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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647호] 2021.03.01

ESG로 진짜 착한 기업 가려내는 법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2021-03-02 오전 9:56:41

▲ 뉴욕증권거래소와 금융사인 솔베리 트라우트가 지난해 6월 기업들의 ESG 경영을 돕는 ESG 인사이트 웨비너 시리즈를 출범시키고 있다. photo 뉴시스
요즘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이슈라면 단연 ‘ESG’가 될 듯하다. ESG는 올해 주요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에서 빠지지 않은 핵심 키워드였다. 많은 기업이 ESG 조직을 정비하고 전략을 세우고 비즈니스 모델 재편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의 평가기준에 ESG를 적용하기로 했고, SK는 계열사 16곳에 ESG 전담부서를 설치했다. 국민연금은 내년 말까지 기금의 절반가량을 ESG 주식 및 채권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어떨까. ESG는 정말 실재하는 변화일까 아니면 잠깐의 유행일까.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변화도 그렇다. 혹시 전략의 변화는 없이 이전부터 해오던 일들을 ESG라는 이름만 붙여 그냥 하는 곳은 없을까. 특별히 달라진 역할은 없지만, 팀의 이름만 바꾸면서 말이다.
   
   기업의 성과는 일단 매출과 영업이익, 현금흐름 등 재무적인 지표로 평가한다. 하지만 재무제표만으로 드러나지 않은 위험을 다 살필 수는 없다. 투자자에게 ESG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다. 그동안 강조되어왔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실 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선택이었다. 재무적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이 주류다. 따라서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비용으로 인식된다. 실제로는 ‘좋은’ 기업, 또는 ‘착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홍보 전략에 가까웠다. 하지만 ESG 경영이 추구하는 영역은 더 포괄적이고 의미는 더 적극적이다. 출발부터 리스크를 줄이고자 하는 투자자의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 단순히 ‘착한 기업’이나 ‘윤리경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ESG의 최종적 목표는 결국 ‘기업가치의 향상’으로 귀결된다.
   
   ESG 개념이 나온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2006년 4월 UN은 사회책임투자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을 발표했다. 사회책임투자는 재무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윤리적 가치를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의 요소로 감안해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ESG는 투자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하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ment)를 의미한다. 당시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은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에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을 요청했다. 금융회사들은 ESG라는 요소를 활용해 기업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내용이 원칙에 반영됐다. 여기서 환경은 구체적으로 생물다양성에 대한 배려, 에너지 절약,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노력 등의 내용을 담는다. 사회는 노동환경이나 인권문제에 대한 배려,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등을 의미한다. 지배구조는 합리적 관리체제, 경영의 투명성, 자본 효율화 등을 포함한다.
   
   
   2008년 금융위기 거치며 관심 높아져
   
   처음부터 호응이 대단했던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수익률 극대화라는 목표와 ESG를 고려한 투자가 충돌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이 반복되고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닥치면서 투자자와 기업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투자자들이 기업 투자를 결정할 때 전통적으로 활용했던 재무적 성과와 함께 ESG를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ESG가 부각된 가장 큰 이유는 주식시장에서 패시브펀드가 크게 확대된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의 뉴딜펀드 같은 게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이 나와 경쟁력을 유지한다. 그 기반에는 주주행동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의 효율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미국의 주주 친화적인 기업문화는 주주행동주의에 의한 견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늘어난 패시브펀드는 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을 사전에 선정된 비율에 따라 매수할 뿐,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 변화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패시브펀드가 이미 미국 주식형 펀드 자산의 절반을 넘었고, 그 결과 미국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는 대부분 패시브펀드가 되었다. 경영자가 주주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줄면서 그만큼 지배구조에 대한 견제도 사라지고 자극도 줄어든다.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지배구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대안으로 지속 성장을 위한 ESG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졌다. 금융정보기관들이 기업 지배구조를 포함한 ESG를 평가하고, 기관투자자들은 이런 평가에 근거해 투자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도 ESG 확산의 계기였다. 환경 및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 소득 및 사회 양극화의 심화 등은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ESG 경영을 앞다퉈 표방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도 역시 한몫을 했다.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청정에너지에 대한 인프라 투자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가치관과도 맞물려 있다.
   
