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그것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찰과 분석, 그리고 그것을 탁월한 문학적 감각으로 풀어 자신이 구상한 스토리로 엮어가는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쮏lveda·1949년생)는 스페인어권을 넘어 세계 문단이 주목하는 작가다. 그가 지닌 남다른 개성 혹은 재능 중 하나는 심각하고 진지한 주제를 복잡하지 않은 간결한 구성과 문체로 이끌면서 거기에다 흥미진진한 추리적 기법과 세계 보편적인 감동 휴머니티를 얹어 시종일관 책 읽는 재미를 한껏 제공할 줄 안다는 점이다. 덕분에 그의 소설은 전세계 수십 개 나라에서 지난 20여년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꾸준히 번역·출간돼 오고 있다.

“우기가 들이닥치는데 사냥을 나서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될 짓이오? 어린 짐승의 가죽에 뚫린 총구멍을 보시오. 당신은 수아르족을 의심했지만 정작 욕을 얻어먹을 놈은 그들이 아니라 여기 뒈져 있는 양키놈이오. 이 빌어먹을 백인은 사냥이 금지된 기간에 사냥을 나섰고, 사냥이 금지된 짐승까지 총으로 쏴 죽였단 말이오.”(35쪽)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칠레 출신의 망명작가 세풀베다의 데뷔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Un Viejo Que Le?a Novelas de Amor·1989)의 본문 중 한 대목이다. 세풀베다는 이 소설의 서두에 붙인 ‘작가의 말’을 통해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티그레 후안 상’을 수여하게 될 심사위원들이 이 소설을 읽는 사이, 수천㎞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조직과, 고급 의상에 손톱까지 깔끔한 자들과, ‘발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자들에게 매수당한 무장 괴한들이 세계 환경운동가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저명한 인물이자 아마존의 열렬한 옹호자를 살해했다”고 언급한다. 그가 말하는 아마존의 옹호자는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환경운동가 친구, 치코 멘데스다. 이 소설은 바로 치코 멘데스의 죽음을 기리는 작품인 동시에, 우리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환경과 생태계가 바로 우리 자신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밀림은 새로이 정착한 이주민이나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사나워지는 것은 짐승들이었다.”(72쪽)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야 할 자연환경인 밀림과 그것의 한 구성원인 야생 동물들이 파괴되어 가는 원인이 묘사된 대목이다. 문제는 인간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동물의 또 다른 구성원들이 난폭하게 변해, 역으로 인간에게 보복성 공격을 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밀림의 야생동물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의 생태구조를 잘 이해하는 지혜를 지닌 밀림 원주민인 ‘연애 소설 읽는 노인’(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은 차선의 처방일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연속되는 희생의 고리를 끊는다. “노인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치 거대한 화살처럼 강변을 달려오던 암살쾡이는 불과 네댓 걸음을 남긴 지점에서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차분하게 그 순간을 기다리던 노인은 짐승의 도약이 정점에 이르자 방아쇠를 당겼다.”(178~179쪽) 그러면서 노인은 “다시는 백인들의 더러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거대한 아마존 강이 합류하는 저 깊은 곳으로 흘러가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영예롭지 못한 해충이나 짐승의 눈에 띄기 전에 갈기갈기 찢어지길 기원하면서 강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179쪽)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소망한다. 앞으로 다시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희생시키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자연(그리고 밀림의 짐승들)이 더 이상은 인간과 그들이 낳은 문명의 이기에 의해 더럽혀지거나 파괴되지 않기를.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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