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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256호]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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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용필부터 버스커버스커까지

심하늘  인턴기자·고려대 4년·‘대중문화의 들’ 블로거 

▲ 젊은 감각의 록음악으로 컴백한 조용필. photo 조선일보 DB
다음의 이야기는 지금의 40대 이상에게는 널리 알려진, 한국 대중음악사의 전설적 일화다.
   
   1968년 가을, 학창 시절 기타와 록(Rock)에 미쳤던 고등학생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가출했다. 집을 나온 청년은 무작정 경기도 파주 기지촌의 한 술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첫 록 밴드를 결성했고, 미군들 앞에서 기타 연주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의 연주 실력은 미군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청년은 음악전문가들로부터 ‘A클래스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마침내 미8군 무대에 서게 된다. 청년은 때마침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보컬리스트를 대신해 블루스를 불렀다. 키 작은 청년의 짙은 음색에 미군 병사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후 청년은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1971년 서울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선데이컵 쟁탈 보컬그룹 콘테스트’에서 ‘알 그린(Al Green)’의 명곡 ‘Lead Me On’을 번안한 ‘님이여’를 불러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으로 데뷔한다.
   
   하지만 청년은 자신의 미성이 거친 록음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래서 부단히 민요 ‘한오백년’을 연습했고, 창 특유의 절절한 탁성(허스키)을 득음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결국 청년은 1975년 25세의 나이에 공전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노래의 제목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왕(歌王) 조용필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흔히 트로트 장르로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은 트로트와 록음악과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 ‘트로트 고고’라는 밴드음악의 일종이다. 학창시절 기타에 미쳐 가출했던 ‘록 키드(Rock Kid)’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후에야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조용필은 1977년 대마초 파동으로 고비를 겪기도 했지만, 1980년에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대중이 조용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고추잠자리’(1982)와 ‘여행을 떠나요’(1985)였다. 록을 전면에 내세운 두 곡으로 대중음악계는 조용필을 대중성과 함께 음악성을 겸비한 진화하는 가수로 평가했다.
   
   1991년 41세의 나이에 발표한 13집(타이틀곡 ‘꿈’)은 완성도 높은 록 사운드를 위해 미국의 수준급 연주가들과 함께 미국 현지에서 녹음하기도 했다. 이 음반은 많은 평론가들과 조용필 팬들에 의해 조용필 최고의 명반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리고 2013년, 63세의 조용필이 부르는 록음악 ‘헬로’는 글로벌스타 싸이(Psy)의 기세마저 눌렀다. 지금 조용필의 ‘헬로’는 발매 2주 만에 11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한국 록음악사를 다시 쓰고 있다.
   
▲ 지난해 재결성한 밴드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아이돌 가수나 트로트 가수는 한때의 추억으로 남는 경향이 있지만 록 밴드는 영원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래서 “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Rock Will Never Die)”는 말이 록 매니아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조용필은 음반을 내지 않는 동안에도 꾸준히 공연을 가지며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음반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공연 활동을 재개한 전설의 밴드는 또 있다. 작년에 재결성을 발표한 들국화(보컬 전인권, 베이스 최성원, 드럼 주찬권 등)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들국화는 1985년에 첫 데뷔 음반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조용필 7집(타이틀곡 ‘여행을 떠나요’)까지 잊혀지게 만들 정도로 기록적 흥행을 이어갔다. 조용필이 그러했듯 들국화 역시 공연 활동에 주력하였을 뿐 방송 활동은 극도로 자제했고, 이 때문에 들국화를 섭외하기 위한 방송가의 총력전이 벌어졌다.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등이 수록된 들국화 1집은 이후 음악평론가들에 의해 ‘대한민국 명반 리스트’가 만들어질 때마다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들국화는 작년 재결성 이후 꾸준히 단독 콘서트를 열어왔고, 주요 록 페스티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여 메인 무대를 꾸미고 있다. 지난 4월 2일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캐스트를 통해 신곡을 공개하기도 했다. 들국화의 록을 가리켜 ‘굳세면서도 천진하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신곡 ‘걷고 걷고’와 ‘노래여 잠에서 깨라’에도 시대를 뛰어넘는 들국화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0년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였다. 조용필과 마찬가지로, 서태지 역시 베이스 기타에 미쳐 학교를 중퇴했다. 한국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도 잠시 활동했던 서태지는 춤꾼 양현석·이주노와 함께 힙합 팀을 꾸렸다. 대표곡 ‘난 알아요’가 수록된 1집(1992)은 미디 시퀀서(컴퓨터로 만드는 전자 사운드)로 작곡한 힙합이었지만, 후기 음악으로 갈수록 록의 색채가 뚜렷해졌다. 2집 타이틀곡 ‘하여가’는 묵직한 기타 솔로 연주가 1분 가까이 삽입되어 있었는데, 댄스음악이 인기를 얻었던 당시 한국 대중음악으로서는 파격적인 밴드 편곡이었다.
   
