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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2500호] 2018.03.26

스파이 독살 시도로 본 영국과 러시아 애증의 역사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 지난 3월 15일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오른쪽)가 러시아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딸 율리아와 함께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 잉글랜드 남부도시의 쇼핑몰 부근 현장을 찾았다. photo APㆍ뉴시스
영국에서 ‘007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스파이 살해 시도 사건이 일어나 떠들썩하다. 그것도 러시아가 범인으로 지목된 사건이다. 냉전시대 영국 작가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중스파이 독극물 살해 시도가 백주에 터져나왔다고 난리다.
   
   지난 3월 4일 영국 서남부 도시 솔즈베리시에서 66세인 세르게이 빅토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 부녀가 슈퍼마켓 앞 의자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행인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둘 다 중태이다. 스크리팔은 러시아 군사정보기관(GRU)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외교관으로 위장한 채 이중스파이로 일했다. 1995년부터 영국 해외정부기관 MI6에 유럽 각국에서 암약 중인 러시아 스파이 명단을 넘겨주다가 2006년 발각되었다. 러시아에서 13년 형을 받고 수형생활을 하던 그는 2010년 미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교환 때 풀려나와 그동안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이번 그의 살해 시도에는 독극물이 사용됐는데 러시아에서 1970~1980년대 개발된 ‘노비촉’이라는 엄청난 독성의 군사용 살상 물질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의심의 손가락은 사건 발생 즉시 러시아를 향했다. 영국 정부는 바로 러시아 정부에 전대미문의 강력한 어조로 책임 추궁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독극물은 자신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영국이 벌인 자작극이라고 반박하면서 외교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사건 이후 영국과 러시아는 각각 런던과 모스크바대사관의 외교관을 추방했는데 양쪽 모두 23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다. EU 28개국 외상들은 영국의 입장에 ‘무조건의 지지(unqualified solidarity)’를 표명하면서 러시아 정부를 몰아세우는 데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영국에서 이런 식의 러시아 스파이 살해사건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에도 러시아에서 망명한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방사성물질인 폴로늄 210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러시아 정보기관 FSB(KGB 후신) 요원이었던 리트비넨코는 러시아의 마피아 재벌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살해에 FSB가 개입됐다고 폭로하는 등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됐었다. 그는 이후 영국으로 망명했지만 영국 국적을 획득한 후에도 살해 위협을 늘상 느껴왔다. 그는 “러시아 내에서 일어난 각종 테러 사건이 KGB 자작극이었다”는 등 폭로를 계속하다가 2006년 46세의 나이로 살해당했다.
   
   리트비넨코가 KGB의 자작극이었다고 주장한 테러 사건 중에는 실로 엄청난 것들이 많았다. 예컨대 1999년 9월 293명이 사망한 모스크바 중심 아파트 폭파 사건, 2002년 모스크바 극장을 체첸반군이 점거해서 850명을 인질로 잡은 뒤 버티다가 결국 170명이 사망한 사건, 2004년 9월 초등학생 777명을 포함한 학생 1100명을 인질로 삼다가 결국 334명이 살해된 배슬란 학교 인질사건, 2006년 체첸반군 관련 기사를 계속 터뜨리면서 푸틴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던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 살해사건 등이다. 이런 사건들이 모두 KGB 자작극이라는 그의 폭로가 진실이라면 푸틴 정부의 운명은 물론 KGB 생존마저 위협받을 만했다. 리트비넨코의 폭로는 서방 언론에서도 집중 보도되었기에 러시아 정부가 그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하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의 살해 현장에서 찾은 방사능물질의 흔적은 전직 KGB 요원 두 명(그중 한 명은 현 러시아 의회의원 안드레이 루가보이)의 신원을 밝혀주었으나 이미 두 명은 러시아로 돌아간 후였다. 당시 영국 언론은 영국 정부가 사건을 추적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었다. 현 총리인 테레사 메이가 당시 사건 담당인 내무장관이었다는 사실도 최근까지 계속 강조돼왔다.
   
