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국제물리올림피아드대회 한국 대표단. 왼쪽부터 여승현·박지우·박상연·신동찬·김경민 학생.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월 4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국제물리올림피아드대회 한국 대표단. 왼쪽부터 여승현·박지우·박상연·신동찬·김경민 학생.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물리학도 게임 같아요. 문제를 풀다가 혼자 깨달음을 얻으면, 게임을 엄청나게 잘해서 ‘펜타 킬’을 내는 느낌이거든요.”(서울과학고 3학년 김경민)

“하루에 게임 몇 시간씩 하세요?”(기자)

“그걸 여기서 얘기하면 가정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어요.”(경기과학고 3학년 신동찬)

지난 7월 열린 국제물리올림피아드대회에서 전원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단 학생들은 평범한 ‘물리 덕후’ 고등학생이었다. ‘과학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올림피아드대회는 매년 물리·수학·정보·생물·화학·물리승자진출전 등 6개 분야로 열리는데, 20세 미만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다. 이 중 76개국 368명이 참여한 물리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중국·러시아와 함께 공동 1위를 기록했다. 기초과학인 물리 분야에서 3년 연속 1위를 달성하며 잠재력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표단 김경민(18), 박상연(17·서울과학고 3학년), 박지우(18·서울과학고 3학년), 신동찬(18), 여승현(17·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은 모두 금메달을 받았다. 김경민 학생은 실험 1위, 이론 공동 1위, 개인 종합 1위를 거머쥐며 2015년 이후 두 번째로 특별상 3개를 모두 차지하는 성과를 보였다. 지난 9월 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메달을 수여받고 모인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 인터뷰했다.

기자 “물리가 왜 좋은가요?”

신동찬(이하 신) “물리는 과학의 다른 과목들보다 결과가 딱 떨어져서 좋아요. 생물, 화학이나 지구과학은 예외가 너무 많잖아요. 제가 예외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수학도 딱 떨어지긴 하는데, 푸는 과정을 너무 엄밀하게 채점해요. 물리는 대충 하고 넘어가는 것 같은데도, 결과는 깔끔하게 딱 나오고.”

박지우(이하 박) “물리학자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고 하잖아요. 너무 꼼꼼하게 증명을 요구하지도 않고, 어쩌다 찍어서 맞을 때도 있어요. 그게 물리의 매력이죠. 한 줄 딱 적고 ‘이래서 이렇다’고 하면 멋있잖아요.”

김경민(이하 김) “직관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물리학은 세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니까. 수학에서는 자유로운 귀납적 추론이 허용이 안 된다고 할까요? ‘이럴 것 같은데’라고 하면 증명해보라 하고. 반면 물리학에서는 ‘이렇게 해보자’ 하고 실험 결과가 잘 설명되면 인정, 이런 거죠.”

기자 “좀 ‘쿨’하네요.”

일동 “맞아요.”(웃음)

“물리가 쿨하고 멋있다는 걸 애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박상연(이하 상) “올림피아드대회에 올해 낸 문제만 봐도 물리가 얼마나 폭넓게 적용되는 과목인지 알 수 있어요. 이론 1번은 지구과학에서 판이 움직이는 과정을 물리학 힘의 원리로 분석하라는 문제가 나왔거든요.”

여승현(이하 여) “실험 문제도 재밌었어요. 주어지는 태블릿 PC와 전자기판으로 실험하고, 그 결과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채점하는 방식인데요. 또 다른 문항에서 최근 실험적으로 연구되는 새로운 내용이 출제됐거든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관련 최근 논의되고 있는 내용이 나왔죠. 그리고 다음은 ‘옵티컬 레티스(광학 격자)’라고, 레이저를 세 방향에서 쏴서 그 안에 갇힌 원자의 위치 에너지를 직접 계산하라는 문제였습니다.”

기자 “그럼 최근까지 연구되는 내용을 다 팔로(follow)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물리올림피아드는 원칙적으로 일반물리까지만 시험 범위예요. 기초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얼마나 이론을 잘 유도해내느냐는 과정을 채점하는 거죠. 이런 문제 방식을 ‘가이디드 투어(guided tour)’라고 하는데, 일반물리에서 현대 논문에 나오는 이론들을 이끌어낼 수 있게 문제가 도와주는 셈이죠. 이론을 유도하는 과정을 저희가 문제를 풀면서 채우는 거고요.”

“지식에 더해 추론이 필요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갖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그 자리에서 머리를 굴려 새로운 사실을 생각해낸다는 게 올림피아드만의 매력이죠.”

기자 “공부량이 상당하겠어요.”

“국가대표로 선발된 다음에는 한국물리학회에서 특훈을 받아요. 대회가 7월이니까 5월 중순부터 매주 주말마다 교육을 받았고, 6월부터는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교육을 받았어요.”

“실험은 사실 학원이나 학교에서 못 하거든요. 이론 부문은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식으로 준비할 수 있어도. 그래서 실험은 물리학회에서 진행하는 집중교육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배웠죠. 지난 올림피아드대회에 출전했던 선배들의 도움도 컸어요. 출전했던 선배들 간 네트워크가 있어서…. 배우면서 또 많이 친해졌어요.”

기자 “그럼 대표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학원에 가야 하나요?”