▲ 한국 블루스록을 대표하는 가수 한영애.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3집과 4집에 이르러서는 록에 전격 투신했다. 서태지의 미성으로 표현하기엔 거친 음악들이었기 때문에 ‘교실 이데아’ 등에서는 헤비메탈 밴드 ‘크래쉬’의 보컬 안흥찬을 백 보컬로 기용하기도 했고, 4집 ‘시대유감’은 반항적인 가사가 사전심의에 걸리자 아예 노래 없이 밴드 연주곡으로 실어버리는 패기를 보이기도 했다. 조용필, 들국화와 마찬가지로 서태지 역시 방송 활동이 전무하고 사생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문제를 다룬 ‘교실이데아’, 가출 청소년의 문제를 다룬 ‘컴백홈’ 등 그 누구보다 사회적 메시지에 민감한 가수이기도 하다. 방송에 나와 떠들기보다는 음악으로 할 말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성 가수 중에서는 58세인 한영애를 빼놓을 수 없다. 소란스러운 록음악보다는 김민기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포크음악을 동경했던 한영애는, 젊은 시절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1977년과 1978년에 솔로 음반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음악관이 정립되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녹음된 음반이 뒤늦게 발표된 것이었다. 한영애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녹음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서 “그 음반들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태평양에 해당 음반의 마스터 테이프를 빠뜨리는 꿈까지 꿨다”고 말했다. 결국 그 두 음반은 한영애의 ‘비공식’ 음반으로 남았다.
   
   한영애의 데뷔는 ‘해바라기’부터 시작된다. 1976년 포크 그룹사운드 ‘해바라기’의 원년 멤버로 참여해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 등의 히트곡을 남겼고, 이후에는 동경해 마지않았던 김민기의 노래 ‘기지촌’에 참여하기도 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짙은 블루스 감성을 깨달은 후에는 본격적으로 블루스록에 투신하게 된다. 1986년 신촌의 한 카페에서 ‘신촌블루스’를 결성하여 고(故) 김현식 등과 함께 보컬로 활동했고, 자신의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누구 없소’ ‘조율’ 등 개성 있는 블루스록을 부르며 한국 여성 록 보컬리스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테크노와 록을 결합하는 등 시대를 뛰어넘은 음악적 감각을 보여왔고, 작년에 ‘나는 가수다 시즌 2’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렸던 단독 콘서트에서 “올해는 대학 축제에서도 자주 무대를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왜 한국에는 1980년 데뷔 이후 꾸준한 활동을 하는 아이언 메이든과 같은 밴드가 없는가”라는 록 매니아의 불평은 설득력을 잃는다. 조용필, 들국화, 서태지, 한영애 외에도 한국의 록 밴드들은 대개 오늘날까지 장수하고 있다. 잠깐 잊혀졌더라도 밴드적 창작력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다시 현역으로 일어선다. ‘아니 벌써’를 불렀던 밴드 ‘산울림’, ‘한동안 뜸했었지’를 불렀던 밴드 ‘사랑과 평화’, 2000년대 들어서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의 히트곡을 부른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등 숱한 록 밴드들은 꾸준히 한국 록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록음악을 두고 경력이 오래된 가수들만이 부르는 장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 우리 가요계는 댄스 음악과 아이돌 가수만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결국 경쟁력 있는 대중음악의 형태는 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엠넷 ‘슈퍼스타K’의 경이적 흥행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은 범람했고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은 사실상 포화상태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도 성공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은 대부분 밴드음악에 토대를 둔 뮤지션들이다. ‘슈퍼스타K4’ 출신의 가수 로이킴은 컨트리 장르 ‘봄봄봄’으로 지난 4월 22일 데뷔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컨트리’는 과거 미국 백인들이 연주했던 토속 장르로 ‘록의 모태’라 할 수 있다. 현재 로이킴의 ‘봄봄봄’은 조용필 19집과 함께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송창식, 조영남 등 세시봉 출신 가수들이 미국의 컨트리 곡들을 번안해서 불렀던 1970년대 이후 40년 만에 만나보는 한국의 컨트리다.
   
