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1912~1996)은 일찍이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인 풍경을 두고 ‘여우난 곬족’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명절은 모처럼 식구들이 다 같이 와글와글 붐비는 때다. 오랜만에 형제·자매·사촌 형제들까지 한자리에 앉는다. 자식에 손주들까지 꽉 찬 집에서 부모님도 주름살을 잊고 환하게 웃는다. 그래서 명절이야말로 부모님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때다. 나이 드신 부모님 사진이 좋으려면 ‘표정’이 좋아야 하는데, 온 가족이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명절은 부모님 표정이 가장 환하고 즐거운 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사진 찍기의 ‘황금시간’ 만나자마자 1시간

명절은 보통 언제 가장 즐거울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사실 명절은 즐거운 만큼 일도 많고 이래저래 몸도 바쁜 때라 조금 피로한 것도 사실이다. ‘명절 후유증’이란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닐 게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나는 순간엔 얼굴이 환해지지만 차례 준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또다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난 기왕이면 부모님 사진은 부모님을 마주하자마자 찍으라고 권하고 싶다. 반가운 자식과 손주 얼굴을 대한 바로 그 직후. 그 즐거움에 얼굴이 꽃처럼 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후다닥 셔터를 누른다면, 최소한 표정이 밝지 않아 사진을 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부모님을 모델로 모셨다.
이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부모님을 모델로 모셨다.

관건은 ‘표정’, 손주나 강아지를 활용하자

이를 위해선 명절날 부모님댁에 들어서기 직전부터 카메라를 목에 걸거나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찍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좀 유난스럽게 보일까 봐 머뭇대는 사이, 부모님의 얼굴이 가장 밝고 부드러운 ‘황금시간’은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따라서 최소한 만나자마자 1시간 안에 사진을 건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찍는 게 좋겠다.

시간 다음으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장치다. 대개 부모님들은 두 분만 세워놓고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하고 외치는 순간 굳어버린다. 평소 부부끼리 살가운 애정 표현을 잘 안 하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어색한 상황이다. 따라서 ‘하나 둘 셋’ 등은 웬만하면 외치지 말자. 연출을 애써 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진은 재미없고 뻣뻣해질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자연스럽게 두 분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아기가 있는 집이라면 걱정할 일이 별로 없다. 아기만 두 분 사이에 놔두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게 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두 분을 가깝게 앉게 하고 그 가운데 아이를 안겨 드리자.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가는 눈빛과 몸짓, 절로 번지는 미소와 깔깔깔 웃음. 바로 그 순간 셔터를 열심히 눌러주면 그 어느 때보다 보기 좋은 부모님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아기가 없는 집이라면 강아지 같은 애완동물을 활용하거나 두 분의 공통 관심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를 가까이에 배치해 두면 좋다. 가령 두 분이 함께 화초를 키운다면 그 화초 앞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라고 하는 식이다. 함께 화초를 만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피식’ 하고 웃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때 사진을 찍으면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고 훈훈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에 해당하는 인물을 두 분 근처에 어슬렁거리게 해도 좋다. 가령 식구 중 가장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이 막냇동생이라면, 막냇동생을 두 분 옆에서 얼쩡대게 하면서 말을 걸도록 하는 거다. 막냇동생과 한두 마디 주고받다 웃음이 터질 때 셔터도 함께 누르는 식이다.

정면만 찍을 생각을 버리자

아무리 노력해도 ‘사진을 찍는다’는 의식을 가지는 순간 굳어버리는 부모님이 있다. 이럴 땐 가급적이면 정면에서 사진을 찍지 않는 게 낫다. 누군가 카메라를 든 모습을 보는 순간 괜히 어색한 표정이 나오고 몸짓도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분이라면 옆모습 사진을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마치 ‘몰래카메라’를 찍듯 조용히 곁을 맴돌면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할 때 슬쩍슬쩍 찍는 것이다. 이럴 땐 아무래도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사진을 찍긴 어렵겠지만 평소에 쉽게 볼 수 없었던 부모님 모습을 카메라의 사각 프레임으로 확인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조금 더 구부정해진 어깨, 부쩍 늘어난 흰머리, 눈가의 잔주름살. 어쩐지 마음이 짠해지는 부모님의 모습을 그렇게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다가 셔터를 눌러보자. 부모님에게도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작은 기록이 그렇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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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내겐 너무 쉬운 사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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