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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2579호] 2019.10.21

北에 핵 양보? 트럼프의 敵은 트럼프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2일 1차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과 얘기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photo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일 오후 2시 백악관 회의에서 정보기관 관리들로부터 북한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당시 브리핑은 북한이 SLBM인 북극성-3형을 발사(한국시각 10월 2일 오전 7시11분·미국 동부시각 10월 1일 오후 6시11분)하기 전이었다. 정보기관 관리들은 회의에서 북한이 공격을 받을 경우 잠수함에서 핵 보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SLBM을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회의에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보고를 받고도 관심을 전혀 표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시험들이 10월 5일로 예정된 미·북 실무회담을 탈선시켜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당시 브리핑에 참석했던 두 명의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SLBM 발사 직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보도(10월 4일자)한 내용이다. 타임은 북한에 대한 브리핑이 이뤄진 날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이 트럼프에 대한 탄핵조사를 진행하던 때였다며 트럼프의 관심은 온통 이 문제에 쏠린 듯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가 지난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정적인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차남 헌터의 부패 연루 혐의를 조사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실제로 트럼프는 북한의 SLBM 발사와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북 실무회담이 결렬됐는데도 북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코미디 소재로 전락한 트럼프-김정은 통화
   
   트럼프는 지난 9월 24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자신에 대한 탄핵조사를 시작한다고 선언한 이후 연일 트위터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글만을 올려왔다. 심지어 영국, 프랑스 등이 10월 8일 북한의 SLBM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면서 규탄 성명을 발표했지만 트럼프는 침묵했다. 그러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9일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적극 해명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김정은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제1차 미·북 정상회담 당시 전화번호를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소통해왔는지 공식 확인된 적은 없었다. 트럼프는 지난 8월에도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동(6월 30일)이 극적으로 성사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트위터로 제안한 지 10분 만에 김정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밝혔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트럼프 특유의 과장된 언행을 감안할 때 실제 전화통화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전화통화는 코미디의 소재가 되고 있다. 미국 NBC 방송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는 가을 개편 후 첫 코너에서 트럼프와 김정은 분장을 한 코미디언들이 전화통화하는 내용의 풍자극을 선보였다. 탄핵조사에 전전긍긍하는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은에게 전화를 해 “내부고발자는 어떻게 처리하지?”라고 물으니까 김정은은 “깊은 바닷속으로 던져버려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트럼프는 “우리도 당신네 나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감탄했다. 이런 풍자극이 등장한 것은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두 차례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회동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문제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비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풍자극의 소재가 됐다는 것은 그동안 두 사람의 만남이 일종의 ‘쇼’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북한의 SLBM 발사에 침묵한 것은 자신의 과거 발언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한의 잇단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심지어 트럼프는 “북한은 작은 미사일 실험을 했을 뿐이고, 많은 국가들이 실험하는 것”이라면서 북한 정권을 비호했다. 특히 트럼프는 1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입만 열면 내세워왔던 외교적 업적이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이었다. 북한의 SLBM 발사는 ICBM보다 더욱 위협이 될 수 있다. SLBM은 적국의 핵 선제공격에 대응해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전략무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상에 있는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제거한다고 해도 북한의 SLBM은 살아남는다. 북한은 핵탄두가 장착된 SLBM으로 한국과 일본의 주요 도시와 주한·주일 미군을 비롯해 괌 등 미군의 해외기지는 물론 캘리포니아 등 미국 본토까지 보복공격할 수 있다. ICBM을 보유한 미국·러시아·중국 등이 SLBM을 탑재한 핵잠수함을 운영하는 것도 ‘세컨드 스트라이크(Second Strike·제2차 타격)’ 능력 때문이다. 북한이 이런 능력을 보유할 경우 미국 대통령이 자국 본토의 엄청난 피해를 우려해 북한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 경우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전략(확장억제전략)도 자칫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자국 안보에도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는데도 북한의 SLBM 도발에 입을 닫고 있다.
   
   
▲ 미국 NBC방송의 예능프로그램 SNL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으로 분장한 코미디언들이 전화통화하는 모습. photo NBC

