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중심가를 다니다 보면 검은색 대형 SUV 등 자동차의 행렬을 자주 만난다. 고위인사와 경호원을 가득 태운 긴 자동차 행렬이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면 큰 정부 행사가 있거나 외국 정상이 방문했다는 뜻이다.

다른 고위급들과 달리 대통령의 행렬엔 맨 끝에 구급차가 따라붙는다. 대통령 건강과 관련해 긴급상황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백악관에도 의료시설이 상당 부분 갖춰져 있어서 웬만한 치료나 검사는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토요일이었던 지난 11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비밀리에 월터리드 국립 군의료센터를 찾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통령의 일정은 대부분 공개되는데, 비공개 일정으로 종합병원에 간 일이었으니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문제였으면 백악관에서 해결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종합병원까지 간 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들 했다. 게다가 주말에 대통령의 움직임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최근 민주당 경선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가슴통증으로 유세를 쉬고 치료를 받은 일이 있어서인지 그 비슷한 소문이 돌았다. 가슴통증설, 심장마비설, 긴급수술설에 이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보도가 이어졌다. 결국 월요일(11월 18일)에 백악관 대변인이 대통령은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었다며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대통령 건강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다.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중 총격을 당한 일이 있었다. 중상은 아니었지만 고령에 탄환제거 수술을 받고 쇠약해진 대통령의 건강에 국민들은 불안해했다. 레이건은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후 남성용 운동 잡지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서, 잡지 표지에 밝게 웃으며 운동하고 있는 모습이 실렸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건강한 모습은 열심히 홍보하고 문제가 생기면 쉬쉬한다. 젊고 쾌활한 이미지였던 존 F 케네디 대통령 평전을 읽다가 그가 얼마나 자주 심하게 아팠는지를 알고 놀란 일이 있다. 그의 잦은 병원행은 당시엔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대통령들은 언제나 ‘운동하는 대통령, 건강한 대통령’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깅으로 건강관리를 했는데, 임기 말엔 관절에 무리가 된다며 실내용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게 화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농구를 하거나 골프를 쳤다. 트럼프도 골프를 좋아한다. 70대지만 비거리가 대단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병원행에 대한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자 트럼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건강검진 받으러 갔다왔더니 멜라니아가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심장마비인 것 같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병원에 간 건 일상적인 검진이었고 남은 검진은 내년 1월에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런 보도를 한 언론이 나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선 평소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는 트럼프 대통령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얘기가 돌아다닌다. 특히 탄핵조사가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시기라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열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강이상설이 더 그럴듯하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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