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이 트럼프 탄핵소추안을 표결하기로 한 지난 12월 18일(현지시각)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날씨가 매섭게 추워졌다. 우버를 타고 의사당 쪽에서 내리는데, 뭔가 구호 같은 것이 쓰여 있는 흰 종이를 든 남자 두 명이 차로를 향해 서 있었다. 한 명은 ‘탄핵에 찬성하면 경적을 울리세요’, 다른 남자는 ‘탄핵을 원치 않으면 경적을 울리세요’라고 쓴 종이를 각각 들고 있었다.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같은 팀이 아니에요”라며 서로를 외면했다. 우연히 거기 같이 서 있게 됐을 뿐이란 것이다. 의사당 입구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존재는 트럼프 탄핵을 둘러싸고 갈라진 미국 여론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니 트럼프 말대로 그의 당선 직후부터 워싱턴의 정치무대에는 계속 탄핵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러시아 스캔들에 이어 우크라이나 의혹까지 트럼프 탄핵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최근 어느 정치인이 토론에 나와서 “하루 종일 뉴스채널 틀어놓고 온갖 정치적 논란으로 종일 떠드는 워싱턴 분위기가 미국 다른 지역에도 똑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를 고려해서일까. 워싱턴에서 하원 탄핵 표결이 있던 날 트럼프는 미시간주로 가서 재선 유세를 했다. 쇠락한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 벨트’에 속하는 미시간주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자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미 하원은 이날 저녁 권력남용과 의회방해 등 두 가지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을 했고, 두 안건 모두 찬성이 과반을 넘어 하원을 통과했다. 미국 하원에서 역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가 통과된 것이다. 트럼프는 미시간주에서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격렬하게 민주당을 공격했다.

어떤 의미에선 탄핵 결과는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상태였다. 이변이 없다면 간단한 산수만으로 답을 낼 수 있었다. 현재 미 하원의 재석 의석수는 공석 4석을 제외하고 431석이다. 탄핵소추안은 이 중 과반인 216명의 찬성을 받으면 통과된다. 하원에서 민주당은 233석을 차지하고 있다. 대거 이탈표가 없는 한 하원에서 탄핵소추안 통과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탄핵 심판의 전권을 가진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상원 100명 중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 무소속 2석이다. 하원을 통과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3분의 2 의석, 즉 67명이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으로선 기대하기 힘든 싸움을 하는 셈이다.

하원의 탄핵조사 등으로 워싱턴은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트럼프를 둘러싸고 반으로 갈라진 미국 여론엔 크게 변화가 없고 트럼프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 방송이 하원 표결일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 중 90%는 트럼프 파면을 반대했고, 민주당 지지자 83%는 찬성했다. 중도층에서는 찬반 비율이 50%와 44%였다. 미국 여론이 정확하게 둘로 갈려 있다는 사실만 확인된 셈이다. 양극화된 미국 정치 지형에서 탄핵은 트럼프 지지율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원의 탄핵 절차가 끝날 때까지 양당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내년 초부터 불이 붙을 대선 유세와 맞물리면 그 강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