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흔한 생선이던 병어가 요즘 귀하신 몸이 되었다. 생선 회가 웰빙 식품으로 뜨고 있지만 양식을 하지 않는 자연산 횟감이 드문 상황에서, 양식이 되지 않는 병어의 진가가 뒤늦게 알려지고 있다. 병어를 찾는 사람들은 급증하는 반면, 공급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어 병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국내 최대 병어 위판장인 전남 신안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이맘때 하루 평균1000~2000상자가 거래되던 것이 올해는 300여상자로 뚝 떨어져 병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 접시에 1만000~2만원이던 병어회가 2만5000~3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호남지방 통계청이 발표한 ‘호남지역 어업생산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어 생산량은 5929t으로 전년(8120t)보다 27% 감소했다. 이는 2000년 이후 병어를 가장 많이 잡았던 2006년 1만3873t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물량이라고 한다.

된장소스를 이용한 병어찜 요리.
된장소스를 이용한 병어찜 요리.

병어 생산량이 격감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이 주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병어는 난류성 어종이라 수온 상승을 생산량 감소의 주요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남획의 결과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갑자기 늘어난 주문량을 맞춰대느라 전남의 어선들이 5~6월 산란기에 찾아드는 어미 병어를 너무 많이 잡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병어도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산 병어는 냉동 병어이기 때문에 횟감으로 적절치 않다. 신선한 냉장 병어는 오로지 우리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다. 어쨌든 아쉬워져야 귀한 줄을 안다고, 갑자기 병어가 별미, 특미, 일미로 떠들썩하게 되자, 병어회를 찾아 남도까지 가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게 평소에 치어도 방류하고 산란하는 알배기 병어도 좀 보호할 것이지….

피 맑게 하는 EPA 많아

병어는 가격 대비 최고급 횟감이다. 도미, 민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전어보다는 한참 윗길이다. 제철은 5~6월, 바로 지금이다. 흔히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하는데, ‘봄 도다리, 여름 병어, 가을 전어, 겨울 방어’라고 해야 대중적 제철고기 횟감의 계보가 제대로 정리된다.

병어는 맛이 달고 고소하며 비리지 않아 회를 싫어하는 사람도 잘 먹는다. 병어의 고소함은 지방의 맛이다. 병어는 흰살 생선이면서도 붉은살 생선보다 지방질이 많다. 병어의 지방 함량은 10.9%로 어류의 평균 지방 함량인 3%의 3배에 달한다. 따라서 어지방 속에 함유된 DHA, EPA 함량도 다른 어류보다 월등히 많다. 잘 알려져 있듯이 DHA는 머리를 좋게 하고 EPA는 피를 맑게 하여 치매와 동맥경화, 당뇨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또 병어에는 시력을 보호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비타민 A가 풍부하다.

병어의 최대 산지는 목포 서쪽의 신안군 해역이다. 증도, 임자도, 비금도, 자은도에서 잡힌 병어들이 신안군 지도읍과 연륙된 송도로 집하되어 전국으로 나간다. 병어는 물위로 올라오자마자 죽기 때문에 활어(活魚)로 유통시킬 수 없다. 그래서 활어회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큰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얼음 속에서 적당히 숙성된 선어(鮮魚)회가 더 깊은 맛이 있다는 사실이 미식가들 사이에서 알려지면서 민어와 더불어 선어회의 대표로 인기가 높아졌다. 병어는 크기에 비해 살이 많고 부패 속도가 빠른 피와 내장은 적어서 죽은 후에도 선도가 오래 지속된다.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고급 생선

병어는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나고 산란철인 4~8월에 중국, 한국, 일본 연안으로 접근하는 동아시아의 난류성 회유어다. 나라마다 입맛이 각기 다른 법인데도 삼국에서 모두 즐겨 먹었다.

병어가 가장 대접받는 나라는 중국이다. 지방에 따라 창위, 핑위, 팽커우위라 불리는 병어는 광둥성, 광시성 등 남부 해안지역에서만 나기 때문에 베이징 등 북부 내륙지방에선 귀한 대접을 받는 비싼 생선이다. 특히 산둥성에선 큰 병어를 기름에 살짝 지진 뒤 간장 소스에 은근하게 조린 ‘뚠팽커우위’가 연회에 빠져선 안되는 해물요리다.

한국에서 병어는 임금의 수라상에 오른 생선이다. 조선 왕실의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씨는 “병어를 고추장으로 조린 ‘병어감정’을 고종과 순종에게 올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냉동 시설이 없던 당시에 쉽게 상하지 않는 병어는 궁중요리에 적합한 고급 식재료였을 것이다. 민간에서는 생선을 식해, 젓갈 등으로 삭혀서 장기 보관했으나, 향이 나쁜 음식을 금기시한 궁중에서는 삭힌 생선은 상에 올리지 않았다.

일본에서 병어는 처음엔 관서지방에서만 대접받았다. 그 이유는 병어가 한국해를 마주보는 관서 해안에서만 잡히고 태평양을 바라보는 관동 해안에선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가가 달라졌다. 병어를 된장 속에 하루쯤 파묻었다가 은근한 숯불에 구워내는 오사카식의 ‘마나가쓰오 미소야키’는 이제 도쿄에서도 인기 있는 값비싼 요리가 되었다. 병어의 일본 말인 마나가쓰오는 ‘진짜 맛있는 가다랑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은백색 비늘에 윤기 흐르고 단단해야 좋아

병어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은백색 비늘에 윤기가 흐르고 손가락으로 눌러보아서 살이 단단하면 상품(上品)이다. 선도가 높은 병어는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큰 것이 월등히 맛있으므로 작은 것 여러 마리보다 큰 것 한두 마리를 사는 게 낫다.

냉동 병어는 수분이 빠지지 않도록 비닐 랩으로 싸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상온에서 천천히 해동시켜 참치회처럼 반 해동상태로 썰어먹으면 맛있다. 아삭아삭한 셔벗 상태의 병어회를 막장에 찍어서 더운 밥에 올려먹거나 밥과 함께 상추에 싸서 먹어도 맛있다. 전골 냄비에 감자와 양파, 풋고추를 넉넉히 깔고 고추장이나 간장을 부어서 자작하게 졸여 먹어도 맛있다. 출산한 산모에게는 병어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 일품 영양식이다.

병어의 진미는 얼리지 않은 상태에서 버들잎 모양으로 얇게 썰어낸, 혀에 착착 감기는 선어회다. 제대로 된 병어 선어회를 맛보려면 역시 산지(産地)로 가는 것이 좋다. 서울 등 대도시까지는 수송 시간 때문에 병어를 얼리지 않고 가져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얼렸다가 해동하면 생선살의 조직이 부서지기 때문에 쫀득하게 씹히는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올여름 신안, 목포, 완도, 여수로 달콤한 병어 맛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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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갑 낚시춘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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