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일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숨진 이란의 해외공작 책임자 거셈 솔레이마니(가운데). ⓒphoto 뉴시스
지난 1월 3일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숨진 이란의 해외공작 책임자 거셈 솔레이마니(가운데). ⓒphoto 뉴시스

미국이 지난 1월 3일 이라크에서 이란의 해외공작 책임자인 거셈 솔레이마니 소장을 드론으로 살해하였다.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월 7일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2020년 벽두부터 중동에서 메가톤급 위기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이란이 신속한 보복을 감행한 이유는 솔레이마니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각별한 신임을 받던 이른바 ‘전쟁영웅’이기 때문이다.

솔레이마니는 이란군의 정예부대인 이란혁명수비대(IRGC) 가운데에서도 핵심인 ‘쿠드스군(Quds Force)’을 지휘하던 인물이다. ‘쿠드스군’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중동 지역에서 이란 이슬람정권의 공격적인 팽창정책을 주도했다. 솔레이마니는 지난 20여년간 쿠드스군을 지휘하면서 때로는 미국과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중동 질서를 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자로서 활동하였다.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쿠드스

이란의 중동전략에서 솔레이마니 개인의 영향력이 워낙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그의 사망 이후 이란이 중동전략을 재정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살이 국제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가 지휘하던 ‘쿠드스군’이 이란 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쿠드스’란 성스럽다는 의미로, 이슬람에서는 성지 예루살렘을 지칭한다. 쿠드스군은 명분상으로는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이슬람이 해방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실제로는 해외에서의 비밀공작을 전담한다. 쿠드스군 사령부는 테헤란의 구 미국대사관에 자리 잡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 직후 미국인 인질 사태가 발생한 곳으로 이슬람정권 반미의 상징이 된 장소이다. 쿠드스군의 전략목표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쿠드스군은 사담 후세인(1937~2006)이 지배하던 이라크가 이란을 침략한 1980년 직후 창설되었다. 8년 동안 지속된 이 전쟁에서 쿠드스군은 이라크 내의 반(反)후세인 세력인 쿠르드족과 시아파에 침투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쿠드스군은 처음부터 해외에서의 비밀공작이 본연의 임무이다. 이란은 쿠드스군을 이용하여 레바논의 시아파 ‘헤즈볼라’, 수니파 이슬람이지만 이스라엘과 가장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인접국들 내부의 반정부 무장단체들에 지원을 늘려나갔다. 이란 이슬람정권은 이를 통해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였다.

솔레이마니는 1997년경 이후부터 쿠드스군을 지휘해왔다. 이라크와의 전쟁에 참가하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20대에 부대장으로 진급한 그는 이라크와의 전쟁 중에 이미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나 시아파 이슬람교도들과 은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을 도와 탈레반 공격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하였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목표는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테러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이슬람 수니파인 탈레반 정권은 이전부터 자국 내 시아파를 핍박하였다.

이 때문에 솔레이마니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북부동맹’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솔레이마니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미군은 북부동맹과 함께 지상군 특수부대를 아프가니스탄 내로 진출시킬 수 있었다. 미군의 탈레반 정권 붕괴에 솔레이마니도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솔레이마니는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적인 카르자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반미노선을 고집하는 탈레반을 지원해왔다.

2002년 1월 미국은 부시 대통령이 의회연설을 통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정한 후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미국에 의해 3대 악의 축 국가로 지정된 이란으로서는 동쪽과 서쪽에서 미군과 맞닥뜨리는 위기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당시 솔레이마니는 이라크 내 쿠르드족과 시아파 이슬람을 조종하며 미군에 협력하였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이라크군을 공격한 것은 물론 중요 군사정보도 미군 측에 전달하였다.

하지만 솔레이마니는 수니파인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반미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주로 이라크 시아파 무장조직에 무기를 공급하거나 테러를 사주하는 방법으로 미군을 괴롭혔다. 가장 대표적인 수법이 사제폭발물(IED)을 통한 미군 살해였다. 미군 탱크의 철갑까지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의 IED에 대해 미군은 이란에서 제작되어 이라크 시아파 조직에 전달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라크 미군 사망자 가운데 20%는 IED로 인한 사망자였다고 한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이던 맥크리스털 장군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심각하게 검토하였지만 그와 쿠드스 요원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가장하여 이라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체포하거나 살해하기가 어려워다고 한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라크 시아파 정권 탄생의 주역

솔레이마니는 시아파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이들을 통해 적대세력들을 무력화시키면서 이라크 내에서 이란에 우호적인 세력을 키워나갔다. 정계와 언론계에도 뇌물과 협박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미군 철수를 선언하고 이어 2010년에 이라크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때 탄생한 시아파 말리키 정권이 바로 솔레이마니의 작품이었다고 서방 언론들은 전했다. 솔레이마니가 말리키를 테헤란으로 불러 자신의 오랜 친구인 쿠르드족 탈레바니를 대통령직에 앉힐 것과 미군의 완전 철수를 조건으로 말리키의 총리직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라크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친미파 정치인 알라위는 내각을 구성하지도 못하고 밀려났다. 솔레이마니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전후 구상은 틀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말리키는 총리가 된 후 솔레이마니를 적극 도왔다. 이라크의 은행을 통한 이란의 자금세탁을 허용하였고 매일 원유 20만배럴을 따로 솔레이마니에게 비밀리에 보내도록 하였다. 덕분에 솔레이마니의 쿠드스군은 본국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도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솔레이마니와 미국의 애증관계는 또 있다. 미군의 골칫거리였던 과격한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격파하는 데에도 솔레이마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수니파 이슬람으로 구성된 IS는 이라크 서부를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며 서방 인질들을 참수하는 영상을 수차례 공개하는 등 국제적으로 충격을 줬다. IS는 한때 쿠르드 지역의 중심인 모술을 장악하였고, 이란의 동맹국인 시리아를 위협하는 등 맹위를 떨쳤다. 미군은 IS에 대해서는 공습에 주력하고 적극적인 지상전은 펼치지 않았다. IS가 시리아 정부군과 내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IS를 공격하면 시리아의 아사드 독재 정권을 돕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란과 동맹관계인 시리아의 아사드는 자국민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을 벌이는 잔혹한 정권이다.

