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지리산 반달곰. ⓒphoto 뉴시스
나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지리산 반달곰. ⓒphoto 뉴시스

동물은 체온을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겨울처럼 기온이 낮은 계절에는 체온 유지가 바로 생사의 갈림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은 몸을 부르르 떠는 방법으로 열을 만들어 내려간 체온을 다시 정상으로 올린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날 소변을 보고 나면 누구나 몸을 부르르 떨게 되는데, 소변이 배출될 때 그만큼 몸의 열을 가지고 나와 순간적으로 체온이 1℃ 정도 내려가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동물은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겨울잠을 선택한다. 주변 기온에 따라 체온이 바뀌는 변온동물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 체온이 너무 낮아져 목숨을 잃게 된다. 체온이 변하지 않는 포유류 동물 중에서도 먹이를 찾기 힘든 겨울을 넘기기 위해 겨울잠을 잔다. 조금만 움직여 에너지 소모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동물들의 겨울잠 유전자가 비만 치료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겨울잠 과정서 비만 막는 생리 현상 발견

지난 12월 5일 영국의 의료 전문 웹사이트 ‘메디컬뉴스 투데이’는 미국 유타대학의 엘리엇 페리스(Elliott Ferris) 교수와 크리스토퍼 그레그(Christopher Gregg) 교수가 포유류의 겨울잠 과정에서 비만을 막는 생리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유전적 메커니즘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셀(Cell)’에 발표되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동물의 겨울잠에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고 있다. 겨울잠이 시작되면 동물은 몸에 여러 가지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체온이 내려가고 심장박동수가 줄어들어 반쯤 죽은 상태로 추운 겨울을 보낸다. 동면하는 다람쥐의 경우, 체온이 0°C 가까이 떨어지고 내장은 기능을 중단한다. 심장박동이 평소의 1분당 150회에서 5회로 뚝 떨어져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즉 동물들의 겨울잠은 휴식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력을 발휘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자 영양 상태를 보존할 수 있는 근본적 이유다.

이처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겨울잠의 원리를 알아내어 그 유전자 메커니즘을 인간에게 적용해 난치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으려는 게 과학자들의 연구 목적이다. 페리스와 그레스 교수도 마찬가지다. 두 교수는 다람쥐, 곰과 같은 포유류의 겨울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동면 중에는 살이 찌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 유전자 메커니즘을 찾을 수 있다면 당뇨병과 암, 고혈압 등 비만으로 비롯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두 교수는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당을 분해해 비만을 억제하는 ‘인슐린 저항’이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인슐린 저항은 혈장 내 포도당 수치를 낮추는 인슐린의 작용이 약화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인슐린 작용에 세포가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보통 비만이면 기본적으로 인슐린 수치가 높아진다. 혈장 속의 포도당 수치를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포유류의 경우 쌀쌀한 가을로 접어들면 인슐린의 포도당 흡수 작용을 방해하는 인슐린 저항을 나타내고, 이 상태에서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몸무게를 서서히 줄여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게 그레그 교수의 설명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혈압이나 염증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인슐린 저항이 일어나면 당이 조직 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혈중 내에 과다하게 축적돼 고혈당증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결국 대사증후군을 일으킨다. 대사증후군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동맥경화증과 같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겨울잠을 자는 동안 고혈압이나 염증이 없었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가 몸에 해로운 요인들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그레그 교수는 말한다. 물론 봄이 돼 동면이 끝날 때가 되면 인슐린 저항 상태에서 벗어나 동물은 완전히 정상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동면 상태에서 난치병 치료

겨울잠을 일으키는 유전자 연구는 포유류에서 많이 이뤄졌다. 페리스와 그레그 교수 또한 동면하는 포유류의 비만이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겨울잠 여부에 상관없이 다양한 포유류 유전자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동면하지 않는 포유류까지 다수 생물 유전체를 비교해 얻은 다수의 공통유전자 서열 데이터를 분석해 계통유전체수를 규명해 나가는 방식이다.

그 결과 들다람쥐, 갈색박쥐, 회색쥐 리머, 작은 고슴도치 등이 동면을 통한 생존을 위해 pARs(parallel accelerated regions)라는 유전자 영역을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포유류의 98%가 동면 여부에 관계없이 이 유전자를 통해 대사작용을 통제한다는 사실이다. 또 pARs 영역은 사람에게도 미세하게 존재했다. 사람은 동면할 필요성이 없어 유전적 기능을 퇴화시켰기 때문이다.

두 교수는 동면하는 포유류에게서 pARs 외에 ARs(accelerated regions) 유전자 영역도 발견했다. 이들은 ARs를 동면 유전자로, pARs를 비동면 유전자로 분류했다. 결국 pARs는 포유류의 겨울잠 과정에서 비만을 통제하고 있는 유전자였던 것이다.

앞으로 페리스와 그레그 교수는 포유류 유전자의 이런 기능을 사람에게 접목해 비만으로 발생한 난치병 치료 방안을 찾을 예정이다. 겨울잠 기간 중 대사를 관장하는 유전자를 활용할 경우 대사가 잘못된 환자들의 건강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영국 의학연구회 조반나 말루치 박사팀은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는 과정에서 치매를 치료할 방법도 찾고 있다. 연구팀은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면 체온이 내려가면서 뇌세포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부위인 ‘시냅스’의 작동이 멈추고,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 몸 안에 ‘RBM3단백질’의 수가 늘어나고 동시에 시냅스가 다시 작동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신기한 점은 치매 증상을 보이는 다람쥐들은 잠에 빠져든 뒤 다시 체온을 올려줘도 RBM3단백질이 늘어나지도 않고 시냅스가 다시 작동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람쥐들에게 인위적으로 RBM3단백질을 주입하자 뇌세포의 시냅스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치매 증상을 보인 다람쥐의 뇌세포 연결망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을 치료하는 획기적 방법이 될 것이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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