   트럼프의 자업자득
   
   트럼프가 침묵하는 의도는 자신의 재선을 위해선 북한과의 핵 협상을 타결했다는 ‘외교 쇼’를 국민들에게 과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지난 10월 5일 협상 결렬을 발표하며 “미국이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서 “우리의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가 계속 유지되는가, 되살리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고 공갈을 쳐도 트럼프는 묵묵부답이다. 북한은 앞으로 협상의 판 자체를 깨는 ICBM을 발사하진 않겠지만, 야금야금 레드라인에 접근하며 트럼프를 압박하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미국에 잠수함에서 SLBM 시험발사,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와 인공위성 발사,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 등의 카드를 내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에 대해 강경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김정은과의 관계를 좋게만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도발에 격노해 김정은을 ‘꼬마 로켓맨(little rocket man)’이라고 조롱하고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라고 경고했던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김정은과의 1차 정상회담 이후에는 ‘강한(strong)’ ‘훌륭한(great)’ ‘유쾌한(funny)’ ‘똑똑한(smart)’ 등의 다양한 긍정적인 수식어를 동원해 김정은을 높이 평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과 훌륭한 관계를 갖고 있다”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 “김정은은 훌륭한 협상가이고, 아주 전략적인 사람” “우리는 처음부터 아주 잘 어울렸다”는 등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 김정은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 본토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SLBM을 발사하는 도발을 했는데도 경고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트럼프가 김정은의 교언영색(巧言令色)과 아부(flattery) 전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김정은은 싱가포르에서부터 트럼프가 싫어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환심을 샀다. 김정은은 또 틈만 나면 친서를 보내 최상급 존칭을 사용하면서 트럼프를 칭송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트럼프는 김정은의 친서들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편지’라고 칭찬했다. 트럼프는 지난 8월 10일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문제를 제기한 김정은의 친서 내용을 소개하면서 “김정은이 한국이 ‘워게임(war game)’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다”며 “나도 비용 때문에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북한 편을 드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는 “김정은이 한·미 연합훈련이 종료되면 (단거리미사일) 시험발사도 종료하겠다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이 끝난 지 나흘 후인 지난 8월 24일 김정은은 미사일급 초대형 방사포를 시험발사하면서 트럼프와의 약속을 깼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나는 그렇게(약속 파기)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는 우리가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은 ‘북한과 관련된 자업자득’이라는 제목의 기사(10월 8일자)에서 “지극히 개인화된 외교(personalized diplomacy)의 부정적 측면의 하나는 문제의 인물이 약화할 경우 외교가 악화한다는 것”이라면서 “트럼프 개인이 좌지우지해온 대북 외교가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톱다운 대화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한때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탄핵 국면에서 트럼프식 개인 외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잡지는 북한이 자신들이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입지를 점했다고 판단하면서 ‘협상의 달인’을 자임하는 트럼프가 북한과의 핵 합의를 통해 국내의 골칫거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할 것이라는 셈법을 가동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잡지의 이런 지적은 트럼프의 대북정책에서 진정한 적(敵)은 트럼프 자신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조야에서도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사실상 실패했으며 그 이유는 전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대평가한 트럼트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김정은과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함으로써 북한이 핵무기를 늘리며 미사일 실험을 계속해도 미국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든 장본인은 트럼프”라면서 “트럼트는 이런 상황에서도 김정은으로부터 ‘아름다운 편지’를 받은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트럼프가 정치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북한과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이 ICBM에 못 미치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각종 도발을 해도 못 본 척하겠다는 인상만 줬다”고 비판했다.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대행도 “트럼프가 북한으로부터 핵과 ICBM 실험 동결 약속을 받아냈다고 말하지만, 북한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모든 종류의 무기를 시험하고 있다”면서 “트럼프는 몇 차례 정상회담을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압박으로 거둔 효과마저 상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트럼프는 물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문재인 한국 대통령 등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장해 대북 외교를 실패로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 지난 9월 24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를 선언하고 있다. photo NBC

   미국서 나오는 대북 제재 복원 목소리
   
   이런 가운데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도 트럼프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테파니 클라인 알브란트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미국 전문 위원은 “트럼프의 김정은에 대한 유화 정책 때문에 최대 압박 정책이 ‘폐차 직전(on its last legs)’의 상태에 놓였다”면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크게 손상됐으며 이로 인해 북한이 더욱 강력해졌고 미·북 협상에 대한 영향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알브란트 전 위원의 이런 지적은 트럼프가 김정은과 무분별하게 외교관계 개선을 해줘 북한이 세계 곳곳에서 제재를 피해 불법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알브란트 전 위원은 “북한은 트럼프가 우려하는 임계점 아래에서 핵능력을 계속 개발하는 반면, 트럼프는 비핵화 진전 부족에 대한 잘못과 실패를 인정하거나 접근법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은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북한이 비핵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제재를 통한 압박 캠페인을 다시 전면가동할 것’이라고 경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인 공화당의 코리 가드너 의원도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을 경우 남은 옵션은 최대 압박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밥 메넨데즈 의원도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중국과 러시아, 한국 등 여러 나라들에 의해 느슨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캠페인을 복원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따른 탄핵 바람을 잠재우고 내년 대선에서 재선하기 위해 외교 성과 과시용으로 북한 핵 협상에서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 및 ICBM의 일부 핵탄두를 폐기하는 대신 미국은 단거리와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도록 허용하고 제재를 완화하는 절충안에 합의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11일 중국이 400억~500억달러(47조~59조원)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약속하자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 관세율 인상 조치 계획을 철회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을 휴전한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내년 대선에서 재선하려면 자신의 지지층인 농민들의 표심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에 양보한 것이다. 트럼프의 예측불허 성향을 볼 때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도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타협한 것처럼 양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무튼 대통령학 전문가인 더글러스 브링클리 미국 라이스대 교수가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이 독특한(sui generis·라틴어에서 파생된 영어)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듯이, 트럼프의 적은 트럼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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