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캘리포니아 공장. ⓒphoto 뉴시스·AP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캘리포니아 공장. ⓒphoto 뉴시스·AP

‘바이오(Bio)’ ‘언택트(Untact)’ 테마와 함께 ‘2차전지’가 주식시장을 달구고 있다.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뛰고 거래량이 증가하며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기존 주식 거래 시장만 강세인 것이 아니다. SK바이오팜 열풍으로 관심이 커진 공모 시장에서도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2차전지 기업들의 강세는 ‘한국판 뉴딜’로 불리는 정책 수혜 가능성과 함께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가 일으키고 있는 전기차 열풍의 영향이 크다.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정부 주도로 160조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대형 정책 사업이다. 이 한국판 뉴딜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그린 에너지’로 포장된 신재생과 친환경 에너지, 모빌리티 산업이다. 시장에서는 친환경 에너지, 그린 모빌리티 산업과 밀접히 연관된 2차전지 분야에 대한 정책 수혜 기대감이 한껏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판 뉴딜이 아니더라도 2차전지 관련 산업의 정부 지원이 이미 시작됐다는 시각도 크다. 한국판 뉴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이지만 올해 추경 등으로 확보한 추가 재정 일부가 2차전지와 연료전지 등 관련 산업 지원에 투입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퍼져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시작과 함께 신재생·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핵심 정책 사업으로 꼽혀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으로 마련한 상당 규모의 재정이 2차전지 관련 산업으로 흘러들 수 있다는 기대감, 특히 한국판 뉴딜이라는 구호 아래 조 단위의 천문학적 자금이 향후 수년간 관련 산업으로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증권사들과 경제신문, 인터넷매체들을 중심으로 ‘2차전지 산업의 정책 수혜가 클 것’이라는 보고서와 기사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 수혜 기대와 함께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세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이것은 한국 시장보다 미국 시장의 영향이 크다. 특히 테슬라의 주가 질주가 한국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은 물론 전 세계 자동차 시장과 관련 산업의 판도까지 재편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 상장한 테슬라의 주가 폭등이 심상치 않다. 지난 7월 14일(미국 시각) 테슬라 주가는 1주당 1516.8달러(종가 기준)에 이르고 있다. 불과 1년 전 200달러대였고, ‘짧은 기간 급하게 많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던 올해 5월만 해도 700달러대였던 테슬라 주가다. 하지만 6월부터 전기차 열풍의 진원지 역할을 하며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정의선·이재용·구광모·최태원의 만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지역을 본격적으로 휩쓴 3월 이후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판매량 급감으로 크게 위축돼 있다. 하지만 테슬라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소비자들의 테슬라 구매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2일(미국 시각) 테슬라 측은 코로나19로 소비가 급락한 2020년 2분기(4~6월) 판매량이 9만650대라고 밝혔다. 미국 자동차 산업계와 투자 시장은 경기 침체와 소비 급락 여파로 테슬라의 2분기 판매량을 6만5000대 정도로 전망했었다. 이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미국 시장과 언론들은 이런 테슬라의 판매 동향에 대해 ‘예상보다 빠르게 전기차 시대가 오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분석이 한국 투자 시장도 흔들고 있다. 6월 이후 증권사들의 2차전지 관련 보고서들이 급증했고,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는 전기차 수혜 기업 찾기가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 특히 완성차 기업보다 전기차 부품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장과 투자자들을 들뜨게 하는 이벤트도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현대차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 5월 천안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것이다. 이 만남이 삼성과 현대차의 전기차 배터리 동맹설로 퍼지기도 했다.

그런데 전기차 배터리를 두고 재벌 오너 간 만남은 정의선·이재용씨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6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이번에는 LG화학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LG그룹 구광모 회장을 LG화학 오창 공장에서 만났고, 7월에는 SK그룹 2차전지 사업의 심장으로 불리는 SK이노베이션 서산 배터리 공장에서 최태원 회장까지 만났다.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마다 투자 시장은 물론 자동차와 2차전지 업계에서 ‘한국판 전기차용 배터리 연합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판 뉴딜과 추경, 미국 테슬라의 5월 이후 주가 폭등, 또 국내 완성차 기업과 2차전지 기업의 실질적 지배자들 간 만남이 2차전지 테마에 불을 붙인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당장 주요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와 중국 사업 침체로 지난 3월 20만원대까지 떨어졌던 LG화학의 주가가 5월 중순부터 급등해 5월 16일 41만4000원으로 40만원대로 올라섰고, 6월 19일에는 51만2000원으로 50만원대도 뚫었다. 기사를 마감한 7월 15일에는 54만4000원까지 올랐다.

