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논란을 빚고 있는 공주보. ⓒphoto 뉴시스
철거 논란을 빚고 있는 공주보. ⓒphoto 뉴시스

물 관리의 전권을 넘겨받은 환경부가 4대강 사업으로 건설한 금강·영산강의 보(洑) 5개를 무력화시키는 행정 절차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에 출범한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자연성 회복을 핑계로 보의 해체와 상시 개방을 제안한 것이 그 시작이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졸속으로 이루어진 수질·경제성 평가를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의 졸속을 탓하던 정부가 똑같은 졸속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절망적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심각한 절차상 하자가 있었고, 경제성도 기대할 수 없는 4대강 ‘죽이기’ 사업이었다는 것이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다. 적폐청산을 핑계로 밀어붙였던 감사원의 4차 감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라고 한다. 물론 과거 보수정권이 저질러놓은 악성 적폐를 절대 두고 볼 수 없다는 정부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론이었다.

사실 4대강 사업의 모태였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시작부터 부실했다. 수심 6m의 대운하로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서 획기적인 물류혁명을 일으키겠다는 화려한 ‘녹색 뉴딜’ 구상은 설득력이 없었다. 거대한 선박 전용 승강기로 소백산맥을 돌파하겠다는 발상은 만화에나 등장할 수준이었다. 토목공사라면 이골이 난 대통령의 설득 노력도 광우병 사태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결국 거창하고 화려하게 시작했던 대운하 사업은 가뭄·홍수 예방과 수질개선을 목표로 하는 소박한 치수(治水) 사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2009년 2월에 시작된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엄청난 양의 토사를 준설하고, 기묘한 형상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워지는 동안 전국은 거대한 토목공사로 몸살을 앓았다. 어쨌든 2013년에는 16개의 보가 모습을 드러냈고 856㎞에 이르는 자전거 길도 만들었다. 보의 위치 선정, 설계, 환경영향평가에 낭비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졸속’이라는 평가는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졸속의 결과를 체감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부실시공의 흔적이 드러났고, 더위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녹조가 기승을 부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2014년에는 흉물스러운 큰빗이끼벌레가 등장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던 2016년의 4대강은 거대한 ‘녹조 라테’로 변해버렸다. 보 상부의 시커멓게 오염된 뻘도 흉측스러웠다. 4대강 사업이 생명파괴이고, 환경 대재앙이라는 원성(怨聲)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6개 보 인근의 주민들의 갈증은 확실하게 해소되었다. 4대강 사업이 아니었더라면 2015년의 기록적인 가뭄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라붙어가던 보령댐 주변의 주민들을 구해준 것이 백제보였다. 이제 백제보를 상시 개방해버리면 625억원의 예산을 들여 보령댐까지 연결해놓은 21㎞의 도수로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유속이 아니라 인·유기물이 문제

4대강 사업에 대한 이념적인 논란에서 과학은 처음부터 설 자리가 없었다. 보의 기능과 환경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부분 상식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과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전문가도 넘쳐난다. 30년 전 대학원 학생 시절의 노트와 자신의 알량한 학위논문을 ‘과학’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전문가도 있다.

보 때문에 유속이 느려지면 녹조의 발생위험이 커지는 것은 분명한 과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보를 개방해 유속을 증가시킨다고 해서 녹조가 반드시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燐)·유기물과 같은 오염물질이 지나치게 많으면 여전히 녹조가 남게 된다. 반대로 오염물질이 없으면 유속이 아무리 느려도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 녹조 발생은 수온·유속·유량·오염물질의 양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명백한 ‘과학’이다. 유속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4대강 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로 유입되는 지천(支川)의 수질관리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4대강 녹조의 핵심 원인이었다. 이제라도 보 상류지역의 오염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보를 해체하고 개방해도 녹조가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보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란에서도 과학을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이 달라졌다. 인구가 늘어나고, 우리 삶의 수준이 향상되면서 수자원의 수요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다. 이제 한반도는 세계 최악의 물 부족 지역이다. 하얀 모래밭 사이로 실개천이 졸졸 흐르던 아득한 과거의 소박한 ‘자연성’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수자원 확보를 위해 현대의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보가 그런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과학적 진실이다. 보의 용수공급 능력이 양수장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보의 수위가 올라가면 주변의 지하수 수위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연성’ 앞세우며 ‘경제성’ 추구

4대강 기획위가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 공개적으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버렸다. 이제 5월에 나올 예정인 KEI의 보 개방에 따른 수질개선 효과에 대한 보고서는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들어진 엉터리 보고서로 인식될 것이고, 수질 변화에 대한 논란은 영원한 미궁에 빠져버리게 됐다.

기획위의 어설픈 경제성 평가도 황당했다. 주관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로 경제성 평가를 대체한다는 발상은 소가 들어도 웃을 정도로 창의적이다. 그러나 의미를 찾기는 어려울 정도로 무모한 것이다. 자연성 회복을 추구하는 환경부가 경제성을 앞세우는 모습도 어색하다. 자연성 회복을 위해서라면 경제성을 포기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2조원이나 쏟아부은 4대강의 16개 보를 단순히 적폐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해체·개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졸속으로 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듯이 졸속으로 부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부실공사를 철저하게 보완하고, 녹조 해결을 위한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노력이 훨씬 더 현명한 해결책이다. 수자원 확보와 자연성 회복이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 거대한 보가 제공하는 수상레저의 새로운 즐거움이 오염된 실개천의 옹색한 모래밭에서 기대하는 어설픈 낭만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