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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9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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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다시 주목받는 일본의 ‘샐러리맨 노벨상’

도쿄= 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leehawon@gmail.com

▲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요시노 아키라가 지난 10월 10일 도쿄 기자회견장에서 부인과 함께 참석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일본은 ‘노벨 과학상=대학교수’라는 공식을 종종 깨트리는 나라다.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일본인 요시노 아키라(吉野彰·71)도 그런 경우이다.
   
   그는 일본에서 ‘기업 연구자’로 불리는 과학자다. 대학이 아닌 일반 기업(아사히카세이·旭化成)에서 근무하며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박사학위도 57세가 되던 2005년에야 받았다.
   
   일본에서 기업 연구자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처음 나온 것은 반세기(半世紀) 전인 1973년이다. 에사키 레오나(江崎玲於奈)는 소니(SONY)에서 근무할 당시 반도체 관련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정밀기기업체 시마즈제작소의 엔지니어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됐다. 당시 그의 직책은 주임으로 학사학위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단백질 등 고분자 물질의 질량을 순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 노벨상을 받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니치아(日亞)화학공업에서 청색 LED를 개발한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는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과학자들이 굳이 대학에 남겠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 기업에서 ‘작품’이 될 만한 연구는 적극적으로 밀어주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위해 이공계 회사를 선호하기도 한다.
   
   
   아사히카세이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요시노는 교토대에서 석유화학을 전공하고 석사과정을 마친 후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했다. 그가 처음부터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를 연구했던 것은 아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그는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를 하기 전에 세 가지 분야를 연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맨 처음에는 ‘유리와 밀착하는 플라스틱 필름’ 개발에 주력했다. 자동차 유리창에 밀착시켜 접착할 수 있는 플라스틱 필름을 개발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어서 불에 타지 않는 단열재(斷熱材), 빛을 비춰 살균과 오염을 제거할 수 있는 소재 개발도 전망이 보이지 않아 중간에 연구를 접어야 했다.
   
   요시노는 입사 9년 차인 1981년 33세 때에 리튬이온 배터리로 연결되는 연구에 착수했다. 원래 당시의 테마는 ‘전기를 통과하는 플라스틱의 응용’이었다. 나중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가 발견한 전도성 물질 폴리아세틸렌에 주목했다. 모교인 교토대에서 폴리아세틸렌 소재를 입수해 1년에 걸쳐서 이를 생성하는 기술을 익혔다.
   
   1982년에는 올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존 구디너프(97) 박사의 논문을 접한 후, 본격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이런 노력으로 리튬이온 배터리의 기본 구조를 확립한 후 1985년 특허를 출원했다. 이어서 탄소 재료를 이용하는 실용화로 연결했다.
   
   적지 않은 노력 끝에 혁신적인 아이템을 만들었지만, 처음부터 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완제품이 만들어졌지만 팔리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고통을 수상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3년간 전혀 팔리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목을 조이는 것 같은 괴로움이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1990년대 들어서야 IT산업화 붐에 힘입어 날개 돋친 것처럼 팔려나갔다. 요시노의 연구에 힘입어 그가 지금도 근무 중인 아사히카세이는 리튬이온전지의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세퍼레이터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업 연구자로 살아온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에 취직해 기초연구부터 제품화까지 한 흐름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했다.
   
   일본 사회는 지난해 혼조 다스쿠(本庶佑) 교토대 특별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데 이어 일본인이 2년 연속 노벨상을 수상한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10월 9일 요시노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 중의 한 명으로 결정되자 NHK는 곧바로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이를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그가 개발에 참여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스마트폰 등에 활용되며 IT산업계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휴대하기 편하고 반복충전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일상생활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산업을 자극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는 이제까지 일본이 강점을 가졌었지만 최근 한국과 중국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지난 7월 아베 내각이 한국에 경제제재를 가한 배경으로 “한·일 간 경제력 차이가 좁혀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 화학자의 노벨상 수상은 일본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홍보하는 것은 물론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높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요시노는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한 과학자라는 평도 나온다. 그는 다른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인상은 아니다. 요시노의 직장 후배들은 그가 저녁이면 동료와 어울려 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부인 요시노 구미코(久美子·71)도 “나는 샐러리맨과 결혼했다고 생각했을 뿐 학자의 아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 지난 10월 9일 발표된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들. 왼쪽부터 존 비 구디너프, 스탠리 휘팅엄, 요시노 아키라. photo 뉴시스

   교토대 시절부터 고고학에도 관심
   
   그는 노벨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어제(10월 8일) 노벨 물리학상 발표를 보면서 ‘내일은 내 이름을 부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며 인간적인 면을 드러냈다. “나 자신, (수상으로) 흥분하고 있다”고도 했다.
   
