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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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첫 장면을 읽는 순간, ‘이곳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안게 하는 장소들이 있다. ‘피터팬’의 네버랜드 같은 상상의 장소는 물론, ‘맥베스’의 배경이 된 황량한 스코틀랜드의 평원, ‘레미제라블’에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때 그 시절의 파리까지. 그런 장소들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이제는 ‘그때 그 시간의 그 장소’와는 너무 달라져버린 곳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장소와 실제 장소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곳도 있다. 바로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 된 영국의 하워스 같은 곳이다. 물론 그 시절과 똑같을 순 없겠지만, 브론테 자매가 살았던 시대의 산과 들, 교회와 학교 등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아, 여기가 소설 속의 그 장소로구나’ 하는 강력한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하워스 가는 길은 낭만이 넘친다.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키슬리역을 거쳐 꼭 증기기관차를 타고 하워스로 가기를 권한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변화무쌍한 산과 들의 아름다움을 증기기관차의 느릿느릿한 흔들림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정이다. 키슬리에서 출발하는 증기기관차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시간여행자들처럼 보인다. 증기기관차를 타는 순간, 지금이 21세기라는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요즘의 간편한 모바일승차권이나 운치라고는 없는 영수증 같은 기차표가 아니라 기관사가 직접 구멍을 뚫어주는 도톰한 마분지 승차권을 보여줘야 한다. 런던에서 운전을 하거나 버스를 타면 3시간50분 정도 소요되고, 런던에서 할리팍스와 헵덴브리지역을 거쳐 하워스로 가면 3시간40분 정도가 걸린다.

인간혐오증 환자에게 더없는 천국

하지만 나는 증기기관차를 타기 위해 조금 더 복잡한 여정을 택했다. 런던에서 리즈를 거쳐, 리즈에서 키슬리로, 키슬리에서 하워스로, 여러 번 기차를 갈아타야 하지만 그 불편함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워스로 가는 길 곳곳에서 만난 옛 시절의 풍광과 순박한 사람들의 표정이 한겨울의 추위마저 녹여주는 느낌이었다. 여름에 갔다면 좀 더 아름답고 생기발랄한 하워스의 풍광을 담아올 수 있었겠지만, ‘폭풍의 언덕’의 황량하고 스산한 느낌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겨울 여행이 제격이었다.

‘폭풍의 언덕’의 첫 장면에서 하워스는 이렇게 그려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가! 잉글랜드 전역을 뒤져 봐도 세상의 시끌벅적함으로부터 이보다 더 동떨어진 곳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인간혐오증 환자에게는 더없는 천국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히스클리프와 나는 이러한 적막감을 공유하기 딱 좋은 한 쌍이다.” 이 장면을 읽다 보면 강퍅하고 성마른 인상을 숨기지 못하는 남자,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을 듯한 야성의 남자 히스클리프가 하워스의 골목 어귀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무엇이 이 속세와 동떨어진 작은 시골마을에 무려 7만여명의 관광객이 매년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역시 브론테 자매의 힘이다. 30대에 요절한 이 안타까운 자매들의 사연은 지금도 평범한 시골마을 하워스를 위대한 예술의 탄생공간으로 만들어준다. 하워스는 브론테 자매의 흔적을 빼고는 그리 특별한 볼거리가 없고, 이런저런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도 아니지만, 하워스로 가는 길이 참으로 유서 깊고 고풍스러워서 영국의 중세를 향해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키슬리역에서 하루 동안 자유롭게 영국의 옛날 증기기관차를 탈 수 있는 티켓을 끊으면, 하워스는 물론 다섯 개의 전형적인 요크셔 지방 시골마을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다.

지금도 옛 증기기관차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이곳의 열차를 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검표원이 직접 나와 한 사람 한 사람씩 옛날식 마분지 기차표에 구멍을 뚫어주며 정겹게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영국의 19세기로 날아든 것 같은 기분 좋은 환상에 흠뻑 빠지게 된다. 하워스는 그중에서도 ‘브론테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막내 앤 브론테가 자라난 곳이며, 브론테 자매의 아버지가 교구 목사로 일하던 곳이다. 지금도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가 설립한 학교가 남아 있다.

하워스의 상징이 된 증기기관차.
하워스의 상징이 된 증기기관차.

