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불륜 덫에 빠진 미 대선 후보들… 누가 그들을 무너뜨렸나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세계
[2671호] 2021.08.16

불륜 덫에 빠진 미 대선 후보들… 누가 그들을 무너뜨렸나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1-08-15 오후 2:50:57

▲ 1987년 내셔널인콰이어러 표지를 장식한 게리 하트 상원의원 불륜 보도.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를 달리던 게리 하트는 도나 라이스와의 불륜이 폭로되면서 백악관행을 포기해야 했다.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20대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후보자들 간의 경쟁이 뜨거워질 태세다. 단순히 정책뿐만 아니라 치열한 도덕성 검증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 여야 유력 후보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검증을 둘러싸고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선과정에서 유력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영화배우 김부선씨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바지를 벗어보일까요?”라고 답해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 국민의힘 유력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에 대해서도 여당은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제 원조국가인 미국에서도 대선이 시작되면 후보들과 가족에 대한 검증이 벌어진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후보 가족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일은 대체로 삼가는 분위기다. 반면 후보자들의 거짓말이나 도덕성에 대한 추궁은 매섭게 펼쳐진다. 유력한 대선주자들 가운데 언론의 취재로 거짓이 탄로 나 하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족보다는 후보자의 거짓말
   
   미국에서 경쟁 후보의 아내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발생했다. 뉴욕 갑부인 도널드 트럼프와 쿠바 난민의 아들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트럼프는 크루즈를 말끝마다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크루즈는 트럼프를 ‘정신이상자’ ‘뉴욕좌파’ ‘트위터 사령관(twitter in chief)’ 등으로 비난했다. 정책과 노선보다는 인성과 출신배경 등을 둘러싼 두 사람의 비방전은 급기야 가족을 향했다.
   
   트럼프는 크루즈의 아버지가 캐나다 국적이라면서 출마 자격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3월 유타주 경선을 앞두고 크루즈 지원단체가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의 나체 사진을 담은 TV 광고를 방영했다. 멜라니아가 GQ라는 잡지에 모델로 등장한 사진이었다. ‘멜라니아 트럼프, 여러분의 다음 퍼스트레이디. 싫다면 테드 크루즈를 지지하면 됩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광고는 유타주의 보수적 기독교 일파인 모르몬교 신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매우 좋지 못했다. 트위터에도 “아무리 정치지만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독사의 아이디어” “멜라니아는 모델로서의 직분에 충실했다. 그녀는 열 살 난 아들이 있다” “이 사진을 올리는 것은 여성학대를 합법화하는 것으로 트럼프가 한 모든 짓거리보다 더 나쁘다” 등의 부정적인 댓글이 넘쳐났다.
   
   
▲ 2016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측에서 폭로한 멜라니아 트럼프의 나체 사진.

   트럼프 반대 진영이 올린 멜라니아 사진
   
   트럼프는 즉각 트위터에 크루즈의 부인 하이디 여사의 일그러진 표정을 멜라니아의 얼굴과 함께 올리면서 “사진 한 장은 천 마디의 말보다 가치가 있다”고 썼다. 또 크루즈 부인의 우울증 전력 등을 폭로하겠다고 시사했다. 그러자 크루즈는 멜라니아의 사진을 담은 광고가 자신의 허가 없이 나간 것이라며 “진정한 남자는 여자를 공격하지 않는다. 멜라니아는 사랑스럽고, 하이디는 나의 사랑이다”라는 트위터를 올리고 상대방 아내에 대한 공격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와 크루즈는 트럼프 당선 전후에 화해했지만 트럼프와 크루즈 간의 아내를 둘러싼 싸움은 “미국 정치사상 가장 추악한 싸움”이었다고 비즈니스위크는 평가했다.
   
   트럼프와 본선에서 맞붙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멜라니아를 공격하지 않았다. 힐러리는 TV토론 도중 트럼프의 가장 훌륭한 점이 무엇인가라는 한 청중의 질문에 “자식들을 잘 키운 것”이라고 답했다.
   
