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LNG복합발전소 ⓒphoto 뉴시스
울산의 LNG복합발전소 ⓒphoto 뉴시스

산업부가 이제야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만들기 시작한 모양이다. 워킹그룹이 공개한 주요사항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이고, 미래를 포기해버린 졸속이다. 발전설비용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신재생이 실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은 피크타임 예비전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커지는 셈이다. LNG가 46.7%나 늘어나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은 거꾸로 42.2%나 줄어든다는 것도 상식을 벗어난 엉터리다. 전기사업법 제3조가 요구하는 경제·환경·국민안전에 대한 고민도 찾아볼 수 없다.

탈원전 부담만 떠안을 차기 정부

우리의 발전설비용량은 2034년에 195.3GW로 늘어난다. 수요 전망 104.2GW를 87.4%나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다. 그런데도 피크타임(최대전력 시)의 예비율 22%를 확보하려면 2029년 이후에 ‘주요사항’에 포함되지 않은 신규설비 4.7GW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2034년의 실제 설비예비율은 무려 91.9%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는 뜻이다.(독일의 설비예비율은 131%가 넘는다.) 설비는 어마어마한데 실제 발전량은 기대에 못 미치는 신재생 에너지의 비효율이 가져오는 비극이다.

문제는 설비용량의 40%를 차지할 신재생이다. 서울시 면적의 1.7배에 해당하는 숲을 망가뜨려야 하는 78.1GW의 신재생이 피크타임에 생산하는 전력은 고작 11.2GW에 불과하다. 신재생의 발전효율은 14.3%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리적 환경이 불리해서 발생하는 황당한 일이다.

정작 탈원전·탈석탄을 맹렬하게 밀어붙여왔던 현 정부는 크게 걱정할 일이 없다. 과거의 발전소 건설 계획 덕분에 전력난을 걱정하지 않고 임기를 마치게 된다. 부담스러운 원전·석탄의 폐기와 신재생·LNG 건설은 온전하게 차기 정부의 몫이다. 등골이 빠질 어려운 일을 몽땅 차기 정부로 넘기게 된다는 뜻이다. 뒤늦게 탈원전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창원의 원전부품 산업을 되살리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재생이 친환경이라는 인식은 착각이다. 우리나라의 일사량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65% 수준이고, 태양광의 하루 평균 가동시간은 2.6시간에 불과하다. 풍력도 봄·가을에는 무용지물이고 마땅한 부지도 흔치 않다. 신재생에는 예측이 불가능한 간헐성을 보완해줄 LNG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신재생은 ‘신재생/LNG’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신재생의 건설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도 무시할 수 없고, LNG도 친환경이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태양광은 20년의 수명이 지나면 재투자를 해야 하고, 태양광 패널은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폐기물이 돼버린다.

신재생의 비중이 늘어나면 전력망의 운영도 어려워진다. 자칫 전력망에 공급되는 전력이 넘치게 되면, 공급이 부족할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다른 나라와 단절되어 철저하게 고립된 전력망을 가진 우리에게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넘쳐나는 전력을 소비할 방법도 없고 모자라는 전력을 충당할 묘책도 없다.

LNG는 한전 적자의 주범

전력망에 연결된 모든 발전설비의 출력을 신재생에 연동시켜야 한다. 신재생의 전력이 늘어나면 지체 없이 다른 발전원의 발전량을 줄여야 한다.

규모의 경제에 필요한 거대 발전소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전량은 설비용량의 5.7%에 지나지 않은 신재생이 전력망을 좌지우지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는 격이다.

LNG가 친환경이라는 주장도 섣부른 것이다. 시커먼 미세먼지(매연)가 적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인 LNG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인 온실가스의 양은 석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한 워킹그룹이 완전하게 놓쳐버린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초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의 배출도 감당하기 어렵다. 심지어 가정용 LNG 보일러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도 문제가 된다.

인구 밀집지역 가까운 곳에 위치한 LNG발전소가 발전량을 수시로 조정하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도심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자동차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LNG의 가격과 수급도 안심할 수 없다. 지난 3년 동안 한전이 기록한 적자의 대부분이 원전 가동률 축소에 따른 LNG의 구입비용 때문이었다. 냉동 상태로 저장해야 하는 LNG는 충분히 비축하기도 어렵다.

2012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LNG 수급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의 경험도 중요하다. 과연 코로나19 이후에도 LNG의 수급과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기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의 노력으로 이룩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과 석탄 기술은 함부로 버릴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코로나19가 새로운 원전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도 원전 살리기를 시작하고 있다.

세계 원전 시장을 오롯이 중국·러시아에 넘겨줄 수는 없다. 남아 있는 원전의 안전 운전도 걱정해야 한다. 두산중공업의 도산(倒産)은 창원 지역경제의 몰락을 뜻한다. 원전부품을 생산하는 280여개의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는다. 우리나라 원전부품·기계 산업의 메카인 창원이 무너지면 국가경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떤 기술이나 뚝딱 개발해주는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기대하던 태양광 산업은 품질과 가격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무분별한 신재생 확대는 중국의 배만 불려줄 것이다. LPG의 가스터빈도 일본·독일·프랑스·미국·스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도 없이 법치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탈원전은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80년을 쓸 수 있는 원전을 절반도 못 쓰고 해체해버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새로운 발전소를 짓는 것도 소중한 재원과 자원의 낭비이고, 멀쩡한 원전·석탄의 해체에 의한 환경파괴도 불필요한 일이다.

엉터리 경제성 평가로 멈춰 세운 월성 1호기를 재가동하고, 어정쩡하게 중단한 신한울 3·4호기의 공사도 재개해야 한다. 두산중공업과 창원을 살리고,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어설픈 구제금융으로 될 일이 아니다.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공사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줄기부터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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