지난 1월 6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장례식에 운집한 군중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6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장례식에 운집한 군중들. ⓒphoto 뉴시스

IS 점령 쿠사이르 탈환 작전의 주역

IS와 일전일퇴의 격전을 치른 가장 대표적인 세력은 쿠르드족과 시아파였고, 솔레이마니가 배후에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란의 쿠드스군도 IS와의 전투에 동원하였다. 2012년 4월 발생한 시리아 쿠사이르 전투는 솔레이마니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IS가 점령한 쿠사이르를 탈환하기 위하여 솔레이마니는 헤즈볼라에 병력 2000명을 보내라고 지시하였다. 이란의 소수 군사고문단까지 동원된 이 전투를 지휘한 솔레이마니는 결국 쿠사이르를 탈환하였다. 솔레이마니는 2012년 러시아군의 시리아 파병 직전에는 러시아군의 요청으로 모스크바로 날아가 러시아군 참모들에게 전투 상황을 직접 브리핑하기도 했다. 러시아군의 개입 이후 IS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IS의 지도자 바그다디가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자폭하였다고 발표하며 “러시아, 터키, 이라크, 시리아 쿠르드”에 감사를 표했다. 당시 미국의 감사 대상에서 이란은 빠져 있다. 바그다디의 사망으로 IS는 공식적으로 소멸됐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IS가 사라지면 솔레이마니의 활용가치도 사라진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그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미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IS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이라크에서 다시 미군과 시아파 무장세력과의 크고 작은 접전이 재개되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솔레이마니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군은 2019년 12월 28일 대표적인 시아파 군사조직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군사시설들을 공습하여 조직원 25명을 죽였다. 이후 12월 31일 바그다드에서 거행된 이들의 장례식을 마친 군중들은 미국대사관에 돌을 던지는 등 위협을 가했다. 그리고 사흘 후인 1월 3일 새벽 1시 바그다드공항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솔레이마니가 헤즈볼라의 창설자인 무한디스와 함께 사망하였다.

솔레이마니는 2년 이상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지내면서 중동 질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이라크전쟁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군 경력,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와의 친분관계, 해외에 형성된 인맥 등 주로 개인의 역량을 바탕으로 활동하였다. 이란에서 단시일 내에 솔레이마니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솔레이마니의 사망은 이란의 이슬람정권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다. 솔레이마니는 전쟁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면서도 인기 없는 이슬람정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했기 때문이다.

솔레이마니는 이란의 벽촌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막노동 일을 하며 체육관에서 역도를 했다. 이라크와의 전쟁이 터지자 10대에 군대에 들어가 20대에 부대장이 되는 등 군대에서 출세한 인물이다. 그후에도 20년 이상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야전에서만 활동해왔다. 그런 만큼 국내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청년학생들의 시위나 개혁파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이란은 지금 솔레이마니 죽음을 계기로 미국과 강경하게 맞서고 있지만 내부는 복잡하다. 일단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99년 이란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 사태가 발생했는데 당시 학생들은 이슬람신정을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솔레이마니는 개혁파 하타미 대통령에게 시위를 진압하라고 요구하였고, 학생시위 사태는 이란혁명수비대 등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에도 이란에서는 지속적인 경제난과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권 때문에 청년들의 개혁 요구가 그치지 않았다.

2000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시리아 내전, IS와의 전쟁 등 이란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고강도 분쟁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이슬람정권은 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피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는 침체를 거듭하였으며 성직자와 군 지도자들의 부패는 늘어갔다.

내부 개혁세력 무차별 학살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란에 대한 봉쇄정책이 강화된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원유 수출도 막혀 경제가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지난해 11월 휘발유값 인상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휘발유값 인상 이외에도 고율의 인플레, 이란 리알화 가치의 하락 등으로 이란 사람들의 생활은 고단해지고 있다.

이슬람 성직자들과 이란혁명수비대가 장악한 국가경제의 비효율과 부패는 원망의 대상이다. 결국 지난해 11월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 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였다. 야즈드에 위치한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무실이 처음으로 시위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이슬람정권은 시위를 탄압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6일간 차단한 후 이란혁명수비대 소속 군병력을 동원해 시위대에 기관총을 무차별 발사하여 무려 17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이들 중 700여명은 여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슬람정권은 무차별 발포를 은폐하기 위하여 사망한 희생자의 시신을 탈취하였다고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제거 직후 트위터를 통해 이란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의 배후에도 강경파 실세인 솔레이마니의 영향력이 작용하였음을 시사하였다.

이란에서는 오는 2월 총선거가 실시된다. 이란의 경제난은 좀처럼 호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정권이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게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 못지않게 국내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가 재발할 경우 군부 주도로 유혈진압이 재개될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1월 6일 솔레이마니 장례식에 참석한 하메네이는 눈물을 쏟으며 보복을 다짐하였다. 하지만 이란이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미군과 전면전을 벌일 만한 여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란이 보복 조치로 호르무즈해협 등 원유수송로를 봉쇄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럴 경우 이란 경제에 더 큰 타격이 된다.

1월 7일 이란은 이라크 서부 깊숙한 곳에 있는 미군기지에 지대지미사일 10발을 발사하였다. 이란 미사일의 목표지점이 바그다드 미국대사관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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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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