▲ 모던록 ‘벚꽃 엔딩’을 부른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해 음원시장을 휩쓴 데 이어 올봄을 맞아 또다시 차트 1위를 기록한 ‘벚꽃 엔딩’의 버스커버스커 역시 슈퍼스타K3 출신 3인조 밴드다. ‘벚꽃 엔딩’은 매년 벚꽃이 필 때마다 거리에 울려퍼질 불후의 명곡이라는 성급한 평가를 받고 있다. 50년 만에 한국 컨트리가 로이킴에 의해 부활한 것처럼,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역시 1년 만에 부활했고, 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렇듯 밴드는 창작적이고 역동적인 음악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단위이고, 대중음악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 역시 밴드에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록 문법은 대중음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아이돌과 댄스음악밖에 없다”고 불평했던 시기에도 언제나 록은 있었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것은 다름아닌 대형기획사 ‘SM’이다. 이른바 ‘S.M.P(SM Performance의 약자)’ 장르라 칭해지는 SM 특유의 거칠고 반항적인 음악 색은 기타의 ‘퍼즈’(기타 이펙터 가운데 하나로 매우 거칠고 왜곡된 소리를 낸다) 사운드가 그 근간이다. 여기에 일본 비주얼 록 밴드의 영향을 받은 듯한 그로테스크한 분장과 춤사위가 더해졌고, ‘H.O.T’나 ‘신화’ 등 SM 소속 아이돌 팀들은 대한민국의 ‘아이돌 시대’를 열었다.
   
   지난 4월 26일에 발표된 SM 소속 ‘샤이니’의 신곡 ‘Why So Serious?’는 음반에서 밝히고 있듯 ‘펑크록’에 토대를 둔 곡이다. 사실 이 곡은 전자사운드보다는 기타와 건반의 합주로 만들어진 곡인 만큼 댄스라기보다는 오히려 록에 훨씬 가깝다. 밴드처럼 직접 연주하는 대신에 이들은 춤을 출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돌 음악은 록음악에 상당 부분 빚져 있었던 셈이다. 현재 SM에는 SM의 상업 음악과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오가며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도 많이 소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아쉬운 점은 아이돌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은 많아도 기타에 미친 학생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2의 H.O.T는 수도 없이 나왔지만, 인디밴드 신화를 이룬 제2의 들국화는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록음악
   
   록음악은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활약했던 1950년대 ‘로큰롤’에서 출발한다. 로큰롤은 백인의 전통 음악이었던 ‘컨트리’ 장르와 흑인의 ‘리듬앤드블루스’를 결합한 형태의 새 장르였다. 로큰롤 이후 록 장르는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해갔다. 1960년대에는 비틀스 등이 환각적이고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을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 비틀스 못지않은 수준의 연주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이키델릭록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가수 이선희가 대중적인 형태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신중현의 원곡 버전은 8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신중현의 몽환적인 기타 연주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사이키델릭록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친 록’의 이미지는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흑인의 블루스 음악을 록에 가미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후기로 갈수록 묵중해지고 둔탁해졌는데, 이것이 ‘하드록’ ‘헤비메탈록’ 등의 원형이 되었다. 이후 기성 밴드들의 복잡한 연주를 비꼰 1970년대의 ‘펑크록’, X세대의 반항적인 정서를 거칠게 표현해낸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록’ 등 록은 시대 정신을 반영해오며 다양한 형태로 분화·발전해 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현대인들의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표현하기 위해 기타보다는 건반이 중심이 되는 잔잔한 발라드 형태의 모던록이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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