   
   영·러 비난전
   
   그래서인지 이번 부녀 독극물 살해 시도 사건 이후 영국 정부는 언론조차 ‘전대미문(unprecedented·unheard)’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총리를 비롯해 외무장관까지 나서 비외교적 언사를 써가면서 비난전을 벌이고 있다. 메이 총리는 “러시아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결론을 전혀 내릴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24시간 내에 러시아 정부가 입장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이를 두고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증거도 나오기 전에 먼저 단정을 지어버린다(rush ahead of the evidence)”며 메이 총리를 비난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러시아대사를 소환한 자리에서 악수도 하지 않고 바로 “영국 땅 안에서 영국인은 물론 다른 주거인 누구라도 공격을 하는 행위는 도저히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존슨 외무장관은 의회의 한 보고에서 “러시아는 한 번은 ‘독극물 노비촉을 만든 적도 없다’고 하다가 바로 뒤에는 ‘노비촉을 만들긴 했지만 모두 폐기했다’고 말을 바꾸고 또 ‘모든 노비촉을 파괴하긴 했지만 어떤 경로인지 모르게 스웨덴, 체코공화국, 슬로바키아, 미국으로 유출되었다. 심지어는 영국으로도 나갔다’는 말도 안 되는 부인을 계속 해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거기다가 존슨 장관은 거의 셰익스피어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는 비판도 쏟아냈다. “내 생각에는 진실이라는 바늘을 거짓말과 혼란의 건초더미 속에 집어넣어 숨기려고 하고 있는(conceal the needle of truth in a haystack of lies and obfuscation) 러시아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본다. 12년 전에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를 런던에서 살해한 이후 이제는 누구도 이런 식으로 더 이상 속일 수 없다.” 정직을 사회 철학으로 삼고 있는 영국에서는 사적 언쟁에서도 기피 용어인 ‘거짓말’이라는 단어까지 써 가면서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다. 심지어는 점잖은 영국 국방장관 가빈 윌리엄슨조차 “러시아는 입 닥치고 꺼져라(Go away and shut up)”라고 거의 욕설을 할 정도이다.
   
   물론 러시아도 가만있지는 않고 있다. 4기 임기를 시작하는 대선에서 압승한 푸틴은 당선 첫 연설에서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난센스”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영국 정부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면서 충분히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의 일은 비극이지만 만일 두 사람을 오염시킨 독극물이 군사용이라면 분명 두 사람은 즉사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내가 소식을 듣고 든 첫 생각은 만일 독극물이 진짜였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 지금 병원에 누워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그런 독극물을 가지고 있지 않고 제일 먼저 파괴했다. 러시아 내에서 그런 일을 벌일 사람은 아무도 없고 더군다나 대선과 월드컵이 임박한 지금 그런 일을 감히 할 수 있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 영국과 러시아는 세르게이 스크리팔 사건 이후 런던과 모스크바의 외교관 23명을 서로 추방하는 등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20일 런던 러시아대사관에서 수트케이스를 든 사람들이 버스로 옮겨 타고 있다. photo APㆍ뉴시스

   러시아 망명자 14명 사인 재조사
   
   러시아 언론들 역시 ‘영국의 자작극’ ‘영국과 러시아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제3국의 행위’ 등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국은 지난 20년간 영국에서 죽은 14명의 러시아 망명자들의 사인을 다시 조사하기로 했다.
   
   사실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유난히 스파이 사건이 많아 간단하게 서술해도 책 한 권이 나올 정도이다. 위에서 언급한 망명 러시아 스파이 사건 말고도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 사건 등 몇 개가 더 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 러시아 스파이들은 대개 물질적인 대가나 영국으로의 망명을 조건으로 영국을 위해 일한다. 반면 영국인 중 러시아를 위해 일한 스파이들은 대개 사상적으로 경도된 인물이 많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러시아를 위해 일하는 영국 스파이들은 중산층 지식인 출신 확신범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케임브리지 링 5인(Cambridge Ring Five)’ 사건은 특히 유명하다.
   
   이들 5인은 영국 정보부 소련담당 국장 킴 필비를 비롯해 외교부 미국담당 국장 도널드 매클레인, 워싱턴 영국대사관 이등서기관 가이 버제스, 왕실 미술사가 앤서니 블런트 경, 외교관 존 카이른크로스 등으로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겨 놓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국을 배신하고 러시아를 위해 일했다. 이들 중에서도 거의 두목 격인 필비는 한반도와도 얽혀 있는 인물이다. 그는 워싱턴 영국대사관에 주재할 때 ‘한국전에 중국이 참전하더라도 미국은 중국 본토로 전쟁을 확대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정책을 소련에 넘겨준 인물이다. 이로 인해 중국이 마음놓고 한국전에 참전했을지 모른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는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의 영국대사관 부영사로 있던 MI6 요원 조지 블레이크는 한국전 중 포로가 되어 러시아 스파이가 된 인물이다.
   
   영국과 러시아 사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애증의 관계’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애증의 관계다. 러시아를 유럽의 열강으로 만들고자 1697년부터 2년간 유럽 순방을 한 피터 대제는 항해술, 조선술을 비롯해 많은 지식을 영국에서 습득해 러시아의 선진화를 꾀했다. 10월혁명이 일어난 후인 1921년 레닌 정부와 가장 먼저 통상협약을 맺은 국가도 영국이다. 영국은 1924년 2월 1일 전 세계에서 첫 번째로 소련을 국가로 인정했다.(러시아는 지금도 구소련을 인정한 국가 순서대로 외교관 차량 번호판을 준다. 그래서 영국의 러시아대사관 외교관 차량 번호가 1번이다. 독일, 캐나다, 미국, 일본이 그 다음 순서이고 한국은 124번이다.)
   
