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와 대화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 이 자리에서 주 원내대표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통령이 거절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와 대화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 이 자리에서 주 원내대표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통령이 거절했다. ⓒphoto 뉴시스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를 검토해 달라는 야당 원내대표의 요구를 대통령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기비축률’이 30%나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마도 누군가 대통령에게 전력거래소가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공급예비율’이 넉넉하다고 잘못 알려준 것이 분명하다.

원전 생태계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정부의 탈원전·탈석탄으로 주저앉는 두산중공업을 살려달라는 요구로 이해했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기후악당’이라고 부르는 진짜 이유도 정확하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대통령의 귀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기후악당의 주범은 LNG

국제사회가 우리를 기후변화 대응을 외면하는 기후악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이다. 영국의 ‘기후행동추적’이 사우디아라비아·호주·뉴질랜드와 함께 한국을 ‘세계 4대 기후악당 국가’로 선정했다. 대통령은 그런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지난 3년 동안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기는커녕 무려 5100만t이나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환경부의 로드맵에 제시된 목표량을 7300만t이나 초과해버렸다. 파리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 우리가 스스로 제시한 약속을 지키려면 발전 부문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매년 360만t씩 줄였어야만 했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알려진 석탄화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했다. 석탄화력의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고, 노후 석탄화력을 폐쇄해 버리기도 했다. 성과도 있었다.

2019년 발전 부문에서 석탄화력의 비중은 40.4%로 2017년보다 2.7%포인트나 줄어들었다. 그런데 석탄화력의 축소 노력은 온실가스가 아니라 미세먼지의 배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발전 부문에서 LNG의 비중이 25.6%로 무려 3.4%포인트나 늘어났다. LNG의 증가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산업부가 뒤늦게 내놓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초안에 따르면 그렇다. 현재 41.3GW인 LNG 설비는 2034년에 60.6GW로 무려 47.5%나 늘어난다. 5.7GW가 줄어드는 석탄화력보다 3.4배나 더 많은 LNG 설비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가스연료인 LNG가 ‘깨끗하다’는 것이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순진한 착각이다. LNG가 석탄과 달리 시커먼 미세먼지(매연)를 덜 발생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LNG도 석탄과 똑같은 화석연료라는 사실을 놓쳐버렸다. LNG도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는 뜻이다. 실제로 1GWh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LNG화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370t으로 석탄화력의 48%에 이른다.

LNG화력의 출력을 수시로 조정하면 오염물질 배출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당연히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스터빈의 성능이 떨어지고 수명도 줄어든다. 도심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정속 주행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배기가스를 내뿜는 것과 마찬가지다.

LNG가 배출하는 질소산화물도 무시할 수 없다. 대기 중에 배출된 질소산화물은 광화학적 반응을 통해 2차 미세먼지인 초미세먼지로 변환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보일러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도 초미세먼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가 훨씬 큰 LNG발전소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나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LNG발전소의 77%가 인구밀집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매우 걱정스러운 것이다.

탈원전의 불편한 진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과 환경을 망쳐버리는 석탄을 안전하고 깨끗한 태양광·풍력·수소와 같은 신재생으로 대체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탈원전 때문에 온실가스와 초미세먼지를 쏟아내는 LNG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은 애써 밝히지 않는다. 때로는 화석연료인 LNG를 ‘청정연료’라고 우기는 황당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태양광과 풍력이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 자체는 깨끗하다. 그러나 일사량이 미 캘리포니아의 65%에 불과한 중위도 지역에 위치하고, 봄가을에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우리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태양광과 풍력을 깨끗하다고 보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태양광과 풍력의 극심한 ‘간헐성’ 때문이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수준으로 널뛰듯 출렁거리는 태양광·풍력의 출력에도 불구하고 송전선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반드시 출력 조절이 쉬운 LNG가 필요하다. 그리고 화석연료인 LNG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태양광·풍력을 ‘친환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독한 사실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

수소가 친환경이라는 인식도 지극히 왜곡된 것이다.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은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LNG(메탄)를 열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우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LNG의 열분해에 필요한 고온의 수증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LNG를 연소시켜야 한다. 이때 많은 양의 온실가스와 질소산화물이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결국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게 된 것은 비현실적인 ‘탈원전’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효과적인 원전을 포기하면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은 불가능해진다.

빌 게이츠가 분명하게 밝힌 명백한 진실이다. 물론 미래의 에너지인 신재생의 기술을 완성시키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현재의 에너지인 원전과 석탄을 무작정 내팽개쳐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2012년, 2017년의 대선 공약은 ‘공약(公約)’일 뿐이다. 2014년 세월호의 혼란 속에서 정당의 특위 위원장으로 국민 안전을 위해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를 요구했던 경험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선택은 달라야만 한다. 대통령이라고 아무 정책이나 ‘마음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법치를 존중하는 민주사회의 엄연한 현실이 그렇다.

국민 위에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법과 절차의 범위 안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촛불민심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창원의 지역경제를 무너뜨리고, 원전의 안전가동을 위협하게 만들고, 한전을 불량기업으로 전락시키는 ‘탈원전’은 바로 취임사에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불가능한 일’이고 ‘잘못한 일’이다. 대통령이 귀와 눈을 활짝 열어야 한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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