   2004년에는 대선 본선에서 맞붙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의 부인들이 논쟁을 벌였다. 케리는 친구인 존 하인츠와 사별한 테레사 하인츠와 재혼하였다. 테레사는 세계적 식자재 기업인 하인츠사의 상속녀로 기업경영과 자선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대선에서 공화당은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며 부시의 부인인 로라 여사가 현모양처임을 부각하려 했다. 테레사는 유에스에이투데이와의 회견에서 기자가 ‘미국 대중은 일하지 않는 전통적인 영부인을 원하는데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로라와 다른 유형의 영부인이 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로라 부시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조용해 보이고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제대로 된 직업(real job)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가 나이가 더 많고 사회경험도 더 많다. 그녀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로라 부시는 텍사스에서 10년간 공립학교 교사와 사서로 취업한 사실이 있었는데 그걸 무시하거나 누락한 발언이었다. 테레사는 다음 날 사과하며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직업은 없다.… 나는 부시 여사가 영부인으로 국가에 봉사한 데 감사하며, 그녀가 과거에 중요한 직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의 보좌관 카렌 휴즈는 테레사의 사과 성명은 “어머니가 가장 중요한 진정한 일자리라는 사실을 빠뜨렸기 때문에 더 나쁘다. 그녀는 로라 부시가 집안에 머물러 가족을 키우는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모욕의 대상이 아니라 찬양해야 할 고귀한 선택”이라고 반박했다.
   
   멜라니아 트럼프나 로라 부시에 대한 비판이 일시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끌기는 했지만 선거 판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는 없다. 미국 언론들은 후보자 부인을 둘러싼 공방은 사소한 가십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후보자 본인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은 치열하게 펼쳐진다.
   
   
   혼외정사로 사퇴한 첫 주자 게리 하트
   
   유력한 대선후보자 가운데 혼외정사가 드러나 사퇴한 첫 인물은 게리 하트였다. 1988년 실시된 대선을 앞둔 1987년, 민주당의 게리 하트 상원의원은 압도적인 선두주자였으며 대통령 당선도 유력했다. 민주당 후보들을 두 자릿수 차로 크게 압도한 상태였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당시 64세) 후보와의 경쟁에서도 응답자의 50%가 하트를 찍겠다고 답하여 부시보다 13%포인트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백악관행을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실제 하트는 또래 정치인들 중 뛰어난 안목을 지닌 후보였다. 하트는 당시 정치인들이 여전히 공산주의의 위협과 철강산업의 육성에 매몰되어 있을 때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테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고, 미국의 산업을 정보기술 기반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나 라이스라는 금발 미인과의 불륜 사실이 드러나며 그는 대통령을 향한 야심을 중도포기하면서 불륜 정치인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전까지 정치인의 혼외정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같은 큰 업적을 남긴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은 모두 재임 전이나 재임 중에 항상 불륜을 저질렀다. 불륜을 저지르지 않는 민주당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과 지미 카터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왜 명민한 게리 하트는 혼외정사 때문에 몰락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매트 바이는 2014년 9월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게리 하트의 몰락은 어떻게 미국 정치를 영원히 변화시키게 되었나?’라는 장문의 기사에서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했다. 그의 분석은 요즘도 미국 정치에서 스캔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인용된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정치에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위험한 소용돌이가 생성됐다며 세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첫째, 미국은 여전히 13년 전에 발생한 충격적인 워터게이트 사건의 잔류효과를 느끼고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로 사임한 것은 충격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통령의 정치에 개인 도덕성의 중요성을 새로이 주입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사회적 관행이 변화하였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에서 불륜은 남성들에게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케네디나 존슨 같은 권력자가 여비서들과 밀회를 갖는 것은 점심 때 술 한잔 마시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이러한 견해는 도전받게 된다.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운동은 결혼생활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변형시켰다.
   
   특히 1980년대 성 혁명 세대들에게 혼외정사는 정치적 배신으로 간주되었으며, 폭로되어야 마땅한 잘못이었다.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던은 하트의 출마 포기 선언에 “대선후보자가 여성을 머저리로 여기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질타했다.
   
