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박근혜 가정교사’라고 불렸던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가 문재인 전 대표 대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폴리페서’란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캠프에만 1000여명의 교수가 몰렸다고 합니다. 정곡을 찌르는 ‘독설(毒舌)’로 주가를 올린 자유한국당 경선 후보 홍준표 경남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관가, 재계, 교수들은 이회창 후보에게 줄 서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뜻밖에 당선되자 그해 1월 내내 관가, 재계, 교수들은 혼란에 빠졌었지요. 세상의 흐름을 보지 못한 그들은 그때서야 참여정부에 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서 자기 일에 충실하십시오. 그것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각 대선 캠프에서 교수들을 선호하는 까닭은 전문지식을 정책수립에 반영하고, 참신성을 제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선거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교수들이 가르치는 대학생, 대학원생은 교수와 동일한 1표를 가진 엄연한 선거권자입니다. SNS를 잘 다루는 학생들을 통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20~30대 젊은층 지지를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전북 우석대의 한 폴리페서가 태권도학과 학생 172명을 버스로 동원해 문재인 후보 지지모임에 참석시킨 뒤 밥을 먹이고 영화를 보여준 소위 ‘버스떼기’ 사건은 이 같은 사례를 잘 보여줍니다.

갑(甲)의 위치에 있는 폴리페서의 무리한 요청을 을(乙)의 입장인 학생들은 사실상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교수들의 정치 성향에 적극 호응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교수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수업을 소홀히 할 때 견제해야 할 총학생회 역시 정치바람에 오염된 지 오래입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과거 운동권 총학생회장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학생회의 일부 간부들은 향후 정치권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려 선배 정치권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폴리페서인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인재풀이 한정된 상황에서 폴리페서 기용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적 현실에서 맞는 말입니다. 남덕우, 사공일, 김종인 등 스타 폴리페서들도 역대 정권에서는 많이 배출됐습니다. 하지만 상아탑 밖에서도 고급지식을 접할 수 있는 요즘은 스타 폴리페서를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교수들을 기용해도 국장급이나 차관보급, 중국에서는 대학총장 이상만 부장급(장관급)에 기용하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폴리페서의 그릇과 됨됨이를 잘 따져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은 임명권자의 몫입니다. 차기 대통령은 폴리페서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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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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