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1725~1798). 그를 천하의 ‘바람둥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중소설과 영화 속에서도 카사노바란 이름은 바람둥이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카사노바는 바람둥이라는 단어로만 설명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이 책을 읽고 나면 그에 대한 인식이 더욱 달라진다. 무역업 종사자, 서양고서 수집가, 문화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는 김준목(48)씨의 저서 ‘감각의 순례자 카사노바’(시공사)다.

이 책은 수백 년 전의 역사 속 인물인 카사노바의 매력에 심취되어 그가 남긴 발자취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며 꼼꼼히 탐구한 끝에 나온 결실이다. 그것도 해외 저자가 아닌 국내 저자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직접 다녔다. 필자는 이 책의 저자를 만난 적이 있다. 카사노바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열정은 대단했다. 김씨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내가 카사노바의 또 다른 팬이 되어 그의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는 “카사노바를 호색한이라고 기억하지만 우리에겐 변변한 기록물조차 소개된 적이 없다”면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을 밝혔다.

저자가 카사노바를 가까이 접하게 된 것은 해외 고서적을 한창 수집하던 때였다고 한다. 외국의 한 고서점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카사노바 회고록에 관한 책을 찾아낸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카사노바가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호색가라는 별명을 갖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다양한 문헌을 통해 진귀한 자료들을 보면서 카사노바가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접했다. 카사노바는 박식하고 창의적이며 예술적이고 뚜렷한 인생철학을 지닌 사람이었다.

카사노바는 당대 유럽의 여러 왕들은 물론 문인, 화가, 음악가, 귀부인, 창녀를 만났다. 이런 흔적들은 18세기 당시의 결혼, 패션, 음식 등 다양한 생활문화와 풍속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사료가 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카사노바의 말을 인용한다. 카사노바가 말년에 체코 보헤미아에 있는 둑스 성에서 저술한 회고록 ‘나의 인생 이야기’에서 밝힌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한 모든 일들이 설령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또 카사노바는 이 땅에 태어난 사명에 대해 “나는 여성을 위하여 태어났다는 사명을 느꼈으므로 늘 사랑하였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내 전부를 걸었다”고 밝혔다.

저자는 카사노바에 대해 부러움과 연민을 느끼며 우리들 선입견 속에 갇힌 카사노바를 구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고서적 한 권을 손에 쥔 채 카사노바 인생행로를 따라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카사노바의 고향 베네치아에서 시작해 그가 젊음과 사랑을 만끽했던 로마와 파리, 그리고 말년을 보냈던 체코 보헤미아의 둑스 성까지 말이다. 이 책은 200여년의 시공을 넘나들며 카사노바가 각처에 남긴 다양한 흔적들을 차분히 더듬어 가며 섬세하게 조명한다. 카사노바는 작가, 사업가, 외교관, 음악가였고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의 초상화를 비롯해 수많은 그림을 남긴 화가였다. 죽기 5년 전에는 프라하에서 모차르트를 만나 오페라 ‘존 조반니’ 개사를 도왔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전달된다.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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