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론’. 대학 시절 들었던 강의입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퇴임 전 거의 마지막 학부 강의였습니다. 일본의 출판평론가 안나미 아쓰시는 “독서의 신은 단 한 문장에 깃든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에게 최 교수의 강의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권위와 권위적인 것은 다르다’. 기자 생활을 하며 사람을 만날 때마다 판단하는 잣대로 활용한 말입니다. 일상에서 관찰해 보니 권위적인 태도와 권위는 과연 양립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소탈하고 겸손했습니다.

지난주 ‘원로 법조인들의 탄핵 고언’ 기사를 썼습니다. 직간접적으로 여러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법조계 원로들의 생각이 궁금했던 차에 반갑다’ ‘들을 가치도 없다. 나이 들면 인간은 변한다’ 등등. 한국 사회에서 ‘원로’란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요. 사회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중심을 잡아줄 원로가 필요하다’는 탄식이 단골로 등장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시각과 검증이 필요한 탄핵 정국에서 정작 원로가 등장하자 일부 사람들은 인격 모독에 가까운 비난까지 퍼부었습니다.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의견을 제시하면 ‘원로’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틀딱’일까요?

기사를 쓰며 이시윤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만났습니다. 헌재 재판관, 감사원장이라는 이력 때문에 가진 선입견과 달리 상당히 쇄탈했습니다. 인터뷰 전에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법조계에서 존경받는 ‘민소법의 이시윤’을 만나러 간다는 걸 몰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용어를 가급적 배제하고 쉽게 의견을 설명하려는 모습, 과거 이력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에서 권위적인 태도가 아닌 권위를 보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법조인들 몇몇에게 인물평을 물어 보니 비슷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지난 2월 18일 토요일 광화문과 시청 일대를 돌아봤습니다. 촛불집회 현장에는 특검 연장을 외치는 깃발이 만장처럼 늘어서 있었습니다. 지난 2월 22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일각에서는 ‘특검은 왜 우 수석 장모의 골프 접대설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나’ 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검찰 출신 청와대 인사 6명이 ‘우병우 구속은 부당하다’고 진술서를 낸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특검의 칼날은 누구에겐 무디고, 다른 이에겐 지나치게 날카로운 듯합니다.

혹자는 기사를 읽고 ‘법 절차를 엄밀하게 지키라는 원로들의 주장은 태평성대에나 통할 말’이라고 논평했습니다. 비상시국이니 ‘선조사 후소추’라는 법의 일반 원칙을 어겨도 된다는 얘깁니다. 지금이 비상시국이라면 전두환 정권 시절은 어떨까요. 당시 ‘국제그룹 해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헌재에까지 올라간 사안입니다. 정부가 부당했다고 헌재는 판시했습니다. 당시 주심재판관은 다름아닌 이시윤 재판관이었습니다. 그가 판결문에 쓴 말입니다. ‘인간의 정치적 예지의 산물이라 할 민주주의는 수단 내지 절차의 존중이지, 목적만을 제일의(第一義)로 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대통령, 재무부 장관 기타 어떠한 공권력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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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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