   1918년 러시아혁명 때 볼셰비키가 살해한 니콜라이 2세는 영국 왕 조지 5세의 사촌이었다. 니콜라이 2세의 전 가족을 살해한 소련을 세계에서 제일 먼저 국가로 승인한 셈이니 영국도 별로 할 말은 없다. 니콜라이 2세 부인은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고조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니, 영국 왕가에는 할머니뻘이다. 그래서인지 니콜라이 2세 살해 이후 영국 왕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1994년 10월 27일 국빈으로 러시아를 방문할 때까지 76년간 러시아에 발을 내딛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러시아 방문 때 러시아 국민과 언론은 열광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당시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에는 이 방문이 우리가 민주주의로 가고 있다는 최고의 인정”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유럽인, 특히 영국인은 1차·2차 대전 때 우방으로 이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러시아를 자신과 동등하게 여겨본 적이 없다. 러시아인을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말은 처칠이 남겼다. 그는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의 기운이 유럽 대륙을 휩싸던 때 러시아의 향후 행보를 묻는 질문에 “러시아는 신비 속에 싸여 불가사의 안에 들어앉은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1240년부터 1480년까지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때문인지 “러시아인의 얼굴을 벗기면 바로 타타르인(몽골인)이 나온다(If you scrub any Russian’s face skin enough, you would see a Tatar underneath)”는 말도 듣는다. 영국인들은 러시아인을 비하할 때 이 말을 잘 쓴다.
   
   두 나라 사이의 묘한 관계는 필자도 직접 체험한 바 있다. 필자는 영국에 주재하던 1984년 한국과 수교도 없던 소련에 자주 출장을 갔었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는 아예 소련에 주재 발령을 받았다. 그때 소련에 살면서 느낀 인상은 한마디로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당시 어떤 잡지에 ‘러시아인은 머리로는 유럽인처럼 생각하고 가슴으로는 동양인처럼 느낀다’고 쓰기도 했다. 필자는 아직도 러시아인을 유럽인처럼 이해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유럽인들도 러시아인을 유럽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유럽인들은 러시아 사원과 궁궐의 황금 돔을 보고 환성을 지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들의 문화는 유럽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유럽의 ‘루소포비아’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무시’ 심리에는 ‘러시아를 향한 공포’도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루소포비아(Russophobia·러시아 혐오증)’와도 일맥상통한다. 몽골인이 러시아를 거쳐 폴란드까지 무너뜨리고 서유럽을 휩쓸기 직전 유럽인들이 느꼈던 엄청난 공포가 유럽인의 의식 밑바닥에 있다. 그런데 ‘루소포비아’라는 말 역시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유럽의 하나로 보지 않고 동양의 일원, 특히 몽골인의 후예로 여긴다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스스로를 유럽의 일원으로 여기면서 ‘유럽인들의 인정(認定)’에 목말라했다. 피터 대제의 잠행을 통한 유럽 학습과 ‘유럽을 향한 창’이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도 결국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구애였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러시아를 결코 동료라고 여기지 않고 무식한 시골뜨기로만 취급했다. 이런 유럽인의 무시를 러시아인이 모를 리 없다. 결국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짝사랑이 반작용을 일으켜 유럽을 향한 호전적이고 도전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구소련이 무너지기 전 고르바초프가 유럽순방을 하고 있을 때 세계 언론은 ‘러시아라는 거지가 구걸 다닌다’고 조롱했다. 이때 러시아의 한 역사학자는 ‘이제 유럽제국이 러시아에 진 빚을 내놓을 때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그들로부터 빚을 받아내야 한다’는 글을 썼다. 실제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위기를 세 번에 걸쳐 몸으로 막아냈다. 바로 몽골, 나폴레옹, 히틀러의 침공인데 러시아의 역할이 없었다면 아마 유럽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만일 고르바초프 시절 유럽이 러시아를 조롱하지 않고 유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진심으로 도와줬더라면 지금과 같은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냉전 2.0도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유럽과 러시아의 대치는 유럽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러시아와, 러시아를 몽골과 동일시하면서 유럽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럽과의 밀당으로 이해하면 그림이 그려진다. 러시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유럽제국을 향한 신경질적인 태도 역시 이해할 법하다. 자신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던 과거 위성국가들이 EU와 NATO 국가가 되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밤잠이 안 올 듯도 하다.
   
   이번 스파이 살해사건을 접한 주위 러시아 지인들의 반응은 양극으로 갈린다. 러시아의 또 다른 시대착오적 실수라는 평과 함께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의 자작극이라는 평으로 엇갈린다. 이들 중 영국과 미국 기관의 자작극이라고 말한 사람은 런던에 20년 이상 살면서 영국 국적을 획득한 러시아인이다. 러시아 고위 관리를 부인으로 둔 한 지인은 “구미 제국들의 각종 봉쇄로 인한 위기의식으로 러시아인들이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필자가 10년간 러시아에서 생활한 경험에 비춰 보면 러시아의 변화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러시아 지식인과 기업인들이 요즘에는 술을 자제하고 있고 관공서 공무원들도 주말 근무를 한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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