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총리 관저에서 아베 총리와 함께 코로나19 사태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6일 총리 관저에서 아베 총리와 함께 코로나19 사태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4월 7일 도쿄도, 오사카부를 포함한 일본의 7개 지역에 한 달간 ‘사회적·경제적 계엄(戒嚴)’을 의미하는 긴급사태가 선포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사람들 간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 이상의 협력을 요청한다”며 긴급사태 조치를 발령했다.

그런데 일본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 조치는 아베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 게 아니다. 일본 국회는 지난 3월 ‘신종인플루엔자 등에 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 코로나19 사태에도 적용 가능토록 함으로써 언제든지 긴급사태 선포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아베는 경제에 끼칠 영향을 의식해 소극적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업적인 ‘아베노믹스’가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일본 초유의 긴급사태 조치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68) 도쿄 도지사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가능했다. 고이케는 지난 3월 말부터 도쿄의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4월 들어 첫 주말이던 4~5일 도쿄에서 확진자 261명이 발생, 누적 환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5일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생방송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에게 “하루속히 긴급사태를 선포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다음 날인 4월 6일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과 2주 만에 4배 이상 환자가 늘어 5000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것이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는데, 고이케는 적시에 긴급사태 선포를 총리에게 촉구함으로써 도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긴급사태가 선포된 직후에는 TV에 나와 어려운 말보다 “스테이 홈(Stay Home)”이라고 강조함으로써 필요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사실 고이케는 ‘도쿄가 뉴욕처럼 될지 모르는’ 상황을 만든 데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심각해지는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지난 3월 하순까지 도쿄올림픽 개최에 미련을 갖고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해왔다. 오사카부에서는 지난 3월 20일(춘분의 날)부터 3일간의 연휴 동안 지역주민들에게 인근 지역 왕래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고이케는 당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월 하순 올림픽 연기가 확정될 즈음에야 뒤늦게 도시 봉쇄 등을 언급하며 긴급사태를 요청하고 나서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고이케는 일본의 정치 1번지 나카타초(永田町·총리관저, 국회의사당이 모여 있는 곳)에서 ‘집념의 여인’으로 불린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언제든 입장을 바꾸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정치인” “권력자가 있는 곳만 찾아다닌다”는 비판도 따라다닌다.

TV도쿄의 앵커로 활동하던 고이케는 40세에 정계에 입문했다.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신보수당을 거친 후 2003년 자민당에 입당했다. 철새정치의 전형이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그를 환경상, 오키나와 담당상을 맡기며 정치적 중량감을 갖추게 했다.

2016년 도지사에 당선된 고이케는 ‘일본의 첫 여성 총리’가 돼 남성 위주의 일본 정치를 일거에 바꿀 수 있는 인물로 꼽혔다. 일본 정치사에서 1993년은 ‘1955년 자민당 체제’를 무너뜨린 해로 기록돼 있다. 고이케는 2017년 중의원 선거 당시 ‘어게인 1993년’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고이케는 2017년 7월 도쿄도 의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을 탈당, 도민 퍼스트회를 만들었다. 창당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도민 퍼스트회는 돌풍을 일으켰다. 도쿄도 의회 127석 중 49석을 획득, 제1당이 되면서 자민당을 경악시켰다.

‘일본회의’ 소속 혐한 성향

고이케는 그 여세를 몰아서 그해 10월 중의원 선거 직전에 다시 ‘희망의 당’을 창당했다. 신생정당이지만, 87석의 제1야당이었던 민진당을 사실상 흡수 합병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기세가 거셌다. 민진당의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는 “출마를 원하는 사람은 희망의 당에 공천을 하라”고 발표할 정도였다. 당시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문·방송에서는 ‘아베-고이케 양자 대결’ 식의 제목이 넘쳐났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우익 성향의 고이케는 민진당의 진보 성향 의원들을 추려내고 보수 성향 의원들만 공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배제의 정치’로 불리며 민진당 전체를 흡수하는 데 실패했다. 고이케에게 반발하는 민진당의 진보 성향 의원들은 입헌민주당을 만들어 독립해 나갔다. 결국 이 선거에서 고이케 바람은 불지 않았다. 자민당은 연립여당을 구성하는 공명당과 함께 개헌안 단독 발의선(전체 의석의 3분의2)을 확보했다. 반면 희망의당은 40석을 간신히 넘는 제3당에 그쳤다. 고이케는 총선에서 패하자 51일 만에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고이케는 2017년 아베와 맞붙으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관계가 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오는 7월 5일 열리는 도지사 선거에서는 자민당이 고이케를 꺾기 위한 도지사 후보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고이케는 다시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자민당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데 성공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고이케가 지사직을 잘 수행해왔으며 그를 상대할 만한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선거에서도 그의 재선이 유력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생정당 레이와신센구미의 야마모토 다로 대표가 출마한다고 해도 낙승이 예상된다.

일본 우익의 구심점인 ‘일본회의’ 소속인 고이케는 한국에 대해선 혐한(嫌韓) 입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쿄 지역 재일교포들에게는 한국 학교의 확대 이전이 숙원사업이다. 이는 마스조에 요이치 전 지사가 약속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이케는 2016년 한국 학교 이전 백지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년 9월 1일이면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인에 의해 살해된 한국인 추도식이 열린다. 도쿄 도지사들은 매년 여기에 추도문을 보내왔다. 고이케는 이런 관례를 계속 거부해 일본 언론으로부터도 비판받고 있다. 고이케가 도지사에 재선되면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재일교포들 사이에서는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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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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