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현지시각) 안드로이드용 게이밍 앱을 공개한 페이스북.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0일(현지시각) 안드로이드용 게이밍 앱을 공개한 페이스북. ⓒphoto 뉴시스

“집에 있는 동안 음악감상이나 독서, 게임을 하자.”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트위터에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한 방법으로 게임을 언급하자 게임업계의 표정은 밝아졌다. 1년 전과 비교하면 그럴 만했다. 지난해 5월 WHO는 질병코드 개정안(ICD-11)을 발표하면서 만장일치로 ‘게임과 몰입’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뚜렷한 근거 없이 게임을 마약과 같은 위치에 놓으면서 게임산업과 대립각을 세운 WHO였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게임을 권하는 단체가 됐다.

코로나19를 극복하자며 WHO는 ‘플레이 어파트 투게더(#PlayApartTogether)’, ‘떨어져서 함께 놀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는 대립했던 게임업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액티비전블리자드, 라이엇게임즈 등의 게임업체와, 트위치 등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등 50여개 기업들이 캠페인에 보조를 맞추는 중이다.

우리는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코로나19가 주는 경제적 타격은 세계 주요 산업을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사람들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이동을 막거나 제한된 조건에서만 외출을 허락하는 나라들이 늘었다. 외출제한, 자가격리, 실업 등 코로나19 탓에 생긴 여러 이유로 바깥 대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었다. 어떤 산업은 사람들이 외출해야 흥하지만 어떤 산업은 사람들이 집 안에 있을수록 흥하는데 게임산업은 명백히 후자다.

코로나19로 전통 제조업과 대면 서비스업은 주춤하거나 쇠퇴하고 있지만 언택트(비대면) 사업은 조명을 받는다. 게임은 언택트 비즈니스에 최적화된 분야다. 증권가에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언택트 소비의 중심으로 게임산업을 주목하라며 보고서를 써내고 있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타격을 적게 받거나 오히려 흥하는 산업 중 하나라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2020년 3월 글로벌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수는 약 33억건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1%나 증가했다. 국내도 비슷한 추세다. 2월 국내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수는 약 4400만건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0.9% 올랐다.

불황 속 게이밍 앱 승부수 던진 페이스북

게임 호황은 디바이스를 가리지 않는다. 모바일뿐만 아니라 PC에서도 게임은 인기다. 글로벌 PC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의 3월 마지막 주 동시접속자 수(PCU)는 2268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스팀 동시접속자 수는 코로나19가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던 지난 2월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콘솔게임은 어떨까. 일본 제품 불매운동보다 ‘집콕’하며 즐길 닌텐도 스위치를 사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서 생긴 해프닝이 여럿 있었다. 이 게임기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용산전자상가에는 2000여명이 코로나19에도 아랑곳없이 밀착해 줄을 섰다. 이미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닌텐도 스위치는 씨가 말랐다. 새 물건은 온라인에서 정가보다 서너 배 비싸게 거래됐고 수요를 못 쫓아가자 중고제품도 구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물건이 온라인 마켓 어딘가에 풀리는 날에는 실시간 검색어에 닌텐도 스위치가 최상단에 올랐다. 출시된 지 4년이나 지난 게임기가 지금은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몸이 됐으니 게임은 불경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산업이란 사실이 증명된 셈이었다.

모두들 움츠러드는 이 불황에 눈길을 끈 건 페이스북이 던진 카드다. 점점 커지고 있는 게임 시장, 정확하게는 게임 스트리밍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안드로이드용 페이스북 게이밍 앱을 지난 4월 20일(현지시각) 공개한 이유다. 원래 6월쯤 iOS 버전과 함께 공개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집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게임의 파이가 점점 커지자 계획을 앞당겨 내놨다. 이 앱을 무기로 페이스북은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생방송)에 도전한다. 남들이 게임하는 걸 보거나, 내가 게임하는 걸 페이스북 페이지에 스트리밍해 남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이스북 게이밍 앱 책임자인 피드지 사이버는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게임을 단지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는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번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페이스북의 월간 사용자 수는 약 25억명 규모다. 이 중 월 7억명 이상이 페이스북에서 간단한 게임을 즐기고 게임 동영상을 시청하는 등 게임 콘텐츠와 엮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지난 1년6개월간 동남아시아와 남미 사용자들을 상대로 이번 게이밍 앱을 테스트했다. 페이스북의 게임 진출 노력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8년 6월에는 ‘게임 비디오’ 탭을 도입해 페이스북 페이지 안에서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2019년 3월에는 ‘페이스북 게이밍’ 탭을 설치해 스트리밍에 더해 페이스북 내에서 제공하는 인스턴트 게임에 접근이 수월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사실상 실패에 가까웠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플랫폼이라는 페이스북은 게임 콘텐츠 영향력에서는 이름값을 못했다. 그래서 내놓은 게 별도의 페이스북 게이밍 앱이다. 전용 탭에서 제공하던 콘텐츠보다 진화했다.

