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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4호]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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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탄소중립법’은 ‘탈원전·탈석탄’ 대못 박기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지난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 통과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결국 졸속의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후위기 극복은 빛 좋은 허울이고, 사실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너지법·원자력안전법·전기사업법까지 통째로 무시해버린 불법·탈법적 ‘탈원전’을 고착화하려는 억지가 법제화된 것이다. 국제사회의 절박한 노력을 반(反)기술적 탈원전·탈석탄을 대못질하는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 입법권도 임기 말 대못 박기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국제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5단체에 비상이 걸렸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해야 한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목표를 자진해서 못 박아버릴 이유가 없는데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경쟁국에 불필요한 압력의 빌미를 줘버린 것이다. 더욱이 에너지 집약적인 제조업의 비중이 28.4%나 되는 우리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막무가내의 탈원전·탈석탄으로 에너지 공급이 불안해지고 있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산업을 송두리째 포기해야만 하는 위기 상황이다. 600조원의 국가 예산과 1000조원의 국가 부채가 더욱 무겁고 힘겹게 느껴진다.
   
   
   성장을 거부하는 탄소중립법
   
   국회를 통과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라는 법안의 명칭부터 묘하다. 탈원전을 전제로 하는 ‘탄소중립’과 원전 확대를 추구하는 ‘녹색성장’이 충돌한다. 어학적으로 어색하다. 기후위기는 ‘적응’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화려한 수사(修辭)에 불과한 온실가스 감축, 기후위기 적응, 정의로운 전환 역시 정체성이 불확실한 녹색성장과 이념적·현실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환경단체들도 거세게 반발한다. ‘녹색성장’은 개발도상국에나 어울리는 용어라고 한다. 원자력을 이용한 수소 생산 기술과 석탄의 액화·가스화 기술이 녹색기술에 포함된다는 사실도 불만이다. 탄소중립을 외치는 환경단체의 진짜 관심은 실질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아니라 맹목적인 ‘탈원전·탈석탄’이라는 속마음을 분명하게 털어놓은 셈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의’는 ‘성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목소리도 있다.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면 성장 담론을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환경단체의 어처구니없는 억지다. 선진국 진입의 환상에서 깨어나 알량한 탈원전·탈석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깐의 방심으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산업을 망쳐버린 일본의 안타까운 경험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 없는 오만이고 착각이다.
   
   탄소중립법의 내용도 절망적이다. 목표도 애매하고, 실현 가능성도 의심스럽다. 비용추계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국회예산처의 입장이다. 실제로 기후위기 극복과 온실가스 감축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경제력·기술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어떤 기술이나 뚝딱하고 개발해주는 마술사의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업계가 한목소리로 속도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수소환원 제철과 탄소의 포집·이용·저장(CCUS) 기술은 여전히 개발 중인 미래 기술이고, 현재 멀쩡하게 사용 중인 고로(高爐)를 당장 폐기해버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철강·석유화학·자동차·반도체·조선·시멘트·비료업계의 사정이 모두 그렇다. 자본력·기술력을 갖춘 대기업도 어렵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퇴로조차 찾을 수 없다. 떠들썩했던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날아오르기도 전에 날개가 꺾여버릴 상황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채워진 탄소중립법의 미래가 밝은 것도 아니다. 속절없이 사문화(死文化)의 길을 걸었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의 전철을 따라갈 것이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녹색성장법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정부가 만든 법안이 차기 정부에서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탈원전도 가능한 국가에서 대못 뽑기는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상과학영화 같은 ‘암모니아 전기’
   
   어설프게 구성된 탄소중립위원회가 졸속으로 내놓은 ‘시나리오 초안’도 절망적이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커녕 에너지·산업·국민생활을 제대로 진단할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선무당들의 졸작이다. 두 달 동안 마련한 초안은 영국의 낡은 자료를 통째로 베낀 것이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미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해놓은 마당에 우리에게는 저(低)석탄이든 탈(脫)석탄이든 탈석탄LPG든 선택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호기롭게 중단시켰던 대통령의 의지를 단숨에 꺾어버린 공론화(시민회의) 방식을 들먹일 이유도 없다. 텅 빈 홈페이지로 국민을 기만하는 탄소중립위에 대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중을 70.8%까지 확대하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는 송전망은 관리가 불가능하다. 제주도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정확한 발전량도 파악할 수 없는 영세 발전업자의 수가 늘어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태양광의 간헐성을 보완해주는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 1000조원이 넘게 든다는 추정도 있다. 산과 바다를 뒤덮은 거대한 태양광·풍력 틈바구니에서 숨 쉴 틈을 찾아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이 정말 난처하다.
   
   수소경제를 외치는 시나리오에서 정작 수소를 찾아보기 어렵다. 수소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겠다는 것이 고작이다. 연료전지 발전도 1.4%에 지나지 않는다. 수소 터빈이나 암모니아 발전을 포함한 ‘무탄소 신(新)전원’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해괴한 기술이다. 식량 생산에 써야 할 비료인 암모니아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발상은 선무당의 억지다. 부생수소·바이오매스·폐합성수지도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명분도 없는 탈원전·탈석탄을 위해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하고 있는 산업을 몽땅 포기해버릴 수는 없다. 산업과 성장의 가치도 이해하지 못하는 탄소중립위가 어설프게 모아놓은 파편적 구상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도 없다.
   
   물론 온실가스 과다 배출에 따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에는 동참해야 한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을 질퍽한 잔치판으로 알고 앞장서서 막춤을 춰야 할 이유가 없다. 탄소중립을 향한 길은 아름답고 화려한 꽃길이 아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고행(苦行)의 길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비용과 고통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비싸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은 맹목적인 과속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국가의 미래는 내년 대선에서 국민이 선출하는 차기 정부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아무도 빼지 못할 대못은 없다. 탄소중립법·사학법·초중등교육법·고등교육법이 대선판을 뒤집어놓을 악재가 될 수도 있고 차기 정부에 신(新)적폐 청산의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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