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연전타임스 창간호 1면. (우) 1755호 연세춘추 1면.
(좌) 연전타임스 창간호 1면. (우) 1755호 연세춘추 1면.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김우식 연세대 제14대 총장, 김수길 JTBC 대표이사, 석종훈 전 다음 대표, 강상현 연세대 교수….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약해온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경험이 있다. 이들은 모두 연세대 재학 시절 학보사인 ‘연세춘추’에서 학생기자 활동을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신문 연세춘추가 올해로 80번째 춘추를 맞았다.

연세춘추는 본래 ‘연전타임스’라는 이름으로 1935년 9월 1일 창간됐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 연희전문학교 학생기자들은 순우리말로 된 신문을 고집하며 일간신문 체제와 동일한 형태로 연전타임스를 제작했다. 지면은 총 8면으로 구성됐으며 구독료로 1부에 5전, 1년에 40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이 극심해지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연전타임스도 발행이 중단된다. 창간호 사본은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1945년 광복과 뒤이은 6·25전쟁으로 발행 중단과 재발행을 반복하며 연희타임즈에서 연희춘추로 제호 또한 변경됐다. 6·25전쟁 중에는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2주에 한 번씩 발행되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 특집호 등을 기획해 열악한 제작 환경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지금의 제호인 ‘연세춘추’는 연희와 세브란스의 합병으로 교명이 연세대로 바뀌면서 1957년 4월부터 사용됐다.

연세대학교 57학번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시기 연세춘추의 산증인이다. 연세춘추 80주년 기념호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뛰어난 글솜씨 덕에 연세춘추에 특채됐다고 한다. 그는 연세대 조교수 시절 연세춘추의 주간교수로 활약했고, 후에 연세대 14대 총장으로 임명되면서 연세춘추의 발행인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연세춘추에서 기자, 주간교수, 발행인까지 모든 역할을 담당해 본 것이다. 주간교수 재직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불그죽죽한’ 글을 쓰던 학생기자들이 서대문경찰서에 끌려가는 것만큼은 막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말했다.

빛바랜 연세춘추의 영광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세춘추는 학생사회에 단단한 방패이자 날카로운 창이 되어 주었다. 연세춘추 35기 편집국장을 지낸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학내에 사복경찰, 중앙정보부 요원이 들어와 기사를 사찰했다”며 “해학·풍자 등 돌려 말하기 식으로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연세춘추와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연세춘추를 비롯해 대학신문 전반의 명성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22.2%, 31.3%. 이 두 숫자는 연세춘추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연세춘추는 지난 11월 9일 발행된 연세춘추 80주년 특집호에 ‘독자가 바라본 연세춘추, 기자가 말하는 연세춘추’라는 제목으로 조사한 바를 발표했다. 999명의 연세대 학생 중 “최근 한 달간 연세춘추를 읽은 적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22.2%에 그쳤다. 연세춘추를 후원하는 “연세춘추비를 납부했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비율도 31.3%뿐이었다. “그대 가는 길이 역사다”라는 슬로건을 자랑하던 연세춘추는 이제 옛말이 됐다.

지난 11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연세춘추 8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은샘 연세춘추 편집국장은 한숨 섞인 축사를 내놓기도 했다. “춘추를 많은 연세인들과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떨어져가는 관심 속에서 누군가는 대학언론의 효용성을 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의 가려움을 긁어줘야만 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회에서나 언론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이고, 이는 대학 사회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연세춘추는 현재 재정난에도 시달리고 있다. 예전에는 ‘연세춘추비’가 매학기 등록금에 포함돼 거의 모든 학생이 비용을 냈다. 그러나 2013년 자율경비제를 도입한 이후 원하는 학생만 따로 신청을 받아 연세춘추비를 받고 있다. 자연히 연세춘추비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자율경비제에 대항해 2013년 3월 11일자 연세춘추는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연세춘추 한 관계자는 “기자들 밥값도 대주기 힘든 형편”이라며 “발행 면수를 줄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연세춘추의 독자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사회 안에는 연세춘추가 짚어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연세춘추는 대학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향으로 노력해왔다. 그중 하나는 2013년부터 발행한 잡지 ‘.ZIP’이다. ‘.ZIP’에는 딱딱한 내용의 기사를 싣는 대신 학생들의 공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기사를 싣는다. 기자가 직접 핑크색으로 머리를 염색해보거나 버스킹(길거리 연주)에 참여하는 등 개성 있는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기사가 많다. 연세춘추 내에 대내외 홍보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해서 구독률 하락 문제를 타개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지난 4월과 6월에는 창간 80주년을 맞아 미국과 영국의 유수 대학 학보사에 기자들을 파견해 대학 언론의 길을 모색해 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와 러트거스대, 영국의 런던정경대와 임페리얼대의 학보사를 탐방했다.

80주년 기념 특사를 파견하다

하버드대의 학보사 ‘더 크림슨(The Crimson)’은 학교로부터 완전한 독립에 성공한 케이스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등이 거쳐 간 ‘더 크림슨’은 기라성 같은 동문 선배들과 학생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매년 상당한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하버드대 편집장 마들린 콘웨이(Madeline R. Conway)는 “대학 언론이 살아남으려면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학교로부터 완전히 재정적 독립을 이루고 학생사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짚어내다 보면 언젠가는 학생들의 지원과 지지만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문이 될 것이다.”

80년 연세춘추가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은 지나온 길보다 험난한 길일 것이다. 이지만 연세춘추 편집인은 “살아서 늘 깨어있는 신문, 동시대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당대의 현실을 냉철하고 올바르게 파악하는 신문이 80년 전부터 우리 선배들이 추구해온 대학 언론의 가치”라며 “앞으로도 그 전통과 역사를 이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며 정론직필의 책임을 다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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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해 인턴기자·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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