   
▲ 최태원 SK 회장이 2019년 5월 ‘상하이 포럼 2019’에서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온라인으로 열린 ‘상하이 포럼 2020’에서는 ESG 중심의 글로벌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photo 뉴시스

   글로벌 투자기관들 이미 ESG 지수 활용
   
   ESG라는 비재무적 성과가 좋은 기업들이 길게 봤을 때 재무적 성과도 좋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도 나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으로 과거 5년간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월드지수(ACWI), MSCI 신흥국(EM)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각각 11.5%, 7.5%, 5.4%였지만, 이들 내 ESG 테마 하위 지수들의 연평균 수익률은 각각 12.2%, 10.0%, 10.5%로 상대적으로 더욱 나은 성과를 보였다. 지난해 미국 주식형 펀드 가운데 수익률 상위 5개 중 3개가 친환경에너지 관련 펀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ESG 국내 주식형 펀드의 경우 최근 1년간의 펀드 성과는 증시 활황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 40~70%대로 높게 나타났다.
   
   글로벌 투자기관의 상당수는 이미 ESG 기준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7조달러의 운용자산을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경우도 ESG 추종 ETF를 지금의 2배인 150개 이상으로 늘리고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25%를 넘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는 글로벌 투자기관의 80%가 ESG 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자금도 늘어나 전 세계 투자 시장 운용자산의 30%가 ESG를 기준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글로벌 지속 가능 투자 협력체인 GSIA(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에 따르면, 2018년 전 세계 ESG 투자 규모는 30조달러에 달한다. 2016년 이래 연평균 16%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50조달러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하는 곳도 있다.
   
   기업들의 변화를 더욱 부추기는 건 ESG를 따르지 않으면 빅테크 기업들의 공급망에서 완전히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플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제조공급망에서 탄소중립화 100%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5년부터 100%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는 해저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ESG는 단순히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지표가 아니다.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기도 하다. 테슬라는 2019년 한 해 동안 전기자동차 생산으로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다른 기업에 팔아서 본업인 자동차 판매에서보다 많은 수익을 올렸다.
   
   ESG 경영이란 결국 기업이 이윤추구라는 재무적 활동을 넘어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포함한 비재무적 요소도 경영 목표의 일환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기업의 주인을 주주 이외에 임직원,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공동체 등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라고 보고 이들 모두를 위해 민주적이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는 것을 포함한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이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세계 각국 정부는 탄소제로 정책에 따라 ESG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다. 영국을 시작으로 호주,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 연기금이 ESG 공시 규제를 도입했다. 유럽은 당장 2021년 3월부터 역내 모든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한다. 은행, 보험, 연기금,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고객 자금을 굴리는 모든 회사가 대상이다. 미국 상장사들도 ESG 성과 공개를 요구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린뉴딜은 한국판 뉴딜 3대 사업 과제 중의 하나다. 정부의 정책지원은 집중되고 미래산업으로서의 성장 전망도 밝다. 그렇게 보면 ESG 투자의 좋은 성과도 놀랄 일은 아니다.
   
   ESG 평가와 정보 공개의 문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슈다. 계량화된 데이터, 엄정한 평가가 필요한데 아직 쉽지 않다. 오염물질 배출량의 감소나 환경개선 투자에 대한 수치는 쉽게 도출할 수 있다고 해도 사회책임활동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 창출, 기업 지배구조의 우월성 등은 수치로 따지기가 어렵다.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ESG지수(index)는 200개가 넘는다.
   
   ESG가 유행하면서 지수도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평가기관별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다르다 보니 결과도 천차만별이다. 저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특히 취약한 부문은 지배구조 문제다. 좋은 지배구조가 항상 좋은 실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결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를 줄인다. 지배구조가 받쳐줘야 환경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 해결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기업 지배구조 부문에서 새로운 평가지표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사회의 여성 비율과 최고경영자(CEO)의 임금 산정 기준, 로비 자금의 투명성 제고, 부패방지 대책 등이다. 아직 국내 기업들은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 등 돈을 들이면 쉽게 변화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다.
   
   물론 속내야 어떻든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착한 기업’이 되겠다는 뜻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착한 기업으로 보이려 애쓰다 보면 정말로 조금은 저절로 착해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대주주의 결단이 필요한 지배구조 개선 문제는 기업이 말 그대로 ESG 경영에 진지한 것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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