 함께 신반포지역에 ‘아크로 타운’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여기에 지방건설사인 호반건설은 신반포15차 재건축을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올라서려는 계획이다. 세 건설사가 각기 다른 이유로 재건축 수주에 뛰어들면서 다른 재건축 지역보다 뜨거운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여간해서는 아파트 건축 시장에 참여하지 않던 삼성물산은 그동안 신도시나 택지지구 등 신규 부지에는 아예 아파트를 건축하지 않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일부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만 참여해왔다. 그나마도 최근 5년간은 대부분 참여하지 않다가 올해 신반포15차와 반포주공1단지 아파트 3주구 입찰에 참여해 건설업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으로 불리는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역시 HDC현대산업개발이 기존 시공자로 선정됐었지만 공사비 관련 문제로 조합과의 계약이 해지됐다. 현재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두 사업자가 이곳에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당초 6개 사가 입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4개 사가 빠졌다. 삼성물산은 이곳에 ‘구반포 프레스티지래미안’이라는 브랜드를 내밀고 수주 경쟁 중이다.

삼성물산은 신반포15차재건축조합에 ‘래미안 원펜타스’라는 브랜드를 제시했다. 브랜드 인지도에서 앞서는 데다 그간 재건축에 참여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참여하기 때문에 희소성 측면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한 관계자는 “신반포15차의 경우 내부에서 현재 수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업계 내부에서는 삼성물산이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는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재건축은 안전진단과 정비구역지정을 거쳐 조합을 결성한 뒤에도 사업시행 인가, 관리처분계획 인가 등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착공에 돌입할 수 있다. 절차상 사업 초기일수록 불확실성이 높은데, 이미 모든 절차가 끝나고 계약이 해지된 사업장에만 들어가 ‘브랜드 파워’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물산도 할 말이 있다. 재건축 시장은 쌈짓돈과 소송전이 오가는 복마전인데, 사내 컴플라이언스가 특히 강력한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의 경우 재건축조합과의 딜에서 경쟁사들에 비해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금전을 주든 받든 사내 컴플라이언스에 걸리면 무조건 한 방에 ‘아웃’”이라며 “확실한 건이 아니면 차라리 수주전에 입찰하지 않아온 이유”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건설업계에서는 보수적으로 경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대기업 건설사들과 함께 건설 설계를 진행하는 대형 설계사무소의 한 설계사는 주간조선에 “함께 일해 본 입장에서 삼성물산은 다른 건설사들에 비해 극도로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며 “일반적으로 아파트 설계가 끝나고 공사기간까지 3년이 걸리는데, 3년이면 아파트 설계의 트렌드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삼성의 경우 다른 건설사들과 달리 일단 착공을 하면 기존 도면대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했다”고 말했다.

반면 경쟁사인 대림산업은 신반포15차재건축조합에 자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크로’가 들어간 ‘아크로 하이드원’이라는 브랜드를 제시했다. 바로 옆 단지인 최고가 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와 함께 총 2253가구의 ‘아크로’ 대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아크로리버파크는 지난해 10월 전용 84㎡(34평형)가 34억원에 거래되면서 국내 아파트로는 최초로 평(3.3㎡)당 1억원 시대를 열어 유명해졌다. 2013년 1차 분양 당시 평당 4000만원이 넘는 대한민국 최고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평균 18.7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최고가 아파트지만 대림산업은 부실시공 문제로 입주민들이 항의하는 등의 불명예도 겪었다. 실내 누수가 발생하고 벽면에 균열이 가거나 주차장 천장에서도 물이 새는 등 여러 가지 하자로 입주민들이 단지 앞에 현수막을 붙이고 항의를 했다. 일반적으로 고가 아파트의 경우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외부에 알리기보다는 건설사와 자체적으로 합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집값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수막을 내붙인 것은 입주민들의 불만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림산업이 이번 신반포15차 수주전 승리를 쉽게 점치기 어려운 이유다.

역마진 감수한 호반건설 베팅 성공할까

이에 비하면 호반건설은 브랜드 인지도에서 두 건설사에 열세인 상황이다. 호반은 택지지구 부지를 싼 가격에 미리 매입하고 이 부지에 아파트를 건설해 이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성장한 회사다. 유동성을 확보하고 충실하게 보수적 경영을 해오던 것이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기회의 발판이 됐다. 호반건설은 풍부한 유동성으로 토지를 계속 매입해 나가면서 작년에는 시공능력 10위까지 올랐다. 작년에 대우건설 인수설이 나오는 등 대형건설사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다. 호반건설의 브랜드 아파트는 강남권 신도시인 위례신도시에도 이미 들어간 상태다. 이제 강남 재건축 시장 입성만 남았다는 말이 나온다. 호반은 지난해부터 국내 증시에 상장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건설은 이번 수주전에 파격적 조건을 내걸었다. 재건축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보는 사업비 대여에 연 0.5%라는 파격적 금리를 제시했다. 경쟁사 삼성물산의 연 1.9%에 비해 크게 낮은 금리다. 대림산업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1.5%포인트(혹은 금융회사 실제 조달 금리 중 낮은 금리) 적용’을 내세웠지만 호반이 내세운 금리보다는 높다. 호반은 시공사로 선정될 경우 389억원 규모의 공사비도 무상 지원하기로 했다. 확장비와 특화설계비 등이 이 금액에 포함된다.

아파트 시공사의 경우 시공비의 10%가량을 통상 시공사 이익분으로 잡는다. 신반포15차 아파트의 경우 시공비 약 2500억원 중에 10%인 250억원 정도를 시공사 이익으로 잡으면 호반의 경우 약 140억원 정도는 역마진이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통상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공사비에 비해 이익은 크게 남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건설사들이 아파트 재건축 수주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강남권 재건축이 주는 브랜드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신반포15차의 경우 입지 자체가 워낙 좋다 보니 파격적인 제안을 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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