하워스의 겨울은 혹독하다. 겨울에 방문한 나에게는 하워스의 모진 바람과 추운 날씨가 마치 ‘폭풍의 언덕’의 첫 장면처럼 스산하게 느껴졌다. 브론테 가문의 유달리 잦은 죽음도 바로 이런 가혹한 날씨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로, 하워스의 겨울 날씨는 우중충했다. 대낮에 방문했는데도 마치 금방이라도 땅거미가 질 것처럼 어둡게 느껴지는 하워스 곳곳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브론테 자매의 유해가 묻혀 있는 교회와 브론테 박물관은 마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샛별처럼 희망을 주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브론테 자매의 흔적을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브론테 자매의 유해가 묻혀 있는 하워스 교회에 들어가니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교회 내부가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진다. 겨울이라 관광객은 거의 없었지만 교회 내부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추위에 떨었던 몸은 금방 따뜻해졌다. 브론테 자매의 유해가 묻혀 있는 쪽의 기둥에는 두 작가의 삶을 기리는 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근처에는 샬럿 브론테의 출생증명서와 결혼사진, 친필 편지 등이 유리상자 안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브론테 자매는 원래 다섯 명이나 되었는데, 두 명의 언니는 어렸을 때 폐결핵으로 죽고, 샬럿과 에밀리와 앤은 모두 작가가 되었지만 세 사람 모두 30대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 짧은 인생 동안 그녀들이 이룬 성취는 실로 눈부시다. 샬럿의 ‘제인 에어’나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말고도 여러 편의 작품들이 남아 있고, 그들은 고향인 하워스에 학교를 세워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시절, 샬럿·에밀리·앤 자매는 모두 작가가 되어 ‘남성들의 세계’에 도전했다. 그것도 런던이나 에든버러 같은 커다란 도시도 아닌, 머나먼 시골마을 하워스에서 말이다.

브론테 자매가 묻혀 있는 하워스 교회.
브론테 자매가 묻혀 있는 하워스 교회.

브론테 가문의 불행

1816년에 태어난 샬럿 브론테의 인생에서 죽음은 마치 너무 자주 나타나는 복병처럼 그녀의 삶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1821년 샬럿이 겨우 5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1825년에는 샬럿의 언니인 마리아와 엘리자베스가 사망한다. 브론테 가문의 사람들은 대부분 단명했고,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사망한 사람들이 많아서 자손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세계문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놀라운 성취로 남아 있다. 그들은 인간의 우울과 슬픔에 대해 본격적으로 파고든 최초의 근대적 여성 작가가 아니었을까.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모두 아주 침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로 시작된다. 제인 에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친척집에 얹혀사는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며 그들의 잔소리로 괴로워하고, 사랑받으며 자라는 사촌 아이들에 대한 굴욕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폭풍의 언덕’은 한 술 더 뜬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록우드씨는 이곳이 흥미롭고 매혹적인 고장이라서가 아니라 ‘세상과 동떨어진 곳’ ‘염세가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라서 하워스를 택했다고 선언한다. 세상을 싫어하는 염세가에게는 천국이겠지만, 세상과 섞여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 바로 폭풍의 언덕이었던 것은 아닌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탓에 고아가 되어버린 제인 에어를 ‘키운다’기보다는 ‘학대’하고 있는 리드 부인은 이제 겨우 10살밖에 되지 않은 제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좀 더 싹싹하고 더 어린이다워지라고. “뭔가 더 명랑하고 더 솔직하고 더 자연스러워지도록 노력해라.” 마치 제인이 좀 더 상냥하고 어린애다워지기라도 하면 그녀를 사랑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리드 가문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제인 에어가 어린이답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제인 에어를 보통 어린이로 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제인을 천덕꾸러기 고아로 대접했고 자신이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었다. 어린이는 그저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제인 에어에게는 바로 그런 조건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의 경험이 없었다. “저쪽에 가서 앉아. 그리고 내 마음에 들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거라.”

‘폭풍의 언덕’을 읽는 체험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눈보라 치는 겨울, 마치 다시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폐허 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여인 캐서린의 유령이 미스터 록허트가 혼자 잠든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이렇게 외친다. “제발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세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름다운 여인 캐서린의 유령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불안과 공포의 정서를 증폭시킨다. 캐서린의 유령은 마치 안개처럼 마을 전체를 드리우고 있어서 이 마을에는 캐서린의 흔적이 스미지 않은 장소란 없는 것만 같다. 하지만 ‘폭풍의 언덕’의 진짜 매력은 이 서늘한 공포가 아니라 그 공포를 딛고 일어서는 눈부신 사랑의 힘이다. 오누이처럼 자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신분의 차이를 딛고, 마침내 죽음과 삶이라는 경계조차 뛰어넘어 서로를 향한 완전한 합일에 이른다.

