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걷기족’인가, 아니면 ‘차량족’인가. 걷기족이라면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1916~2006)의 협력자다. 그는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에 등장하는 대부분이 걷기족을 관찰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인 결과물이라고 한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스크랜턴 트리뷴’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건너간 제이콥스는 1952년 ‘건축포럼’ 부편집장이 되면서 도시계획에 대해 흥미를 갖고 골몰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90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평생을 도시가 제 기능을 하며 숨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1958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3년 만인 1961년에 세상에 선보인 명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그린비·2010년 국내 출간)에서 저자가 대도시를 바라보며 다채롭게 고민하고 탐구하여 전하고 있는 내용 하나 하나는 50년이 흐른 21세기에도,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강한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1950년대에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면서 문득 깨닫는다. 그런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시경제에 유리하게 적용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도시계획에 회의를 느끼며 자기 나름대로의 도시계획 연구에 몰입하여 노력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미국 출판사 랜덤하우스는 1961년에 초판을 냈고, 그 후 이 책을 ‘모던 라이브러리’ 총서에 포함시켰다. 이후 1989년과 1993년에 각각 개정판을 냈다.‘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도시에 관한 거의 모든 얘기를 담았다. 도시가 지닌 성격, 도시가 지닌 다양한 조건, 도시가 쇠퇴하고 재생하는 힘, 그리고 도시가 도시로서 존재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 등이 600쪽에 달하는 분량의 호흡에 맞춰 차분하게 펼쳐졌다. 제이콥스는 “도시는 자신이 가진 자산을 최대한 활용할 때에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서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도시의 장소들의 종류와 그것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 책에서) 지적하려고 애썼다”(197쪽)고 말했다.

특히 도시 재건축 계획에 대해서 제이콥스는 목소리를 높인다. 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돈으로 빈민가를 일소하고 음울한 지역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희망 섞인 신화’로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수십억달러의 돈을 쏟아 부어 건설된 저소득층 주택단지는 기존의 슬럼보다 더 심한 비행, 파괴, 사회적 절망 상태의 중심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천박함으로 공허를 누그러뜨리려 애쓰는 중산층 호화 주택단지, 좋은 서점을 유지하지 못하는 문화센터, 부랑자들만 찾는 시민센터, 산책하는 이 없는 산책로, 대도시의 속을 드러내버린 고속화도로 등은 ‘도시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 약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이콥스는 뉴욕시의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를 한 예로 지적한다. 도시계획 이론에 따르면 그곳에선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선 안 되는 곳이다. 이 지역은 공원, 대학교, 놀이터 등 열린 공간이 많고 강변경치가 뛰어난 높은 지대의 상쾌한 곳이다. 컬럼비아대학, 줄리아드음대를 비롯한 명문학교들이 즐비한 교육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1950년대 초반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험악한 빈민가로 변했고, 그런 상황이 대학들에 위기를 안겨주자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처방을 내려 문제를 해결하는 듯했지만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지적한다. 제이콥스의 핵심 논지는, 외형상으로 드러나 보이는 ‘상상 속 꿈의 도시’와 같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그 도시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나무 한 그루, 블록 하나, 시설 하나,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시민들 모두가 제 역할과 기능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도시라야 살아있는 도시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실제 생활에서 도시가 어떻게 움직이며 기능하는지,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있어서 어떤 원칙과 실행이 그 도시의 사회적·경제적 활력을 높일 수 있는지, 그리고 또 어떤 잘못된 원칙과 실행이 한 도시를 죽음으로 몰아가는지에 대한 연구보고서인 셈이다.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