   요시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마이클 패러데이의 ‘촛불의 과학’을 읽은 후, 과학자의 삶을 꿈꿔왔다. 그렇다고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토대 재학 시절에는 고고학 동아리에서 활동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전공은 석유화학이었지만 동아리 활동은 고고학을 택해서 나라(奈良)현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고학과 화학은 모두 실증과학”이라며 “얼마나 새로운 데이터를 세계에 먼저 제시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요시노는 자신의 성공 이유에 대해 ‘유연성과 집념’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답했다. “미래를 보면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술도, 사회의 요구도 시시각각 변화해간다. 그 흐름을 타야 한다”고 했다. 후학들에게는 “벽에 부딪혀라. 벽을 고맙게 생각해라”며 ‘중단 없는 전진’을 강조해왔다. 스마트폰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해놓고선 정작 본인은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는 괴짜이기도 하다.
   
   요시노는 일본인으로서는 24번째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됐다. 일본은 멈춰 서 있고, 한국이 앞으로 매년 한 명씩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다고 해도 꼬박 한 세대가 걸려야 일본 근처에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국의 기술력에 대해 결코 자만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요시노는 수상 기자회견에서 과학과 관련한 일본 상황을 우려했다. “최근의 일본 대학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심하게 말하면 주변부를 어슬렁거리고 있어 어중간한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혼조 교수는 수상 직후, 일본 정부와 사회가 기초과학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인터뷰 | 요시노 아키라
   “연구는 유연성이 가장 중요 이제 IT 넘어 ET 혁명 시대로”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일본인 요시노 아키라(71)씨를 지난 10월 15일 도쿄에서 만났다. 일본 화학회가 주최한 강연을 마친 그는 웃는 얼굴로 노벨상 수상 후 외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 응했다.
   
   - 대학교수가 아닌 ‘기업 연구자’로서 중요한 개발을 했는데, 소속된 회사 아사히카세이가 어떤 지원을 했나.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모든 지원을 했다. 회사가 돈을 내서 기초연구를 하고 이를 완성한 것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회사에서 지원한 결과라고 생각하나. “기업 연구는 3단계다. 연구(research)-심화·발전(development)-상업화(commercialization) 3단계를 회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노벨 화학상 수상 회견에서 유연성과 집념을 강조했는데. “연구에는 기본적으로는 집념이 중요하다. 연구에 대한 굳은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서는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연구에서 유연성이 그렇게 중요한가. “유연성이 없으면 연구에서 ‘벽’을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연구할 때는 유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100% 유연성만 가지고 있어서도 곤란하지만….(웃음)”
   
   - 강연에서 이제는 IT혁명을 넘어서 ET(Environment & Energy Technology·환경에너지)혁명 시대라고 했는데. “ET혁명은 인공지능(AI), 바이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내가 전공한 리튬이온 배터리도 연결해서 환경문제에도 분명한 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환경문제를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기에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자로서 관심을 갖나. “탄산가스를 포함해서 환경문제는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것은 역(逆)으로 보면 앞으로 큰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새로운 기술)을 내놓으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 앞으로 ET혁명 시대를 맞아서 어떤 연구를 할 계획인가. “미래 기술에 내가 발견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어떻게 연결할지를 더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한국 리튬이온 배터리를 비롯한 기술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나. “역시 지금 이 분야에서 앞서 있는 것은 LG·삼성 아닌가. 실질적으로 성능 면에서 좋다고 생각한다.”
   
   - 한국과의 관계는. “2~3개월마다 한국의 LG·삼성·현대 전자를 방문하고 있다.”
   
   - 한·일 기업의 협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과의 협력은 좋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재료를 개발할 때도 그렇고 (여러 분야에서) 서로 손을 잡고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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