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민간 기상회사들은 매년 1월 말이면 벚꽃 개화 시기를 발표합니다. 올해는 3월 23일 후쿠오카에서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4월 말까지 벚꽃 지도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일본의 국화는 아니지만 일본인의 벚꽃 사랑은 유별납니다. 일본 기상청은 수년 전 벚꽃 개화 예상 시기를 잘못 발표하는 바람에 대국민 사과를 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수백 종의 벚꽃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것은 왕벚꽃입니다. 왕벚나무를 놓고 한국과 일본은 100년 넘게 원산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구한말 프랑스인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입니다. 타케 신부는 1908년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합니다. 원산지를 결정하는 열쇠는 자생지입니다. 타케 신부는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밝혔을 뿐 아니라 제주도에 온주밀감을 전파해 밀감 산업의 씨를 뿌린 주인공입니다. 1898년 1월 가난한 조선에 도착한 타케 신부는 1952년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에 묻힐 때까지 한 번도 이 땅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주간조선 2442호에 왕벚나무와 밀감의 아버지인 에밀 타케 신부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왕벚나무 전문가인 정은주 강원대 교수에게서 ‘기사에 문제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벚나무를 정치외교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1912년 미국에 친선의 뜻으로 벚나무 수천 그루를 보냅니다. 워싱턴 포트맥 강변에 심어진 왕벚나무입니다. 그 왕벚나무의 고향을 놓고 한·일 간에 제주도산이라는 주장과 일본에서 접목한 것이라는 주장이 결론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정 교수의 말을 빌려 한·일 벚꽃 논쟁의 전말을 설명하면서 “포트맥 강변의 왕벚나무도 제주도산”이라고 전한 부분이 문제였습니다. “왕벚나무는 맞지만 제주도산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은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정 교수는 “가뜩이나 일본 측 공격에 시달려 죽을 지경이다”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엄청난 항의가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일본인에게 왕벚나무 원산지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국내서도 ‘왕벚나무 세계화에 나서자’는 목소리가 뒤늦게 나오고 있습니다. 두 나라에서 발견된 왕벚나무는 유전적으로 동일합니다. 한국에는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있는데 일본은 아직껏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쿠라 외교’에 나서온 일본이 왕벚나무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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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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