   
   후보 스캔들 탐사보도의 위력
   
   셋째,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미국 언론계가 근본적으로 변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미디어에서 성공비결은 권력에 접근하여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워터게이트 사건과 TV가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유형의 기자들이 탄생하게 된다. 베이비부머 기자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부유한 기자로 떠올랐을 때 언론사에 입사했다. 우드워드가 스타가 된 것은 권력 접근성이 아니라 스캔들에 대한 탐사보도 덕분이었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미국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들었으며, 신세대의 희망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등극했다. 젊은 기자들에게 이들이 주는 충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동부의 명문대학을 나온 베이비부머 기자들은 저널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라면 또 하나의 우드워드 기자가 되는 것만이 나아갈 길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치인의 거짓을 폭로하는 것이 기자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되었다.
   
   하트를 몰락하게 만든 도나 라이스와의 불륜은 1987년 5월 마이애미헤럴드의 추적 보도로 시작되었다. 5월 6일 워싱턴포스트의 스타기자인 폴 테일러가 하트의 기자회견장에서 미국 역사상 대통령 후보에게는 처음으로 “불륜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까?(Have you ever committed adultery?)”라고 물었다. 하트는 더듬거리다가 결국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후보 경선을 포기하였다. 하트의 포기는 정치부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분기점이 되었다. 당시 하트의 불륜을 처음 보도한 마이애미헤럴드의 톰 피들러 기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기자가 할 일은 후보자 성격의 어떤 면이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후보자에 대하여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을 취재하여 공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인물이 타당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미국에서 1990년대까지 모든 정치부기자들의 취재 목표는 정책 문제에서 후보자의 인성 문제로, 거창한 세계관에서 거짓을 폭로하는 것으로 전이되었다. 게리 하트 이후 정치 저널리즘의 모토가 있다면 “우리는 당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의 사명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였다고 매트 바이는 설명했다.
   
   매트 바이의 분석대로 게리 하트 사건 이후 미국 정치에서는 불륜과 거짓말은 유력한 정치인의 경력을 끝장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오럴섹스를 한 탓에 탄핵 위기에 몰렸다. 그는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언론을 향해 1998년 1월 26일 TV에 나와 “나는 그 여자와 성관계(sexual relations)를 갖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위증혐의로 의회에서 탄핵에 부쳐졌으나 부결되었다. 공화당 소속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도 클린턴 탄핵을 주도하는 과정에 그 자신이 비서와 혼외정사를 벌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바람에 사임하였다.
   
   
▲ 2008년 대선에 나섰던 민주당 존 에드워즈 후보. 그 역시 리엘 헌터라는 무명 여배우(오른쪽)와의 불륜이 폭로되면서 후보직을 사퇴했다. photo 뉴시스

   불륜을 은폐하던 에드워즈의 몰락
   
   2008년 대선에 나섰던 민주당의 존 에드워즈 후보도 혼외정사와 이를 은폐한 전력 때문에 정치이력이 끝장나게 되었다. 대선 전인 2006년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존 에드워즈 등 3명의 후보가 대두되었다. 클린턴은 아직 남편의 스캔들과 탄핵위기로 인한 정치적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오바마는 좌편향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2004년 존 케리의 러닝메이트였던 존 에드워즈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에드워즈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유방암을 앓는 부인 엘리자베스와 4명의 자녀였다. 그런데 에드워즈는 선거를 앞두고 전국 유세를 벌이는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리엘 헌터라는 무명 여배우를 만나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에드워즈는 불륜을 은폐하기 위해 헌터를 자신의 선거유세를 기록할 촬영기사로 고용했다.
   
   그는 불륜을 지속하면서도 공개석상에서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그녀는 나의 영웅이다”라고 말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를 질투한 헌터는 2007년 에드워즈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협박했다. 에드워즈는 헌터가 미쳤다고 대응했다. 에드워즈의 측근이었던 앤드루 영은 2010년 ABC-TV에서 “에드워즈는 그녀가 자신에게 불임이라고 확약했으며, 자신이 음모에 걸려든 것 같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영은 “에드워즈가 헌터를 설득하여 낙태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기자들이 불륜을 눈치채고 취재에 달라붙었다. 에드워즈 팀은 기사화를 막으려 백방으로 뛰었지만 2007년 10월 내셔널인콰이어러를 필두로 모든 언론 매체에 불륜 사실이 공개되었다. 결국 2008년 1월 에드워즈는 경선 포기를 선언하게 된다.
   
   게리 하트 사건 이후 언론이 거짓말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