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혜화, 동’의 한 장면
영화 ‘혜화, 동’의 한 장면

삶에 남겨진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보면 4월이 3월보다 먼저, 흉터가 상처보다 먼저 있는 세상이 등장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어떤 식의 상처든 생긴 이후엔 흉터를 남긴다. 어떤 상처는 마음속 깊숙이 남아 성격을 바꾸고, 어떤 상처는 몸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때로 어떤 상처는 마음에도, 몸에도 흉터를 남긴다. 10대 소녀의 임신이라면 어땠을까? 그것은 아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아픈 상처 중 하나일 것이다. 혜화의 상처 역시 그렇다. 그녀에게 임신은 몸과 마음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에게나 삶이 시험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일 시험인데 놀까, 공부할까부터 시작해서 점심을 뭘로 먹을까, 살을 빼야 하는데 운동을 할까 금식을 할까 등등의 사소한 고민부터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할까 취직 준비를 해야 할까 같은 조금 큰 문제들도 있다. 선택을 하는 방식에 따라 삶의 표정이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간 후 돌이켜보고 후회한다고 해도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의 풍경을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선택 이후에도 또 다른 선택의 늪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혜화의 현재에서 시작한다. 동물병원에서 애견미용사로 일하는 혜화는 스물셋이다. 그런데 혜화의 눈빛만큼은 스물셋답지 않다. 유기견을 절실하게 찾아다니는 모습도 그렇고 싱글 대디로 아이를 키우는 동물병원장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5살배기 원장 아들을 대하는 품도 넉넉하다. 아이를 업고 재우고 심지어 그녀의 가슴팍에 아이의 손을 올려두기도 한다.

어쩐지 유기견을 찾아 돌아다니는 혜화의 눈빛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재개발로 대개의 주민들이 이주한, 폐허 같은 동네엔 버려진 개들도 많다. 버려진 개들은 의심도 많다. 혜화는 개들의 마음이 놓였으면 하는 바람에 개들에게 줄 고기를 직접 먹어 보기도 한다. 혜화는 단순히 개를 구한다기보다 무엇인가에 대해 속죄하는 듯이 열심이다. 그런데 어느 날 혜화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난다.

혜화가 한수와 재회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혜화는 덫을 확인하기 위해 덫에 직접 기어들어갔다가 올이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때 한수가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지우고 싶었던 5년 동안의 상처가 하나둘씩 스며나온다. 과거 회상 장면 속에서 한수와 혜화는 함께 있다. 네일아트를 공부하고 싶다는 혜화는 한수의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있다. 쑥스러워하는 한수와 달리 혜화는 당돌하고 대담하다.

한수는 학교로 돌아가지만 혜화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미 혜화는 임신사고로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혜화의 나이 든 노모는, 어린 나이지만 두 사람이 결혼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한수는 도망가듯 외국에 공부하러 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혜화는 아이를 낳는다. 게다가 아이는 혜화가 정신을 잃고 있을 때 하루를 살다 세상을 떠나버렸다.

유기견에 대한 혜화의 집착은 엉겁결에 놓쳐버린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연결된다. 어린 나이에, 어린 남자친구까지 떠나버리자 혜화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고 만다. 아이가 떠남으로써 이 사건은 종결되리라 믿었지만 그렇게 쉽게 상처가 낫지는 않는다. 버려진 강아지, 엄마 없는 아이를 볼 때마다 혜화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가 생각난다. 여기엔 혜화의 또 다른 비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혜화는 아버지가 밖에서 얻어 온 자식이다. 그러니까 키워준 노모는 친엄마가 아니다.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를 원망했지만 혜화는 그녀 자신도 엄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한수가 찾아와 그들의 아이가 살아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한수는 그들 몰래 부모님이 작성했던 입양 문서를 가져와 아이를 찾자고 설득한다. 이미 흉터가 된 상처라고 여겼던 아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자 혜화의 혼란은 더욱 커진다. 한수는 입양된 집 근처를 맴돌고 혜화 역시 아이의 어린이집 부근을 배회한다. 한 번만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울컥 손을 뻗어 안아보기도 한다.

아이가 살아 있다, 아이를 보고 싶다, 아이와 하루를 보내고 싶다, 라는 한수와 혜화의 간절한 소망은 불가능한 욕망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 간절함 속에는 실수로 망쳐버린 과거를 어떻게 해서든 복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를 향한 부정 혹은 모정보다 자신의 삶을 지금이라도 리폼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발견하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혜화, 동’은 아이를 중심에 둔 가족드라마가 아니라 혜화의 성장이야기으로 보인다.

아이를 낳아봤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혜화 역시 덜컥 아이를 갖고 낳겠다고 했을 때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만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세상은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한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한수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인생을 혜화에게 전달하고 갔지만 이 역시도 판타지에 불과했다. 실제 한수가 살아온 삶은 그렇게 멋지고 쿨하지 못하다.

스물세 살의 나이라면 정말 성인이 되어야 할 나이다. 만일 대학을 다녔다 해도 졸업을 앞두고 자립을 해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혜화에겐 조금 일찍 세상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세상은 상처와 흉터를 통해서야 진면목을 보여준다. 인생이라는 시험에서 OMR카드를 밀려 쓴 수험생처럼 혜화는 갑작스러운 사태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한 번만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찾아가는 행동의 무모함에는 후회 없는 미래를 위한 노력이 보이기도 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혜화는 아이를 무턱대고 안는다. 물론 이 포옹의 온기도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혜화를 위해 마련된 이 소동극의 비밀이 밝혀진다. 또 한 번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지만 어찌보자면 혜화에게 달라진 바는 없기도 하다. 애초부터 달라질 것은 없다. 비밀이 가져오는 극적 반전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무대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주고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뒤늦게 알려진다.

여러 배우들의 에너지와 매력을 동시에 뽐내는 배우 유다인에게 주목했으면 싶다. 20대 젊은 여배우들의 가난 속에서 한국 영화가 소중한 보물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든다. ‘올드보이’에서 유지태 아역을 맡았던 유연석의 눈빛도 인상적이다. 젊음의 특권, 젊은 배우의 힘은 이렇게 젊은 고통을 절실히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불안한 눈빛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파장, 그 힘은 어떤 노련한 배우의 연기력으로도 따라할 수 없다. 아픈 청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이 영화, ‘혜화, 동’을 권한다.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2005년 조선·경향·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고려대 국어국문과 박사 졸업, 세계의문학 편집위원, 고려대에서 강의 중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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