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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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중국 양회(兩會·전인대와 정협) 폐막과 함께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국가안전법’을 통과시키면서 홍콩의 국제금융허브 지위가 흔들릴 조짐이다. 중국의 홍콩 국가안전법 제정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992년 제정된 ‘미국·홍콩 정책법’에서 규정한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홍콩 정책법’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특별행정구(SAR)인 홍콩을 중국 본토와 별개의 지역으로 간주해 관세·투자·비자 등에 특별혜택을 부여하는 홍콩 지위의 근간이다. 미국의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가 폐지되면 홍콩에 있던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를 상실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6월 3일 만난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는 “홍콩 사태는 미·중 무역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1차 미·중 무역협상 때 수준까지 대외정책의 일관성을 맞추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광해 대표는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의 주(駐)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표부, 주홍콩 영사관(재경관) 등을 거쳐, 미국 워싱턴DC의 IMF(국제통화기금) 대리이사 등을 지냈다. 지금은 우리금융그룹 산하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홍콩과 워싱턴 주재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제국 홍콩’ ‘IMF 견문록’ 등의 책을 펴내기도 한 최광해 대표는 “홍콩의 역내 금융허브 지위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불안한 금융허브 지위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매년 3월과 9월 2차례 발표되는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홍콩의 GFCI는 737점으로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에 이어 6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9월 3위에서 3계단이나 추락한 수치다. 지난해 송환법 사태가 순위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올해 안전법 사태까지 지표에 반영되면 추가 순위 하락은 불가피하다.

그는 “‘금융허브’라는 것 자체가 런던, 싱가포르, 홍콩처럼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달러를 구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한다”며 “홍콩이 금융허브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급속한 성장을 하던 한국과 중국 등이 홍콩에서 달러를 조달하면서부터”라고 말했다. 덕분에 홍콩 전체 GDP(국내총생산)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홍콩 조사통계청에서 따르면, 2018년 기준 홍콩 전체 GDP에서 금융 및 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에 달한다. 수출입 및 도소매(21.3%) 다음으로 크다.

“지금은 한국과 중국이 홍콩이란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달러를 조달하게 되면서 홍콩의 지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한국만 해도 2014년부터 외화 순채권국으로 바뀌면서 국내에서 달러를 빌려주며 영업하던 외국계 금융사들이 많이 빠져 나갔다”고 했다. 세계 1위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동아시아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중요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도 홍콩 하나쯤 포기한다해도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다. 1997년 반환 당시 중국 전체 경제규모의 20%에 달했던 홍콩의 경제규모가 지금은 2% 남짓에 불과하다. 2019년 기준 중국과 홍콩의 GDP는 각각 99조위안과 2조위안이다. 그는 “홍콩의 실력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중국 경제가 워낙 커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며 “중국 입장에서도 홍콩은 금융허브가 아닌 변방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최 대표는 “홍콩의 달러 페그제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홍콩이 1983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달러 페그제는 홍콩이 금융허브 지위를 누리는 주된 요인이다. 자국 통화를 일정한 비율(달러당 7.75~7.85홍콩달러)로 달러와 무제한적으로 교환해 태환성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고정환율제인 ‘달러 페그제’를 통해,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도 금융허브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달러 페그제를 안 하겠다는 것은 쉽게 말해 홍콩에서 위안화를 쓰겠다는 얘기인데, 홍콩이나 중국이나 그렇게 할 실익이 없다”고 했다.

싱가포르, 상하이, 베이징 반사이익

최 대표는 “사실 홍콩의 중요성은 ‘금융허브’라기보다는 중국 시장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이라고 했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외국 자본들은 그동안 신뢰도가 떨어지는 중국 대륙에 직접 들어가기보다 서양의 계약과 제도를 잘 이해하는 홍콩을 거쳐서 들어갔다. 해외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들도 외국에 직접 나가기보다 말이 통하고 전문적인 회계와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홍콩을 거쳐서 나갔다. 하지만 홍콩의 중계지 기능이 약화되면 홍콩을 거쳐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이 약화되면 싱가포르 등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영국 식민지였고 전통적으로 역내 금융허브 자리를 놓고 홍콩과 경쟁해온 싱가포르는 홍콩과 경쟁 및 보완 관계에 있다. 그에 따르면, 홍콩이 은행과 신디케이트론 등에 강점이 있다면, 싱가포르는 외환과 파생상품, 에너지 등에 강점이 있다. 그는 “싱가포르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달러 수요가 많은 아세안 시장에서 홍콩보다 접근하기 좋다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 홍콩을 거치지 않고 중국 시장과 소위 ‘직거래’가 이뤄지면 상하이나 베이징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지난 3월 GFCI 순위에서 상하이는 홍콩(6위)과 싱가포르(5위)를 모두 제치고 뉴욕, 런던, 도쿄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베이징은 홍콩의 턱밑인 7위에 위치했다. 최 대표는 “단적으로 홍콩을 거치지 않고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영어 잘하는 중국 사람을 고용해서 일하면 불편해도 못할 것은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홍콩의 역내 금융허브 기능이 약화된다고 해서 한국이 얻게 될 반사이익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롭게 통용되는 영어와 같은 생활환경을 제외하고도 달러 페그제, 법인세 및 소득세의 실질적 단일과세, 내외국인에 차별 없는 규제, 이자소득세 및 상속세, 증여세가 없는 것 등등”이라며 “과연 이런 일들을 한국에서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이는 33위에 그치는 서울의 GFCI 순위로 입증된다.

최 대표는 “코로나19로 대외적인 신인도가 올라간 것을 계기로 한국은 ‘홍콩식’이 아닌 우리가 가진 경제력과 장점 등을 기반으로 다른 의미에서의 금융허브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모델로는 ‘도쿄’를 거론했다. 일본 도쿄는 지난 3월 GFCI 순위 4위에 올라갔다. 최광해 대표는 “한국도 홍콩만큼은 아니지만 영어 통용 환경이 좋아졌다”며 “국민연금의 대외투자력이나 파생상품 세계 1위 등 우리 자체의 장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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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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