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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4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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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인류 유전자도 로마로 통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 고마인들이 닦아놓은 도로. 이 로마가도를 타고 문화와 DNA가 섞였다. photo history.com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고대 로마는 번성한 문명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미국 스탠퍼드대학 유전학과를 비롯한 세계 28개 기관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이 DNA 분석법을 통해 지중해와 유럽 전체의 유전자도 로마로 통했다는 연구결과를 최근에 내놓아 화제이다. 모든 길과 DNA가 로마로 통했던 셈이다. 분자유전학을 이용한 고인류학에서는 약 20년 전부터 미토콘드리아나 성염색체의 특정 유전자(이를 ‘마커 유전자’라고 부른다)가 지역별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추적해 종의 이동이나 확산 경로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로마는 기원전 8세기 무렵(BC 753년경) 티베리스강(지금의 테베레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건국되었다. 처음엔 도시국가로 출발했지만 그 후 급속하게 영토를 확대해 이탈리아반도는 물론 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지배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제국이 되었다. 황금시대(5현제 시대)인 117년 무렵에는 43개 속주의 면적을 합하면 500만㎢에 이를 만큼 지중해를 에워싸는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지중해·유럽인들 로마로 몰려
   
   거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거느리게 된 로마는 우선 군사상 이들 점령지와 로마를 잇는 도로가 필수였다. 초기의 로마 군대는 로마 시민(특히 평민)으로 구성되었고, 그들은 평상시 농업에 종사하며 전시에는 병사로 활약하는 군인이었다. 이들이 제국을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점령지와 로마를 잇는 도로 건설은 공병대가 맡아서 했다.
   
   로마제국은 가는 곳마다 길을 만들었다. 로마인은 ‘길은 직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길이 직선이 되게 하기 위해서 산에 굴을 뚫기도 했고 골짜기에 높은 다리를 놓는 어려운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지 못하는 곳이 없는 길이었다. 이렇게 닦은 길의 전체 길이가 3세기 말 기준으로 8만5000㎞(서울~부산 거리는 430㎞)에 달했다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방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길들을 통해 지중해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이 로마로 이어졌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여기에서 왔다. 잘 닦인 로마가도 덕분에 각 지역을 연결하기가 쉬워져 물건을 사고파는 교역이 발달했고 전 세계의 사상과 기술, 문화가 활발히 교류했다. 그래서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유럽과 아프리카 문명이 로마에서 만났고 로마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갔다. 위급 시에는 군사를 동원하고 외국의 침략을 막는 기동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로마 황제의 명령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2주일이면 전달될 수 있었다. 이러한 도로는 지금까지 잘 보존돼 쓰이고 있다.
   
   그런데 고고학자와 생물학자들은 단순히 이러한 길만이 로마로 통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DNA도 로마로 통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유전학과 조너선 프리처드(Jonathan Pritchard) 교수팀이 위대한 로마제국의 권력과 기술 수준에 걸맞게 지중해와 유럽 전체의 사람들이 로마로 몰렸다는 사실을 DNA로 증명해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 11월 8일자에 밝힌 것이다. 이 연구에는 미국 스탠퍼드대와 오스트리아 빈대학, 이탈리아 토리노대학, 포르투갈 코임브라대학 등 7개국 28개 연구기관이 참여했다.
   
   로마제국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절, 대제국 전체에 걸친 인구 조사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인구를 늘리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냈다. 당시 풍요로움 때문인지 독신생활을 즐기는 풍조가 유행했는데 출산율 저하로 국력 쇠퇴를 우려한 황제는 독신여성과 자식이 없는 부부에게 세금을 물리는 ‘정식 혼인에 관한 율리우스법’을 시행해 출산율을 높였다.
   
   이 제도는 300년간 유지되면서 자유와 풍요를 의미하는 ‘팍스 로마나 시대(1세기와 2세기경)’에는 로마의 인구만 약 100만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도시 인구는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유럽에서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당시 로마인들의 유전학적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 photo 뉴시스

   서유럽 혈통이 지중해·유럽 사람들과 섞여
   
   이에 공동연구팀은 로마를 중심으로 주변 29개의 고대 로마 유적지에서 127개의 DNA를 추출해 분석했다. 로마제국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로마는 유럽과 지중해 사이의 중요한 사상과 기술, 문화가 활발히 교류한 교차로였다는 점에 착안해 그와 같은 작업을 시행한 것. 이렇게 추출한 DNA를 통해서 1만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볼 수 있었다고 프리처드 교수는 말한다.
   
   프리처드 교수는 세계적인 유전학자로, 인간의 진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조금씩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인간진화이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특별 게놈 세트들’을 연구해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들이 왜 같은 인간이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상이한 특성을 보이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풀어주고 있다.
   
   이번에 공동연구팀이 DNA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로마인의 유전적 변화는 선사시대에 크게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농업시대이고 또 한 번은 청동기시대이다. 공동연구팀에 따르면, 우선 농업을 시작하기 전인 1만2000~6000년 전까지는 로마인들의 유전자가 수렵이나 채집을 하던 서유럽인의 유전자와 비슷했다.
   
   그런데 6000~3500년 전의 신석기시대에 농업 중심의 경제가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터키반도 지역에 살았던 아나톨리아인과 유프라테스강 주변에 살던 이란인 농부들이 로마로 흘러들어오고,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다른 지역 간 교역이 활발해져 지중해 전역 출신 사람들이 로마로 몰리기 시작해 유전자 조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로마가 건국된 BC 753년 당시에는 서유럽 혈통이 주를 이뤘는데 이후 로마제국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북아프리카, 중동과 지중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유전자가 섞여 로마의 유전학적 다양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고대 유럽의 많은 유전적 혈통들이 당시 로마제국과 연결돼 있었고, 또 현재 유럽과 지중해 일대 사람들의 유전적 변화 패턴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프리처드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지난 1만2000년 동안 로마와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유전학적 역사를 살펴봤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연구팀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인류의 ‘모든 유전자도 로마로 통했다’고 볼 수 있는 길을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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