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이 지난 2017년 선보인 초보적 형태의 양자컴퓨터 ‘퀀텀’. ⓒphoto 구글
IBM이 지난 2017년 선보인 초보적 형태의 양자컴퓨터 ‘퀀텀’. ⓒphoto 구글

구글이 수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컴퓨터를 구현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물리학계와 산업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현존 최강의 수퍼컴퓨터(IBM의 서밋)로 1만년 걸리는 복잡한 연산 작업을 단 3분20초(200초)에 계산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만약 구글의 연구가 사실이라면 이제 곧 양자컴퓨터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과학계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세계의 양자컴퓨터 연구가 아직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과연 올해엔 구글의 장담대로 꿈의 양자컴퓨터가 ‘어엿한 실물’로 등장할 수 있을까?

“53개 큐비트로 구성, 양자우월성 도달”

지난 9월 20일(현지시각),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에 게재된 문서를 인용해 구글이 ‘시커모어’(플라타너스라는 의미)라는 이름의 양자컴퓨터 칩을 만들어 ‘양자우월성(quantum supremacy)’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양자우월성은 양자컴퓨터가 기존 수퍼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산 성능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2011년에 이 말을 처음 쓴 미국의 물리학자 존 프레스킬(캘리포니아공대 교수)은 양자우월성을 달성하려면 ‘50큐비트(qubit)가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50큐비트는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대로 진입하는 경계,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커모어는 53개 큐비트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양자컴퓨터 개발의 선두주자는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해 3월 ‘브리슬콘(Bristlecone)’이라는 이름의 72큐비트 양자컴퓨터 칩을 공개하고, 올 연말까지 양자우월성 달성 가능성을 낙관한 바 있다. 또 5년 안에 양자컴퓨터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라고도 밝혔다. 양자컴퓨터에서 72큐비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숫자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컴퓨터다. 반도체가 아닌 원자를 기억소자로 활용한다. 디지털 컴퓨터가 0과 1을 기본단위로 하는 비트(Bit)로 명령어를 처리하여 계산을 진행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양자칩 성능을 나타내는 단위인 큐비트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0과 1이라는 2개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 현상을 이용하여 정보로 처리한다.

예를 들어 보자. 비트 2개는 각각 0 또는 1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큐비트 2개는 00, 01, 10, 11 등 4개 값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큐비트가 표시할 수 있는 정보량이 3개면 8개(23), 4개면 16개(24)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다. 가령 디지털 컴퓨터와 양자컴퓨터가 100원짜리 동그란 동전을 정보 처리한다고 하자. 이때 디지털 컴퓨터는 앞면과 뒷면 2가지로만 정보를 표현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360도 각도에서 본 동전 모양뿐 아니라 동시에 빙빙 도는 동전의 회전 상태도 정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n개의 큐비트는 2n만큼 가능하게 되므로, 입력 정보량의 연산 능력이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진다. 큐비트가 53개 또는 72개인 구글의 양자컴퓨터는 253과 272 속도로 연산할 수 있는 셈이다. 큐비트 개수가 300개로 늘어나면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 처리가 가능해진다. 큐비트가 커질수록 양자컴퓨터의 연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따라서 기존 수퍼컴퓨터로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다.

양자컴퓨터는 사실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이다. 큐비트의 ‘볼륨’도 중요하지만 ‘퀄리티’ 역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온도 변화, 작은 진동이라도 큐비트의 섬세한 상태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기계적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큐비트가 중첩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외부 간섭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엔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또 전자나 원자핵의 양자현상을 하나하나 정밀 제어해 연산을 수행하게 하는 장치와 기술이 필요하다. 연산의 결과물인 칩 안의 양자 상태를 측정 장치를 통해 들여다보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그만큼 양자를 자유자재로 다뤄서 큐비트를 구현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의 일반 PC 성능을 넘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었다.

300년 걸릴 암호 해독 100초면 가능

이런 상황에서 구글의 양자컴퓨터 개발 소식이 전해지자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물리학계 일각에선 양자컴퓨터 연구의 투자 유치를 위한 구글의 홍보용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관련 기업들 또한 비관적 전망을 내놓으며 사실의 진위 파악에 나섰다. IBM의 다리오 질(Dario Gil) 연구소장은 “구글의 양자우월성 도달은 사실이 아니고, 그렇기에 그들의 연구는 입증될 수 없을 것”이라며 진위 여부에 대한 검증을 주장했다. 만약 구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아주 특수한 단 하나의 문제를 푼 제한적인 범위에서의 양자우월성을 차지한 결과일 뿐, 디지털 컴퓨터처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IBM은 구글과 함께 양자컴퓨터 개발을 이끌어온 미국의 양대 기업이다. 큐비트의 계산 성능을 높여 양자우월성에 먼저 도달하고자 경쟁해왔다. IBM도 현재 53큐비트의 양자컴퓨터 칩을 개발해 시험 중이다. IBM은 세계 최초로 ‘범용 양자컴퓨터’를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양자우월성 논란이 커지자 구글은 현재 NASA 홈페이지에 올린 양자컴퓨터 관련 문서를 삭제했다. 이후에도 구글이 사실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온갖 추측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길은 가까워 보인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어떤 문제가 해결될까.

가장 먼저 기존 컴퓨터의 한계점이던 암호화 기술이 획기적으로 변한다. 양자컴퓨터가 접목될 경우 암호화된 데이터는 해킹이 불가능한 시스템이 되고, 동시에 현행 암호화 시스템은 무력해진다. 인터넷뱅킹 등을 할 때 사용하는 공인인증서의 암호화 알고리즘을 디지털 컴퓨터로 풀 경우 300년이 걸린다면 양자컴퓨터는 단 100초 만에 풀 수 있다. 이는 군사적으로 복잡하고 방대한 적군의 암호 체계를 해독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또 디지털 컴퓨터로는 어려웠던 다양한 분자구조를 시뮬레이션하여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에도 적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구글이나 IBM 혹은 다른 누군가가 진정한 양자우월성에 도달하게 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상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구글의 양자컴퓨터 개발 여부가 정말 궁금한 이유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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