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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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선물이 어떻게 뇌물이에요?”

“유럽, 미국에선 꽃이 일상이에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꽃을 주고받고 시장 갔다 오는 길에도 한 손엔 꽃을 사들고 와요. 우리는 어떤가요? 생일, 졸업식, 칠순잔치 때 아니면 꽃을 안 사요. 게다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시장이 완전히 죽었습니다. 화훼농가들이 죽을 지경입니다.”

김영주(62) 피베르디코리아 대표의 말이다. 피베르디코리아는 프랑스 앙제에 있는 꽃 예술 전문학교 피베르디의 한국 분교이다. 김 대표는 유럽, 미국 등을 오가며 현역으로 뛰고 있는 국내 1세대 플로리스트이다. JW메리어트호텔 수석 플로리스트를 시작으로 2005년 APEC 공식행사장, 2010년 G20 영부인 만찬장,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식전행사,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 2015년 세계물포럼 등 국제 행사의 꽃 장식을 주관했다. 유엔총회 관련 행사, 플라워쇼 등 해외 활동도 셀 수 없이 많다. 해외 플로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줄리아 킴’으로 통한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벨기에에서 발간된 ‘세계 30인 플로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공공기관 1테이블 1플라워 운동’ ‘슈퍼·편의점 꽃 판매 허용’ 등 화훼산업 종합발전대책을 발표할 만큼 화훼 관련업계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김 대표로부터 선진국의 꽃 문화에 대해서 들어봤다. 김 대표는 인터뷰를 위해 아침 일찍 꽃시장에 다녀왔다면서 뚝딱 꽃다발을 만들었다. 3~4가지의 꽃들이 어우러진 꽃다발을 테이블에 놓으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꽃도 사람, 장소, 행사 성격에 따라 달라져요. 기자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겠구나 싶어 새로운 꽃들을 골랐어요.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땐 항상 꽃바구니를 만들어 갑니다. 테이블의 격이 달라지죠. 끝나고 참석자에게 선물로 주면 너무 좋아합니다. 선진국은 꽃이 문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함께 발전합니다.”

나라마다 꽃에 대한 접근법은 다르다. 그의 설명이다. 패션의 나라 프랑스는 꽃의 트렌드가 패션과 함께 간다. 질감, 색상 등이 패션의 유행을 좇아가고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디자인과 기술이 굉장히 중요하다. 네덜란드는 종자강국인 만큼 꽃산업도 종자 개발 위주로 발달해 있다. 종자 판매를 위한 비즈니스도 뛰어나 꽃 박람회 부스 설치나 연출에 특히 강하다.

독일은 패망 이후 급하게 건물을 올리면서 꽃이 디자인 요소를 담당했다. 그러다 보니 플로리스트의 역할과 꽃 연출이 굉장히 중요하게 요구됐다. 실린더에 꽃을 꽂아두는 등 꽃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응용법도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미국은 꽃을 상업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다. 트렌드를 만들고 파티나 인테리어에 활용하는 감각은 최고다. 영국은 왕실에서 꽃의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하고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다.

꽃 문화에 따라 각 나라 플로리스트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도 다르다. 플로리스트를 단지 꽃다발 만드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설치미술가이고 공간연출가이다. 플라워쇼에서는 행위예술가가 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플로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음식이나 셰프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넘쳐나지만 플로리스트에 관심을 갖는 언론은 없습니다. 세계 꽃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플로리스트가 우승을 해도 언론에 소개조차 되지 않습니다. 한국 플로리스트들의 실력은 뛰어납니다. 국내에도 뛰어난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해외 유명 플로리스트들을 초청해 수업을 듣습니다. 제가 피베르디 한국 분교를 만든 이유입니다. 비싼 돈 들여 유학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똑같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도 해외 유명 학교와 스승들을 숱하게 쫓아다녔다. 현재 프랑스 피베르디 본교 마이스터 클래스에서 강의를 하는 위치가 되기까지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을 오가며 플라워숍 과정, 호텔 플로리스트 전문 과정, 마이스터 과정을 이수했고 새로운 트렌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각종 대회 심사위원을 하고 강의를 하는 요즘도 그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플로리스트의 역할

플로리스트가 공부해야 할 것은 끝이 없다. 꽃만 해도 수천 종류다. 게다가 새로운 종이 쏟아져 나온다. 요즘 나오는 꽃들은 10년 전에 없던 것들이다. 색깔도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무지개 색상부터 검정색 장미까지 나온다. 잎 한쪽은 노랗고 뒷면은 파란 꽃도 있다. 번들거리는 꽃도 등장했다. 행사를 주관할 때는 행사 성격은 물론이고 참석자들의 취향까지 파악해야 한다.

“세계에너지총회 때는 러시아 부호 등 거부들이 참석하는 만큼 화려한 꽃으로 활달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반면 세계물포럼은 저개발국가에서 많이 왔기 때문에 유리 볼로 물방울을 표현하고 흰색과 파란색으로 연출했죠. 특히 국빈행사 때는 꽃이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향이 있는 꽃을 싫어하고 들꽃을 좋아합니다. 한번은 박 대통령의 선물로 한 정상에게 들꽃을 보냈는데 흰색 꽃이 아니면 안 받겠다고 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던 적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 참석 행사를 몇 번 진행했는데 대통령의 의상을 미리 알고 색상을 맞추면 좋은데 사전 정보를 알 수 없어 의상과 완전히 엇갈린 적도 있습니다.”

그는 늦은 나이에 플로리스트에 도전했다. 20대 중반 꽃꽂이를 배우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38세 때였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막 생기기 시작한 때였다. 해외에 나가 세계적인 플로리스트들의 작업을 보고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꽃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오브제를 만나 작품이 되는 과정은 놀라웠다. 그는 우리나라도 꽃이 생활화가 되고 꽃 문화가 발달하면 플로리스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만 해도 꽃 문화가 발달해 재팬컵에서 우승한 플로리스트는 인생이 바뀔 정도라고 한다. 오는 4월 그의 플로리스트 20년을 기념하는 작품집이 나온다. 출판기념회를 겸해 일본 재팬컵 우승자와 함께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다.

“나는 최고라고는 못 해요. 선두주자로 길을 닦았을 뿐입니다. 그 길 위로 후배들이 죽죽 뻗어나가길 바랍니다.”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 1인당 화훼소비량은 한국화훼협회 추산 2014년 1만4000원으로 일본의 10만원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혼돈의 봄, 주변에 꽃 한 송이의 위로를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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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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