2차전지 관련 소문에 중소기업 주가도 급등

삼성SDI 주가 상황도 비슷하다. 3월 한때 18만원대로 내려앉았던 주가가 5월 중순 이후 오르더니 역시 기사 마감일이던 7월 15일 39만3000원까지 치솟았다. SK이노베이션 주가도 3월 대비 급등세를 타고 있다. 3월 중순 5만원대 중반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5월 이후 슬금슬금 올랐다. 7월 15일 주가는 12만3500원이었다.

2차전지 업계와 주식시장에서 메이저 기업으로 불리는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의 주가만 상승한 게 아니다. 2차전지 소재, 설비 및 공정관리 관련 중소·중견기업들의 주가도 5월 이후 오르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코스닥 시장에서도 에코프로비엠과 천보, 포스코케미칼, 일진머터리얼, 코스모신소재 등 2차전지 사업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소문이 난 기업들의 주가가 5월 이후 빠르게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권인 에코프로비엠을 예로 들어보자. 대중에는 생소한 기업이지만 최근 개인투자자들을 포함해 주식시장에서는 매수세가 큰 곳 중 하나다. 2차전지 소재인 양극재를 만드는 기업으로, 코로나19 여파에 3월 중순 5만원대로 하락했던 주가가 이후 빠르게 올라준 덕분에 최근 코스닥 시가총액 7위(7월 14일 기준)까지 상승할 만큼 몸집이 불어난 상황이다. 7월 13일 이 회사의 주가는 13만7300원까지 올랐다. 한국에서는 2차전지 업계 메이저 기업 중 하나인 SK이노베이션에 소재를 공급하며 수익을 키우고 있다.

포스코의 계열사인 포스코케미칼 역시 2차전지 부품·소재 관련 테마에 편승해 비슷한 주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월 중순 3만원대로 저조했던 주가가 5월부터 상승해 7월 중순 8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공모 시장에서도 뜨거운 2차전지

2차전지 테마는 주식시장에 이미 상장해 있는 기존 기업들의 주가만 끌어올리고 있는 게 아니다. 상장 전 주식 공모 시장에서도 ‘2차전지’로 홍보된 기업들로 개미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7월 16일 상장하는 에이프로라는 기업을 보자. 에이프로는 2차전지 제조 과정 중 활성화 과정으로 불리는 후공정 장비를 만들고 있다. 지난 7월 초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진행한 주식 공모 경쟁률이 1000 대 1을 넘었다. 그리고 지난 7월 8~9일 열린 개인투자자들 상대의 주식 공모에서는 경쟁률이 1500 대 1을 훌쩍 넘을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가장 최근 주식 공모를 마친 티에스아이라는 기업도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뭉칫돈이 몰려들었다. 티에스아이는 2차전지 제조에 사용되는 각종 소재와 용매를 혼합하는 일종의 믹싱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홍보됐다. 이미 코넥스에서 주식이 거래되고 있기는 하지만, 코스닥 시장 상장을 위해 7월 13일과 14일 일반 주식 공모를 진행했다. 공모 마지막 날인 지난 7월 14일 회사 측은 이번 공모 경쟁률에 대해 무려 1621.1 대 1이라고 밝혔다.

취재 중 만난 시장 관계자들 상당수가 “앞으로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 중에는 2차전지 매출과 사업 비중이 현저히 낮거나 기술력이 형편없다고 해도, 일단 자신들이 2차전지 관련 기업임을 앞세워 홍보에 나서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기업 분석에 서툴고 투자 지식이 높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이 2차전지 관련 기업으로 더 몰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남 지역 한 금융사의 PB는 “한국판 뉴딜같이 거대한 구호를 앞세운 정부의 정책 사업이 개인투자자들을 들뜨게 하는 게 사실”이라며 “주변에서 2차전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면서 자신도 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의해오는 고객들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주요 2차전지 기업들을 제외한 중소기업들의 수준만 보면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상황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테마에 편승한 덕, 또 시장에 넘쳐나는 유동성 덕에 주가가 급등한 것으로 봐야지 기업 자체의 경쟁력이나 성장성만 보면 조금 답답한 상황으로 생각된다”는 말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중소기업의 주식 공모 경쟁률이 1600 대 1을 넘어서면서 시장에서는 2차전지 관련 기업 거품론도 조심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이 보여준 그동안의 경영 실태와 가치, 기술력 등 시장 경쟁력이 무시된 채 개인들을 중심으로 매수 열기만 과열된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열된 시장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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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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