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은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의 설이나 추석 때처럼 거대한 귀향 행렬과 이로 인한 교통체증이 이어진다. 외국인 입장에선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때가 가장 쓸쓸한 외국살이의 날이기도 하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한국에서도 중요한 사회·정치적 이슈가 진행되고 있을 때 명절이 끼면 이슈가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잉글랜드의 집에 가는 친구는 그러나 “엄마가 만들어주신 칠면조 구이를 먹으면서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왜 트럼프와 탄핵 이야기를 하겠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가 지난 두 주에 걸쳐서 공개청문회로 진행됐다. 그전엔 의회에서 비공개 조사가 이뤄지고 관련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다가 공개 청문회로 전환되니 상당한 충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청문회 과정이 생중계돼 직접 보고 들으면 아무래도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우크라이나 의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미끼로 자신의 경쟁자인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청문회장에 나온 전·현직 관료와 외교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국제, 외교, 외국… 이런 단어가 들어가면 미국인들의 관심이 급격히 줄어든다. 우리나라도 그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서, 정말 전 세계가 눈을 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아닌 한 외국 문제가 톱뉴스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과의 관련성이란 점에서 점수가 확 떨어지기 때문이다.

의무감으로 이번 청문회를 지켜보긴 했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상하게도 낯설었던 고든 선들랜드 EU대사의 증언이다. 선들랜드는 트럼프 취임준비위원회에 100만달러를 기부한 호텔 사업가 출신이다. 그는 청문회장에 나왔던 다른 관료나 외교관들과는 달리 심각하지 않았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의회 청문회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웃곤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자주 통화하고 때로는 ‘보안’도 의식하지 않고 ‘막말’도 섞어서 대화한다며 친분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가 우크라이나 의혹에 대가성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자, 트럼프는 즉시 그를 모른다고 부인해버렸다.

트럼프 탄핵 조사 공개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탄핵에 대한 여론이 크게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11월 26일 CNN 조사에서 탄핵 찬성이 50%, 반대가 43%였다. 하지만 지난 11월 3일 NBC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선 찬성 49%, 반대 46%였다. 공개청문회가 시작된 직후인 11월 15일 로이터와 입소스 조사에선 찬성 44%, 반대 40%였다.

트럼프는 일일이 맞받아치고 있다. 트위터와 유세장에서 ‘정신 나간’ 자들의 ‘미친’ 탄핵이라며 민주당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자신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아무런 문제없는 완벽한 통화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녀사냥’이자 ‘미친 짓’이라는 ‘프레임’으로 되레 더 강하게 공격하는 것이 트럼프식 전략인 듯하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유세 때는 물론 취임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과 크고 작은 의혹과 스캔들을 이겨왔다. 이번에도 통할까. 추수감사절 휴가 이후 워싱턴 분위기가 힌트를 줄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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