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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2648호] 2021.03.08

세계 곳곳에서 동상이 사라지고 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1-03-09 오후 3:27:05

▲ 지난해 7월 미국 시카고에서 철거되는 미 신대륙 발견자 콜럼버스 동상. photo 뉴시스
미국 시카고에서는 요즘 시내에 있는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동상 철거 문제를 놓고 시민들 간에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2월부터 시 당국이 동상이나 현판 41개의 철거 여부에 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오는 4월까지 시 당국이 마련한 온라인 사이트나 트위터 등에 자신의 의견을 남길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20년 전 소련 붕괴 당시에 철거됐던 악명 높은 국가보안위원회(KGB) 창설자인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을 다시 세우자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 러시아와 대적하는 우크라이나에서는 소련 공산주의혁명 지도자인 레닌의 동상을 모두 철거하는 한편 유대인 학살 추모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각국이 정치적인 격변을 겪으면서 정치적 상징물인 동상의 운명에도 부침(浮沈)이 일고 있다.
   
   
   시카고, 링컨 동상 철거 여부로 시끌벅적
   
   미국 시카고시에서 동상 철거 여부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지난해 미국에 몰아친 BLM(Black Lives Matter) 시위 때문이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데 항의하는 시위는 백인우월주의 및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시위사태로 확산되었다. 시위 과정에서 미 대륙 발견자 콜럼버스, 초대 대통령 워싱턴 장군 등 미국 역사상 주요 인물들의 동상 등 500여점의 공공기념물이 백인우월주의, 노예제 옹호, 아메리카 인디언 학대 등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특히 콜럼버스는 유럽 백인들의 미 대륙 식민화를 촉발한 인물로 간주되어 미국 전역에 설치된 동상 40여점이 철거되었다.
   
   시카고의 동상들도 BLM 시위의 쓰나미를 피할 수 없었다. 시카고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근거지로 민주당이 득세하고 있는 지역이다. 로리 라이트풋(60) 시장은 미국 최초의 흑인 레즈비언 시장으로 백인 여성과 결혼하여 두 딸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진보파이다. 라이트풋은 이미 지난해 7월 시카고의 콜럼버스 동상 2점을 철거했다. 그 후 시 당국은 시내에 있는 각종 동상과 기념물 500여점이 시카고가 추구하는 가치인 평등과 정의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그리고 올해 1월 시 당국은 41개의 동상이 백인우월주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부정확한 표현, 노예제 및 인종차별과 관련한 인물 미화(美化), 역사에 대한 일방적 평가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 기념물에는 링컨 동상 5점 등 4명의 대통령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담은 동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시 당국은 2월 말 문제의 동상들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4월 1일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고 있다. 라이트풋은 지난해 시위사태로 인해 “역사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며 이번 동상 철거 프로젝트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공유하고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트풋이 작년에 콜럼버스 동상 철거를 지시할 당시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도 시 당국이 일방적으로 공공기념물을 철거 대상으로 정한 데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링컨 동상을 철거 대상으로 올려놓자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온라인에는 다음과 같은 반대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16세기 구국 영웅 알렉산드르 넵스키 동상. 모스크바 루비얀카 광장에 새로 세워질 동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photo 우태영

   ‘미국은 워싱턴, 링컨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과거 대통령들, 특히 링컨과 워싱턴 동상을 철거하려는 그 어떤 생각이나 계획도 수치스러울 뿐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하지만 미국은 워싱턴과 링컨 없이 존재할 수 없다. 200년 후에 트럼프 동상이 세워진다면 그건 철거해도 된다.’
   
   ‘없어도 되는 동상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링컨 동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링컨은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남부연방군을 패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뭔가를 철거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설치할 궁리를 하라.’
   
   시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라이트풋은 지난 2월 23일 “우리는 링컨의 나라에서 살고 있으며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물러섰다. 시카고의 동상들은 예술성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직 어떤 것이 철거될지는 알 수 없다. 무솔리니가 미국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에게 기증한 기념비를 철거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 동상을 철거할 때에도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크게 반발한 적이 있어 두고 볼 일이다.
   