“보통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올림피아드 대표단은 다 ‘사교육발’이라는 얘기도 있고. 하지만 저만 해도 학원에 안 가고 혼자 공부했어요. 물리올림피아드는 일반물리학이 시험 범위예요. 그래서 기초를 탄탄히 하고, 심화문제를 풀어보면서 대비할 수 있어요. 학원에서 심화문제를 받을 수도 있지만, 요새는 인터넷으로 조금만 찾아도 문제가 많아요. 아, 그리고 영어도 잘하면 좋아요. 한국어로 된 심화문제는 많이 없어서, 영어를 보고 풀 수 있는 능력만 갖추면 그때부터는 교과서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거든요.”

“저도 학교 물리 수업을 들으면서 수학책을 혼자 보는 방식으로 공부했어요. 물리적 직관으로 설명한 현상을 수학적으로 다시 논증하는 과정이 인상 깊어서 보게 됐어요. 대학교에서 전공책으로 쓰이는 해석역학이나 전자기학 등 응용 책을 혼자 보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저희가 온종일 공부만 해야 하는 것 같네요. 그래야 올림피아드대회에 나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지금 당장 집 가면 게임하러 갈 건데…. 우리 다 알아서 잘 노니까, 생각보다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 별로 없으니까 후배들이 겁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기자 “올림피아드를 지원하는 후배들이 많지는 않은가 봐요.”

“저랑 경민이가 학교에서 ‘물리 실험부’라는 동아리에 들었는데, 여기서는 주로 국제물리올림피아드대회를 준비하는 공부를 많이 하거든요. 매년 들어오는 신입생 수와 대회에 지원하는 학생 수와 상관관계가 있을 거예요. 근데 우리가 지원할 때는 신입 부원이 40명이었고, 그다음 해가 20명, 올해가 10명대로 줄었어요.”

기자 “거의 반씩 줄어드네요.”

“지수함수죠.”

“맞아요. 사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고인 물들만 나가는 대회’라는 인식이 있어요.”

“후배들이 많이 도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화상으로 대회를 진행했지만, 내년에는 그래도 해외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기자 “아무래도 대학 입시와는 좀 다른 성격의 시험이라 그렇겠죠?”

“맞아요. 그래서 저희도 수능은 보지 않을 예정이에요. 특기자 전형이나 학생부 종합전형 등 수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특기자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학교나 학과가 적어요. 서울대학교만 해도 특기자 전형이 없네요. 그런데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는 교내활동만 기입할 수 있어, 올림피아드 등 교외활동은 적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저희는 사실 대입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달라질 건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한국 과학 올림픽 성적이 계속 좋으려면, 교과과정 밖에서 내신이나 수능에 도움 안 되는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위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하는 올림피아드 공부가 대학 입시에는 전혀, 하나도 도움이 안 되거든요. 시간만 다른 데 써버리는 거죠. 정보올림피아드에 나간 한 친구도 코딩을 정말 잘하는데, 지금 컴퓨터공학과를 가기 위해 수능 준비를 하고 있어요. 수능은 ‘누구나 노력하면 만점에 가까워질 수 있는 시험’인 것 같아요. 이런 방식도 공정하기 때문에 중요하죠. 하지만 또 다른 분야, 연구자로서 빛을 낼 수 있는 친구들은 또 다른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기자 “그런데 ‘지원을 받는 영재학교 학생들이 연구는 안 하고 의대에 간다’는 비판이 있어요.”

“일단 제가 다니는 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는 아예 의대에 지원을 못 하게 돼 있어요.”

“주변에 의대에 진학하길 희망하는 친구들이 있긴 해요. 그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물어봤죠. ‘뭐가 더 재밌을 것 같은데?’ 그랬더니 한참 고민하더니 또 연구자가 끌리긴 한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사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수학, 과학을 잘하고 좋아해요. 하지만 확실한 꿈이 없을 때는 경제적 안정성이나 사회적 인식 때문에 의대를 선택하는 것 같아요.”

“오늘 메달 수여식 때 물리학회 회장님께서 ‘과학자, 연구자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건 오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선배들 말도 그렇고요. 영재학교 학생 중에 순수과학과 연구에 진심인 아이들도 많은데, 그게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기자 “그럼 각자 진로 계획이 있다면.”

“물리학과에 입학해서 우주를 연구하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우주의 기본 원리를 밝혀내고 싶었어요. 양자역학으로 시공간을 기술할 때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거든요. 시공간이 어떤 양자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는지 등 난제를 밝혀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특이하니까 궁금하고, 특이하니까 기술하고 싶은 거죠.”

“에너지, 환경 등 거의 모든 문제를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나노공학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싶어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았어도, 나노 단위의 작은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유형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다른 과학 분야에 나노공학을 접목시켜서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제 꿈입니다.”

“저는 물리도 좋아하고 컴퓨터과학도 좋아해요. 사실 두 학문이 서로 상응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래서 전기나 정보 관련 공학과에 진학해서 물리학을 탐구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다양한 실험 결과를 입력하면 그걸 설명해낼 수 있는 이론을 도출하는 인공지능이라든가….”

“저도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공학에 관심이 많아요. 장애인을 돕는 기계를 만들거나 유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등 현실에서 도움이 되는 쪽으로 과학을 쓰고 싶어요.”

“사실 저는 친구들처럼 거창한 연구 목표는 아직 없고요. 남들처럼 일단 대학 먼저 가고 천천히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려 합니다. 물리학도 좋고, 전자기기도 좋아서 관련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죠. 노트북, 휴대전화 같은 전자기기의 새로운 종류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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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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