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사이욕 국립공원의 박쥐 동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추적 중인 과학자들. ⓒphoto 뉴시스
태국 사이욕 국립공원의 박쥐 동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추적 중인 과학자들. ⓒphoto 뉴시스

코로나19를 일으킨 직접 원인이 사실상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증거가 제시돼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하와이대 공동연구팀의 최근 연구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지난 100년간 중국 윈난성 등 남부 지역과 라오스·미얀마 등의 남아시아 지역 등이 박쥐가 살기 좋은 식생으로 바뀌면서 ‘박쥐 기원의 코로나19’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 결과다. 이들의 연구는 환경생태 분야의 국제학술지 ‘종합 환경과학’에 공개됐다.

최근 100년간 박쥐 40종 늘어

공동연구팀은 최근 중국 남부의 윈난성 지역과 인근 미얀마와 라오스 지역의 100년간 식생의 변화를 추적 조사했다. 이를 위해 초목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온도와 강수량, 구름의 양, 일사량, 이산화탄소 농도 등의 기상 기록 자료를 토대로 ‘식생 변화 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에 나타난 결과에 따르면 100여년 전 열대 관목수림이었던 이들 지역이 현재는 박쥐가 서식하기 좋은 열대 사바나와 낙엽수림으로 바뀌었다. 사람의 키보다 작은 관목이 즐비한 열대 관목수림보다는 열대 사바나와 낙엽수림이 박쥐의 먹이를 풍부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박쥐 종들에게 알맞은 환경으로 탈바꿈한 이들 지역에 박쥐들은 얼마나 많이 늘었을까. 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팀은 세계 박쥐 종들이 선호하는 식생 정보를 사용해 종별 세계 분포도를 그린 다음, 1900년대 초반에 전 세계에 분포한 박쥐 종과 현재 분포되어 있는 박쥐 종을 분석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생의 변화와 박쥐 종 증가의 상관관계 분석이다. 그 결과 기후변화에 따른 서식지의 환경 변화로 최근 100년간 40종의 박쥐가 중국 남부를 비롯해 인근의 라오스, 미얀마 지역에 새로 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에도 박쥐 숫자가 늘어났다. 특히 중국 남부 지역은 가장 많은 박쥐 종이 증가했다.

논문 제1저자인 케임브리지대 동물학부 연구원 로버트 베이어는 “박쥐 종이 증가한 중국 남부 지역은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과 코로나19의 발생지이며 코로나19의 중간 숙주로 지목된 천산갑의 주요 서식지와 일치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천산갑으로 종간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곳으로 지목되는 후베이성 우한 야생동물 노천시장에서는 당시 주민들이 박쥐와 천산갑을 사고판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또 유전자 분석을 통해 100종 이상의 박쥐 기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들 40종의 박쥐에 숙주로 살고 있음을 발견했다. 전 세계에 서식하고 있는 박쥐는 1100여종으로, 이들이 약 3000종의 서로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 한 종마다 평균 2.7종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베이어 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지난 100년간 중국 남부의 윈난성과 인근 미얀마와 라오스 지역을 박쥐 종들이 더 많이 살 수 있는 서식지로 바꿔놓은 원인이 곧 기후변화라는 게 핵심이다. 기후변화로 기존의 서식 환경이 바뀌자 박쥐 종들이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살기 좋은 다른 지역으로 넓게 이동했기 때문에 결국 중국 남부 등이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지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인간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 감염병 학자들은 특정 지역에 갑자기 박쥐 종이 늘어나면 사람이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의 등장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보고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 우한에 전문가팀을 파견해 코로나19 기원을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조사팀은 처음에 우한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가 기자회견에서 갑자기 우한이 발원지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입장을 바꿔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의 영향력 행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다.

베이어 연구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기후변화로 박쥐 종이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지를 이해한다면 코로나19 발병의 기원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도 과학계에서는 그 원인이 야생동물을 포획하고 접촉한 인간의 환경 파괴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100년 동안의 식생 변화와 박쥐 종의 증가를 광범위하게 비교 분석하여 사람을 감염시키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등장 원인이 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있다는 증거를 직접 제시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후변화에 대응 않으면 재앙 반복

박쥐의 몸속에는 다양한 바이러스가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독특한 면역체계 때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바이러스의 핵심 숙주로 지목된다. 박쥐는 체온이 다른 포유류에 비해 2~3도 높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활성화되는 면역체계가 항상 활발하다. 박쥐의 높은 체온이 다른 포유류가 바이러스 감염 때 보이는 발열반응과 비슷해서 병에 걸리지 않고 다수의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박쥐를 숙주로 삼은 바이러스가 문명사회에 침투하고 있는 현 상황은 기후변화를 일으킨 인류에게 주는 경고다.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이미 2014년 바이러스에 대한 섬뜩한 예언을 한 바 있다. 인류의 무절제한 자연 파괴와 자원낭비가 기후변화를 가져왔고, 기후 위기는 생태계의 교란과 붕괴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야생동물의 이동과 함께 바이러스의 창궐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와 코로나19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면서 기후변화 위기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코로나19 대유행처럼 눈에 띄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안 좋은 것 같기는 한데 글쎄…’라며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는다.

이번 연구를 실시한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바이러스성 감염병 발생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논문 공저자인 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 안드레아 매니커 교수도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피해를 주고 있다며 바이러스성 감염병의 종간 전파를 막기 위해 자연 서식지 보호와 야생동물 거래 금지 등 광범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노력이 앞으로 등장할 다른 감염병 위협을 줄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후변화의 재앙은 이제 전쟁에 버금가는 현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저 두려운 수준이라면 기후변화 위기는 지구촌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를 공포감 수준이다. 그러니 지금 자연이 주는 경고에 더욱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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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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