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디저트의 천국이다. 180개 식품매장 중 130여개가 디저트 매장이다. 롯데백화점은 2년 전 본점 식품관에 디저트존을 마련하고 매장 확대 등 디저트 전쟁에 뛰어들었다. 신세계백화점도 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 유치에 바쁘다. 외식시장이 얼어붙고 있지만 디저트시장의 성장 그래프는 거꾸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조사한 디저트외식시장 규모는 2014년 8조97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제과·제빵이 절반을 넘는 4조6000억원 규모이다.

최근 3년 새 급성장한 한국 디저트시장의 특징은 세분화, 전문화, 다양화이다. 백화점뿐 아니라 소규모 디저트 창업이 줄을 잇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 등 유명 요리학교 수료증을 걸어놓은 곳도 많다. 1세대로 대표되는 명장들과 대형 프랜차이즈 틈새에서 골목을 파고드는 개인 파티셰와 SNS에서 스타가 된 ‘독립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효진(34)씨도 그중 한 명이다. 다양한 이력을 자랑하는 ‘독립군’ 중에서도 이씨는 독특하다. 미국에서 중·고교를 나오고 한국 대학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에 있는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에 국제정치를 공부하러 간 이씨는 신세계를 봤다. 2006년의 일이다.

“디저트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양도 화려하고 종류도 어마어마하고, 그야말로 일본은 디저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에 와서야 셰프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일본은 그때부터 벌써 셰프들이 스타 대접을 받고 TV마다 음식 프로그램이 난리였습니다. 이해가 안 갔습니다. 도대체 음식이 뭐기에. 당시 우리나라 디저트 카페는 이대 앞 ‘미고’ 정도였고 고구마케이크가 등장한 때였으니까요.”

그는 디저트 카페, 반찬집 등 닥치는 대로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중고서점에 가서 요리책을 사다 나르기 시작했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수록 일본 디저트의 세계는 놀라웠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디저트시장은 2014년 22조원에 이른다. 몇 대째 내려오는 장인 집안의 화과자, 케이크 하나로 50년을 훌쩍 넘긴 할머니 파티셰들이 흔했다. 연구회 활동도 활발했고 집에서 소규모로 하는 쿠킹클래스도 넘쳐났다.

“일본에서 디저트는 이미 중요한 문화였습니다. 한국 등 인근 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의 셰프들이 일본으로 배우러 오고 요리책 수준도 높았습니다. 지금 봐도 10년 후 현재 한국의 요리책보다도 낫습니다. 카스텔라 등 서양의 디저트도 일본식으로 재해석해 시장을 확 키우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음식산업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었다. 일본 기업들이 어떻게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는지 궁금했다. 결혼 때문에 1년여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짐에는 요리책이 대부분이었다. 일본 요리책은 소탈했다. 누구를 의식하거나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요리철학이 있었고 복잡한 레시피로 기를 죽이지도 않았다. 요리책을 보면 행복했다. ‘나의 첫 책은 요리책으로 내리라’, 목표가 생겼다. 목표는 10년 만에 이뤄졌다. 첫 책인 ‘빵이 있는 따뜻한 식탁’이 막 나온 지난 2월 10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도대체 요리가 뭐기에, 10년 전에 던졌던 질문이 정치학도인 그의 삶을 바꿨다. SNS를 통해 요리 수업을 하고 수제 디저트를 판매하는 인기 요리 블로거가 됐다.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 올리는 그의 레시피를 기다리는 팔로어들이 2만명이 넘는다. 거실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고 제과점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큰 반죽기 2대, 오븐 2대가 한쪽에 있었다. 매일 이곳에서 베이킹 수업이 진행된다. 한 달에 평균 100~150명이 찾는다고 한다. 수업은 매번 다른 요리로 SNS를 통해 신청자를 받아 진행한다. 1회당 4명씩이니 매일 1~2팀인 셈이다.

그의 책은 출간 1주일째 빵 분야 판매 1위에 오를 만큼 반응이 좋다. 일본 번역서가 대부분인 제과·제빵 분야에서 평범한 주부의 베이킹 책은 드물다. 그의 레시피가 눈길을 끄는 것은 쉽다는 것이다. 요리법도 보통 4줄이면 끝이다. 카페, 레스토랑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디저트도 그의 레시피를 보면 누구나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빵 만들기 쉽네, 별것 아니네.”

“치아바타를 집에서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SNS에 올린 그의 요리에 달린 댓글들이다. 백종원식 쉬운 집밥이 먹히듯 ‘이효진식 쉬운 디저트’가 블로거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2015년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리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사진 한 장으로 승부해야 하고 레시피도 4~5줄로 끝내야 하니 자연히 쉬운 레시피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매일 2~3건씩 올린 것 같아요. 매번 다른 요리를 꾸준히 올리려면 직업의식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카카오스토리에도 그의 열성팬들이 있다. 네이버의 파워블로거처럼 카카오스토리의 스토리텔러에 선정돼 지난해부터 레시피를 올리고 있다. SNS 성격에 따라 팬들의 연령대는 다르다. 인스타그램이 10~20대 젊은층이 대부분이라면, 카카오스토리(카스)는 50~60대가 많다. 카스를 통해 장년층들도 SNS의 소통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접한 장년층의 팬심은 특히 열정적이다. 쿠킹클래스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 안산 등 지방에서도 찾아온다.

이씨처럼 SNS에는 자신의 요리를 올리는 사람들이 넘친다. 한때 요리 파워블로거 중에서 공동구매 등 지나친 상업활동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요리 블로거들이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보여주기식 요리에 치우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학력 과잉도 지적했다. ‘르 꼬르동 블루’ ‘츠지’ 등 해외의 유명 요리학교 분교가 잇따라 한국에 들어오고 유학파가 넘쳐난다. 그는 비싼 학비 내고 외국 요리학교에 목매기보다 우리에게 맞는 요리학교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요리철학은 ‘건강한 요리’ ‘어깨에 힘주지 않는 요리’이다. 그의 요리 레시피는 무설탕, 무버터, 100% 통밀가루가 원칙이다. 같은 레시피, 같은 빵이라도 만드는 사람, 습도, 환경에 따라 다른 빵이 나온다. 바게트도 1000개의 레시피가 있고, 크로아상도 1000개의 레시피가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요리를 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가 오늘도 앞치마 두르고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요리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요리를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줄리 앤 줄리아’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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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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