   러시아에서는 최근 모스크바의 루비얀카 광장에 어떤 인물의 동상을 세울지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소련 시절 이곳에는 KGB를 창설한 펠릭스 제르진스키(1877~1926) 동상이 맞은편의 KGB 본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KGB는 소련 시절 반체제 인사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제르진스키 동상은 1991년 8월 철거됐다. 당시 소련 공산당 강경파들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보리스 옐친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저항으로 실패로 끝났다.
   
   쿠데타가 무산된 직후 모스크바 시민들은 KGB 건물 앞에 모여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념할 확고한 물증을 남기고 싶어 했다. 당시 루비얀카 광장에 모인 군중들은 제르진스키 동상의 철거를 결정했다. 모스크바 시 당국도 이에 호응하여 크레인을 동원해 동상을 철거했다. 시민들은 ‘KGB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환호하였다. 제르진스키 동상이 철거되는 이 장면은 소련의 붕괴를 상징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다. 이후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많은 조형물이 철거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소련이나 러시아를 상징하는 동상이나 조형물이 대부분 철거되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요즘 러시아에서는 제르진스키 동상이 철거된 자리에 동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다. 현재 누구의 동상을 건립할지 논쟁 중이다. 러시아 언론들은 여러 후보자를 놓고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다. 레닌이나 피터 대제 등은 이미 다른 곳에 동상이 있어 제외됐다. 그 결과 원래 있던 제르진스키와 알렉산드르 넵스키(1221~1263)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넵스키는 독일의 침략을 격퇴한 군주이다. 16세기에 러시아정교회의 성인으로 축성된 구국 영웅이기도 하다. 러시아 네티즌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991년 루비얀카 광장에서 철거되는 KGB 창설자 제르진스키 동상.

   KGB 건물 앞에 누구 동상 세우나
   
   ‘우리의 부모들이 제르진스키 동상을 건립했다. 이는 소련 역사이며 러시아는 소련을 계승했다. 우리 자식들은 제르진스키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제르진스키의 손에 피가 묻었든 아니든 그는 역사 그 자체이며 역사를 만든 인물이다.’
   
   ‘제르진스키 동상 철거는 유물 파괴였을 뿐이다.’
   
   ‘넵스키 동상을 건립해야 한다. 넵스키가 죽인 사람은 러시아의 적들뿐이다. 넵스키가 가장 강조한 말은 “하나님은 권력이 아닌 진실 속에 거하신다”는 것이었다.’
   
   ‘넵스키는 러시아 역사의 가장 밝은 면을 상징한다.’
   
   ‘제르진스키 동상이 철거된 이유는 그가 처형자이자 살인자였기 때문이었다. 제르진스키 동상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그가 저지른 ‘붉은 테러’로 숨진 수많은 희생자를 기리는 분수를 설치하고 희생자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조명을 비추게 해야 한다.’
   
   넵스키 동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제르진스키 동상 재건립은 많은 논쟁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러시아의 한 언론에서 실시 중인 온라인 투표 결과 2월 27일 현재 넵스키가 53%를 획득하여 47%를 얻은 제르진스키를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지난 2월 26일 “사람들을 단합시켜야 할 기념물이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동상도 건립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 “러시아에서는 수천 개의 동상을 철거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러시아 민주인사들의 의견을 담은 기사를 올렸다. 30년 전 KGB를 창설한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철거되었지만, 당시 KGB 소령이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이 되어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제르진스키 동상이 철거되던 당시에 환호했던 한 러시아 언론인은 “동상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고 해서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헛된 짓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언론인은 30년이 지난 “오늘날 러시아의 권력구조는 쿠데타에 반대했던 시민들보다는 쿠데타를 시도했던 인물들이 원했던 것과 가까운 체제가 되었다. 커다란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1991년 독립 이후 러시아와 대립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해 말까지 7년 동안 레닌 동상을 모두 철거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와의 분쟁이 격화되며 소련 동상 철거를 본격화하였다. 2013년 12월 수도 키예프에서 레닌 동상이 처음 철거되었는데 그해 11월부터 키예프에서는 친러시아적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유혈시위가 진행 중이었다. 레닌 동상은 2020년 12월 오데사를 끝으로 모두 철거되었다. 그러나 야누코비치 실각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를 장악한 러시아계 주민들은 레닌 동상을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기며 여전히 지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이들 러시아계 주민들과의 전쟁으로 그동안 1만3000여명이 사망했다.
   
