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남부지검장 대행인 오드리 스트라우스 검사가 지난 7월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도피 중 체포된 길레인 맥스웰의 범죄 혐의를 설명하고 있다. 맥스웰은 제프리 엡스타인의 최측근으로 그의 성착취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뉴욕 남부지검장 대행인 오드리 스트라우스 검사가 지난 7월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도피 중 체포된 길레인 맥스웰의 범죄 혐의를 설명하고 있다. 맥스웰은 제프리 엡스타인의 최측근으로 그의 성착취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즘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둘러싸고 때 아닌 ‘미투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공화당 및 민주당 지지자들과 언론들 간의 두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 경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미성년 강간 및 성매매 혐의로 구속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1953~2019)이 감옥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엡스타인은 10대 중반의 소녀들을 성폭행하고 미국과 영국의 유력 인사들에게 성행위를 알선하는 등의 행위로 지탄을 받은 인물이다.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던 인사들 가운데에는 미국의 클린턴, 트럼프 등 전·현직 대통령들과 영국의 앤드루 왕세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유력 인사들이 자신들의 소아성애 사실을 은폐하려 옥중의 엡스타인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번졌다.

미성년 성착취 등으로 수감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백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 ⓒphoto 뉴시스
미성년 성착취 등으로 수감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백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 ⓒphoto 뉴시스

맥스웰 체포로 다시 불거진 성추문

그런데 사건 1년 만인 지난 7월 엡스타인에게 소녀들을 소개해준 혐의로 그의 측근이었던 길레인 맥스웰(59)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붙잡혔다. 맥스웰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유력 인사들의 소아성애 의혹이 미국과 영국에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엡스타인과 민주당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드러내려는 폭스뉴스 등 우파 매체와, 트럼프와의 친밀도를 강조하려는 CNN 등 좌파 매체들 간의 대립도 뚜렷해지고 있다. 관련 기사들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이번 대선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뉴욕 출신의 유대인인 엡스타인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큰돈을 번 인물이다. 사망 당시 재산은 5억달러에 달했다. 그는 2005년 플로리다의 부호들 거주지인 팜비치에 대저택을 사들인 후 인근의 가출소녀나 가난한 소녀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마사지를 시키기 시작했다. 소녀들에게는 200달러 정도를 지급했는데 “친구들을 데려오라”는 권유도 했다. 엡스타인의 수상쩍은 행각이 길어지자 플로리다 경찰이 조사에 나섰지만 그는 성폭행 혐의 두 가지만 시인하고 13개월 징역을 사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하였다. 이 플리바게닝을 주도한 알렉산더 어코스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이 되었다.

그가 13개월 징역형만 선고받자 10대 시절 그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유명 인사들에게 넘겨져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들이 피해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엡스타인의 엽기적인 성생활과 유명 인사들의 관련 사실들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플로리다 외에 카리브해의 섬도 사들여 휴양시설로 활용하였다. 그는 보잉727 전용기에 클린턴 같은 저명 인사들과 소녀들을 태우고 섬으로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언론들은 요즘 엡스타인의 섬을 소아성애섬(pedophile island), 전용기를 ‘롤리타 특급(Lolita express)’이라고 부른다. 롤리타는 30대 남성과 10대 여성의 사랑을 다룬 러시아 출신 미국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서 나온 말이다.

엡스타인 전용기에서 포즈를 취한 클린턴(오른쪽)과 엡스타인.
엡스타인 전용기에서 포즈를 취한 클린턴(오른쪽)과 엡스타인.

‘소아성애섬’에 누가 갔나

엡스타인에게 소녀들을 소개해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번에 체포된 영국 출신의 여성 길레인 맥스웰이다. 맥스웰이 이른바 ‘포주’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플로리다 팜비치 가까이에 있는 트럼프의 마라라고클럽에서 일하던 버지니아 쥐프르라는 17세 금발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다. 맥스웰은 마사지사가 되고 싶다는 쥐프르에게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유인해 엡스타인에게 소개하였다. 쥐프르는 이후 2년 반 동안 엡스타인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했다고 증언하였다. 그녀는 또 맥스웰의 지시에 따라 영국 앤드루 왕자를 비롯, 엡스타인의 변호인이었던 하버드대 형법학 교수 앨런 더쇼위츠,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등 저명 인사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다.