게임 생중계가 만든 비즈니스 모델

페이스북이 노리는 건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이다. ‘하는 게임’이라는 인식은 이미 고루한 생각이 됐다. 요즘은 ‘보는 게임’이 됐다. 보는 게임에 뛰어든 페이스북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트위치(Twitch)다. 트위치는 2011년 등장한 게임 전문 스트리밍 업체로 밀레니얼 세대를 흡수하며 급성장했다. 2020년 3월 한 달 방문자만 7억4600만명(시밀러웹 기준)에 달하는 곳이다. 트위치의 사용자 평균연령은 25세이며 이들은 평균 1시간30분 정도 머물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긴다.

트위치의 성공을 눈여겨본 곳은 아마존이었다. 트위치가 만들어지고 난 뒤 3년 만인 2014년 아마존은 트위치를 9억7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아마존이라는 뒷배를 얻은 트위치는 여전히 강력한 플랫폼이다. 스트리밍 소프트웨어 제공업체인 스트림엘리먼트에 따르면 2019년 트위치의 글로벌 라이브 스트리밍 점유율(시청시간 기준)은 73%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가 유튜브 게이밍(21%)이다. 페이스북은 3%라는 미미한 점유율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쯤 되면 남이 하는 게임을 모니터로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궁금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수십만 명 혹은 수백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광고와 협찬이 붙으며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글로벌 IT기업들이 뛰어들면서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게임 리서치 업체인 수퍼데이터(SUPERDAT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디지털게임 시장 매출은 1012억달러에 달했다. 모바일게임은 644억달러, PC게임은 296억달러, 콘솔게임은 154억달러를 기록했는데 라이브 스트리밍 등을 포함한 게임 비디오 콘텐츠 역시 65억달러를 기록해 만만치 않은 매출을 보였다. 2017년 32억달러 규모였으니 2년 만에 두 배나 성장했다. 특히 기업들이 주목하는 건 사용자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라이브 스트리밍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외부 요인은 이 시장의 더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고 있다.

게임을 생중계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광고와 스폰서십, 구독 등이 돈을 만들어낸다. 게임 회사는 자신들이 거금을 들여 개발한 출시작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트위치, 혹은 트위치의 스트리머를 찾고 있다. 업계 1위인 이들과 손을 잡는 게 이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됐다. 트위치를 통해 새 게임을 공개하거나, 트위치 스트리머가 직접 게임을 하는 영상은 수많은 구독자에게 전파되며 마케팅 효과를 거둔다.

e스포츠 리그를 독점 중계하며 스폰서십을 맺는 것도 매출을 만들어낸다. 이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트위치 천하가 깨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원래 트위치가 단독 중계해 오던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3대 e스포츠(콜오브듀티·오버워치·하스스톤) 리그를 올해부터는 유튜브가 내보낸다. 스트리밍 업체가 방송국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e스포츠 리그 중계가 가져오는 효과는 꽤 크다. 오버워치 리그의 경우 2019년 9월 개최된 결승전의 최고 시청자 수가 31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인기였다.

이적료까지… 게임 스트리머 전성시대

구독은 게임 스트리밍 경제의 중추다. 시장조사업체 수퍼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트위치는 15억4000만달러, 유튜브 게이밍은 14억6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구독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트위치가 8%, 유튜브는 2%에 불과하다. 매출에서는 광고나 스폰서십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만 구독은 잠재적 소비자층이 두꺼움을 증명하는 지표다. 스트리밍 업체에 지불하는 광고나 스폰서 비용은 결국 이 두꺼운 시청자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장이 커지고 시청자 수가 증가하면서 또 다른 한 축이 중요해진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스트리밍 플랫폼 내에서 게임을 중계하는 스트리머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들이 거느리고 있는 팬들은 플랫폼의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유튜브가 아무리 두드려도 트위치의 아성이 여전히 굳건한 건 시청자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힘을 발휘하는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트위치가 먼저 쌓아놓은 진입장벽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이걸 단번에 흔들 수 있는 게 많은 구독자를 거느린 스트리머와의 독점 계약이다. 후발주자들이 여기에 적극적인데 이들의 타깃은 업계 1위 트위치에서 활동하는 대형 스트리머들이다. 지난해 8월 트위치 최다 구독자를 보유한 게임 스트리머 ‘닌자’는 트위치를 떠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폼인 ‘믹서(Mixer)’에서 활동한다고 선언했다. 닌자는 트위치와 유튜버 구독자 수를 합치면 3700만명에 달하고 그의 ‘포트나이트’ 스트리밍 방송은 누적 조회수가 4억5000만회를 돌파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한 이적료는 600만달러로 알려져 있다.

게임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드는 페이스북 측은 “많은 사용자를 획득하는 게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게임 생방송을 보며 유명 스트리머의 플레이와 함께 호흡하고 서사를 만드는 새로운 세대는 페이스북의 타깃 세대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건 다른 경쟁사들에도 마찬가지다. 아마존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모두 뛰어들었다는 점은 이 시장이 가진 매력을 대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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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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