   
▲ 2014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철거되는 레닌 동상.

   우크라이나의 레닌 동상 철거 열풍
   
   2015년 탈공산주의(decommunism)법이 제정된 이후 소련 기념물 철거는 가속화되었다. 이 법은 소련을 나치독일과 동일시하는 내용으로, 공산주의 기념물 철거에 반대하면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2020년 말까지 2500개의 소련 기념물이 철거되었으며 그중 1500개가 레닌 동상이었다. 소련 시절 정해진 987개의 마을 명칭과 5만2000개의 거리명도 모두 우크라이나식으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세력은 탈소련에 이어 탈러시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미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동상이 파괴되었으며, 러시아제국의 군사지도자인 쿠투조프, 수보로프 등의 동상도 철거되었다. 민족주의 세력은 현재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나 레르몬토프의 이름을 딴 지명을 변경하는 문제도 논의 중이다. 러시아어의 사용금지 정책도 추진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이전에도 오랫동안 러시아와 한 나라를 유지해왔다. 소련 시절에도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체르넨코 등 최고지도자들을 배출했다. 고골, 안나 아흐마토바, 미하일 불가코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이 러시아어로 활동한 우크라이나 문인들이다. 우크라이나의 급진적 민족주의 세력이 탈소련에 이어 탈러시아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그만큼 두 나라가 오랫동안 공동의 문화와 역사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련과 러시아의 상징물을 철거하는 우크라이나는 올해 1월 수도 키예프 부근의 협곡 바비 야르에 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 8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추모시설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바비 야르 추모시설이 계획된 장소의 넓이는 350에이커(1.4만㎢·43만평)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장소에 2025년까지 1억달러를 투입해 12개의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1941년 9월 19일 키예프를 점령한 나치독일은 며칠 뒤인 9월 28일 키예프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돈, 문서, 귀중품들을 갖고 공동묘지로 사용되던 바비 야르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나치독일은 이틀에 걸쳐 기관총 사격을 가해 3만여명의 유대인을 사살했다. 이후에도 대규모 학살이 진행돼 이곳에서 숨진 유대인, 집시, 소련군 포로, 환자 등은 모두 10만여명에 달했다. 종전 후 소련은 유대 민족주의의 발호를 우려하여 바비 야르를 별도의 추모 장소로 정하지 않고 공원으로 활용해 왔다.
   
   바비 야르 추모시설 건립에 대해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트로이 테리엔 교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죽은 자를 매장하는 방식은 삶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학살 연구자인 로버트 얀 반 펠트 박사도 “독일과 소련이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지 못하도록 체계적인 노력을 시도했다”며 추모시설은 “희생자들을 재매장한다는 의미도 갖는다”고 설명했다. 유대인 추모시설 건립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형제국에서 벗어나 서구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려는 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부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젤렌스키도 유대인이다.
   
   
   “누군가의 영웅을 철거하면 분노 부른다”
   
   미국 좌파나 우크라이나 우파가 동상 철거 등을 통해 과거사 청산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명분과 절박함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물에 불과한 동상 철거의 필요성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와 관련해 스탈린 격하운동을 주도했던 니키다 흐루쇼프의 손녀인 니나 흐루쇼프의 평가도 새겨들을 만하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직후 그의 동상은 대부분 철거되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에서 스탈린의 인기는 높다. 2019년 러시아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탈린이 긍정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견이 7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나 흐루쇼프는 “동상 철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스탈린을 비판한 것은 흐루쇼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지만, 그를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동상을 모든 공공장소에서 철거한 것은 큰 실수였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누군가의 영웅을 철거하는 일은 증오를 불러일으켜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올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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