앤드루 왕자의 경우 2001년에 영국 런던의 한 집에서 쥐프르, 맥스웰 등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되었지만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미국 검찰은 앤드루 왕자에게 조사에 응해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엡스타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늘어나자 FBI 등의 수사도 강화되었고 결국 엡스타인은 2019년 7월 다시 구속되었다. 당시 그는 무려 1억달러의 보석금을 제의하였지만 거부당했고 결국 구속 한 달 만에 감옥에서 자살하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각종 음모론이 대두되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대놓고 “클린턴이 사주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트럼프가 엡스타인을 더 쉽게 죽일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예 엡스타인의 본업이 유력 인사들에게 미성년 성매매를 알선하고 이를 근거로 협박해 거액의 투자를 받아내는 수법이었다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맥스웰이 체포된 이후 엡스타인 ‘성매매 서클’의 유명 인사들이 다시 화제가 되자 클린턴이나 트럼프나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부인하기에 바쁘지만 피해여성들의 증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미국 법원은 맥스웰과 엡스타인 사이에 오고간 이메일과 피해여성 쥐프르의 고발내용을 공개하였다. 쥐프르는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타고 카리브해에 있는 섬으로 간 사람들 중에 빌 클린턴도 있다고 증언하였다. 자신이 이 섬에서 클린턴을 봤을 때 맥스웰도 있었으며 다른 두 소녀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쥐프르는 “내가 엡스타인에게 빌 클린턴이 이 섬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거죠?”라고 묻자 그는 한 차례 웃고 나서는 “‘내가 그에게 여러 호의(favors)를 베풀고 있지’라고 답했다”고 증언했다. 쥐프르는 “그가 말한 여러 호의가 무엇인지는 내게 말한 적이 없어서 모른다. 그가 진지하게 말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쥐프르는 “엡스타인의 섬에는 저택 본채 외에도 4~5채의 빌라가 있었으며, 우리는 빌라에 머물렀다”고 기억했다. 비행 기록을 보면 실제 클린턴은 이 섬에 여러 차례 간 것으로 되어 있다. 클린턴이 엡스타인의 성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인 숀테 데이비스라는 젊은 여성을 다정하게 껴안고 찍은 사진도 있다.

왼쪽부터 영국 앤드루 왕자, 버지니아 쥐프르, 맥스웰. 2001년 런던에서 쵤영된 사진.
왼쪽부터 영국 앤드루 왕자, 버지니아 쥐프르, 맥스웰. 2001년 런던에서 쵤영된 사진.

누가 더 더럽나, 미국은 댓글 전쟁 중

CNN과 NBC 등 좌파 언론은 이러한 뉴스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고 우파 언론인 폭스뉴스는 비판한다. 실제로 CNN 등은 쥐프르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클린턴 부분만 보도에서 제외하였다. 클린턴이 엡스타인의 섬에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사진도 있고, 섬에서 그를 봤다는 증언도 많지만 클린턴은 이 섬에 갔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트럼프와 엡스타인과의 친밀함을 짐작할 만한 정황도 널려 있다. 트럼프는 2002년 인터뷰에서 1980년대에 엡스타인을 만났다며 그를 “끔찍한 녀석(terrific guy)”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엡스타인도 나만큼이나 미인을, 특히 가급적 어린 여성들을 좋아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2019년 엡스타인이 체포된 이후에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거리를 뒀다. 2016년 대선 직전에는 한 여성이 1994년에 엡스타인이 주최한 파티에 갔다가 트럼프에게 강간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이 여성의 변호인은 해당 여성이 살해위협을 받았다는 주장도 폈다. 최근에는 1992년 한 파티에서 엡스타인 옆에 선 트럼프가 뭔가를 떠벌리고 엡스타인은 이를 듣고 웃다가 주저앉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NBC는 맥스웰 체포 뉴스를 전하면서 뜬금없이 이 동영상을 링크하였다. 지난 7월 25일 트럼프는 “나는 팜비치에 살게 된 이후 수년에 걸쳐 그녀(맥스웰)를 많이 만났다.… 어쨌든 그녀가 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성년 여성 약취유인 및 성매매 등의 혐의로 붙잡힌 여성에 대한 대통령의 말치고는 의아한 느낌을 준다.

엡스타인 관련 보도는 미국 언론에서 핫토픽이다. 사람들의 분노도 크다. 권력과 금력과 명성을 가진 유력한 남성들이 불우한 처지의 소녀들을 성노리개로 삼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전개되는 양상도 여성들이 피해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사건이다. 가해자들 중에 전·현직 대통령도 들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및 공화당 지지자들은 서로 트럼프와 클린턴이 관련되어 있다며 온라인에서 뜨거운 댓글 전쟁을 벌이는 중인데 주요 댓글들을 소개해 본다.

‘다음은 클린턴을 체포할 차례다. 그리고 앤드루 왕자와 힘 있는 부패한 인물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맥스웰도 감옥에 있는 동안에 자살하거나 살해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못된 놈들을 전부 잡아넣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들 모두 법의 심판을 받는 게 피해자들을 위한 길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엡스타인과 15년간 우정을 쌓았던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엡스타인은 트럼프의 마라라고에서 마음대로 소녀를 유인하였다.’

‘비밀경호원들을 소환하여 클린턴이 엡스타인과 소녀들과 함께 그 섬에 갔는지 여부를 증언하게 하자.’

‘트럼프가 성추행 혐의로 20차례나 고발당한 것을 폭스뉴스가 보도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나?’

‘구글에서 ‘클린턴과 엡스타인’을 검색해보라. 트럼프 사진만 나온다.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26차례나 탔다고 비행 기록이 되어 있다. 그는 섹스스캔들을 수차례나 은폐하였다.’

‘모두 클린턴, 바이든, 트럼프, 부시, 오바마 같은 소아성애자들과 강간범들을 보호하는 쓰레기들이야. CNN이 좌파 쓰레기들을 보호한다면 폭스뉴스는 우파 쓰레기들을 보호할 뿐이야!’

트럼프가 맥스웰에게 “잘 있기 바란다”고 한 것을 두고도 논쟁이 벌어진다.

‘닥치고 있어라. 그렇지 않으면 엡스타인처럼 목숨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클린턴 일가가 손을 쓰기 전에 잘 있으라고 한 말이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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