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승부 결과를 잇달아 맞혀 화제가 된 ‘점쟁이 문어’ 파울.
남아공월드컵 승부 결과를 잇달아 맞혀 화제가 된 ‘점쟁이 문어’ 파울.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 FIFA월드컵이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가 배출한 스타는 단연 ‘점쟁이 문어’ 파울이다.

“파울의 예언은 색맹이 낳은 결과”

독일 오버하우젠 해양생물박물관에 사는 ‘파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문어는 두 나라의 국기가 새겨진 유리상자 2개 중 한쪽을 선택해 홍합을 꺼내 먹는 방법으로 경기 결과를 점지해줘 경기 이상의 관심과 재미를 선사했다. 이런 방식으로 독일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부터 잉글랜드와 16강은 물론 아르헨티나와의 8강, 스페인과 4강, 우루과이와 3~4위전까지 독일이 치른 7경기 및 결승전 승패를 모두 맞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전문 도박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승률이다.

적중률 100%의 신기(神氣)를 자랑했던 파울의 신통력이 날이 갈수록 화제가 되자 수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족집게’ 예언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수학자들은 사실 ‘족집게 문어’의 정확한 예측은 초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확률의 우연의 연속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파울의 예언 능력을 확률로 계산하면 256분의 1. 확률이 반반(2분의 1)인 승패만 맞히면 되기에 문어가 연속해서 여덟 번을 모두 알아맞힐 확률은 2의 8승 분의 1, 즉 256분의 1인 셈이다. 이는 180만분의 1인 복권 당첨 확률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지만, 사람도 100% 예측하지 못한 것을 연체동물이 성공했다는 것은 정말로 신통방통한 일이다. 수학자들은 확률적으로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딱 두 가지 선택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만일 여기에 무승부 항목이 추가됐더라면 파울의 신통력은 그대로 끝이 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파울의 예언을 ‘색맹’이 낳은 결과라고 말한다. 문어는 연체동물 중 시력이 매우 좋은 데 반해 색맹이어서 국기의 색깔을 구별할 수 없다. 파울이 독일의 국기를 연달아 인식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색이 아닌 음영(陰影)에 의해서라는 게 이들 생물학자들의 설명이다. 독일 국기는 가로로 검정과 빨강, 노란색의 세 띠로 되어있는데, 각 띠 부분의 색조가 만들어내는 깊이있는 음영이 유달라 파울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독일 국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독일과 스페인의 4강전,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국기는 또 어떻게 구별해 승리를 점칠 수 있었을까. 스페인의 국기 또한 독일과 마찬가지로 세 띠를 형성하지만 유독 가운데의 노란색 부분이 독일보다 훨씬 넓다. 따라서 파울에게는 독일 국기보다는 노란색 부분의 음영이 잘 드러나는 스페인 국기가 더 눈에 띄어, 스페인 유리상자에 들어가 홍합을 집어삼켰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주장이다.

도구 사용할 줄 아는 고도의 지능

대다수 동물학자들은 문어의 지능을 높이 평가한다. 동물학자들은 척추동물의 ‘지휘자’가 인간이라면, 온몸이 흐물흐물한 무척추동물의 지휘자는 문어일 것이라고 말한다. 글을 아는 물고기라는 뜻의 문어(文漁)의 한자에서 알 수 있듯 문어의 지능은 상당히 높다. 문어 뇌의 크기는 인간의 60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지능은 강아지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문어의 지능은 적에겐 강하게 먹물을 뿜지만 서로 장난칠 때는 먹물을 약하게 내뿜을 정도의 판단력이 있다. 실제로 미로학습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로 속에 가둬두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문제해결법을 익혀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고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이를 기억한다. 또 훈련받은 녀석은 잼이 든 유리병을 주면 발로 병뚜껑을 돌려 딸 줄 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포유동물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행동(장난)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사육 중인 문어의 행동연구에 따르면 문어가 물결이 찰랑이는 수조에서 빈병을 물의 흐름에 거스르게 던져놓고 그 떠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행동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얘기다.

실제로 문어는 코코넛 껍데기를 들고 다니며 도구로 쓴다.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호주의 줄리안 핀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핏줄 문어는 적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코코넛 껍데기를 다리 안쪽에 끼워 위장한 채 한 번에 20m 이상 헤엄치고 이 껍데기를 잠자리로 사용하기도 한다. 껍데기가 하나일 때는 뒤집어쓰고 두 개일 때는 몸 전체를 감싸 숨기고 껍데기를 대문처럼 사용한다. 문어를 잡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문어에게 고도의 지능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금까지는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와 까마귀 같은 일부 조류만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생물로 알려져 왔다. 무척추동물 가운데는 문어가 처음이다.

8개의 다리도 사고 능력 갖춰

문어는 또 다리에도 자체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어 뇌를 없애도 다리의 동작이 가능하다. 흔히 문어대가리라고 부르는 민둥민둥하고 둥그스름한 부위는 머리가 아닌 몸통이다. 머리는 이 둥그스름한 몸통과 다리의 연결부에 있고 그 속에 뇌가 들어앉아 있다.

문어 뇌의 중추신경계는 각 다리에 “저 물체를 잡아서 가까이 가져오라”는 등의 매우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임무 수행은 각 다리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말초신경계들에 완전히 맡긴다. 예를 들어 문어는 8개의 다리를 다양한 각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다가 잡아먹힐 상황에서는 다리 하나쯤은 적에게 잘라주는 기지도 발휘한다.

이때 다리가 뇌에 연결돼 있지 않더라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는 다리가 뇌로부터 명령을 받기는 하지만 뻗고 구부리는 등의 구체적 움직임은 다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어 다리에는 5000만개 뉴런으로 구성된 정교한 신경계가 빨판이 있는 면의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신경계가 문어 다리를 움직이는 ‘지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축구팬들은 뇌로도 다리로도 똑똑한 지능을 발휘하는 문어 파울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 번 더 선전해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어의 평균수명은 보통 3년이라 다음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기대하기 힘들다. 파울 역시 사람들의 기대와는 별개로 축구 승부 점치기의 세계에서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앞으로는 수족관을 찾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월간 과학잡지 Newton 전 편집장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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