교회 내부 에밀리 브론테와 샬럿 브론테를 추모하는 기념물.
교회 내부 에밀리 브론테와 샬럿 브론테를 추모하는 기념물.

에밀리와 샬럿 브론테의 삶은 작품 속 주인공들 못지않게 용감했다. 1844년 샬럿이 28살, 에밀리가 26살 때 두 사람은 고향인 하워스에 학교를 설립하려고 했다.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을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던 시대에 그들 자매는 모두 작가가 되었다. 1846년 세 자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의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를 출판했고 샬럿은 ‘교수’라는 작품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했으며, 그 쓰라린 상처를 안고 ‘제인 에어’를 집필했다. 1847년은 에밀리와 샬럿, 그리고 앤에게 운명적인 해였다. 샬럿의 ‘제인 에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모두 1847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54년 목사 A.B. 니콜스와 결혼한 뒤 바로 이듬해에 샬럿은 사망하고 만다.

너무 일찍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브론테 자매의 삶을 돌아보며 그들의 작품을 읽어 보면 그들이 감당했을 삶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이 얼마나 강인한 불굴의 의지 속에서 태어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제인 에어가 생애 최초로 자신을 괴롭히는 타인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장면은 언제 읽어도 매번 싱그러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촌 존은 제인이 책을 읽는 모습조차 못마땅해하며 그녀를 괴롭힌다. “넌 책을 볼 자격이 없어. 엄마 말대로 넌 더부살이에다 돈도 없어. 너네 아버지가 돈 한 푼 안 남겼대. 너는 구걸을 해야 해. 여기서 우리 같은 신사의 자식들과 함께 살고, 우리 엄마 돈으로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우리와 같은 옷을 입으면 안 돼.” 제인 에어가 보는 책조차 ‘내 책’이라며 볼 수 없게 만든 존 리드는 책을 제인의 머리에 던졌고 제인의 눈가에 상처가 나면서 엄청난 고통이 그녀를 엄습한다. 바로 그때 제인이 소리친다. “이 사악하고 잔인한 놈아!” “넌 살인자 같아, 넌 노예감독 같아, 넌 로마 황제 같아!” 열 살에 이미 로마의 역사를 꿰고 있던 제인은 자신을 괴롭힌 사촌 오빠가 ‘네로와 칼리굴라 같은, 천하의 사악한 악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인 에어는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들이 제인을 혐오하고 비하할 때마다 제인은 오히려 강인해졌다. 결코 꺾이지 않는 자존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제인 에어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끊임없이 공부했고 책을 읽었고 그림을 그리고 세상을 관찰했다. 제인 에어의 반짝이는 지성이 상처 입은 그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한 것이다. 브론테 자매의 용기와 열정을 여전히 간직한 하워스는 오늘도 정겨운 증기기관차의 방문을 기다리며 ‘여자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견고한 사회적 통념의 유리천장을 깨부순 이 눈부신 여성들의 용기를 기리고 있다.

하워스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골목길.
하워스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골목길.

빨간 우체통은 아직도 성업 중!

이제는 ‘브론테 마을’이라 불러도 좋을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은 대도시의 온갖 북적임과는 거리가 먼 외딴 장소에서 그 자체로 충만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빨간 우체통이 하도 정겨워서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사람들이 이 우체통에 손편지를 보낼까.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도 이 우체통에 자신들이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넣었을까. 이런 공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잠깐만 비켜주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하워스의 우체부 아저씨였다. 우체부 아저씨가 그 정겨운 빨간 우체통의 자물쇠를 따자 우편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도 이 옛날 우체통은 활기차게 성업 중이었던 것이다.

좀 더 옛날 방식에 가깝게, 좀 더 아날로그적으로 살아가는 하워스 사람들의 느릿느릿한 삶의 방식이 좋았다.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하염없이 햇살바라기를 하기도 하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며 몇십 년은 한자리에서 가게를 지켰을 레스토랑 주인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끼워 넣은 돌들이 가지런히 깔려 있는 하워스의 옛길을 걸어가며 그토록 짧은 생을 살면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브론테 자매의 열정을 생각했다.

제인 에어의 결혼증명서.
제인 에어의 결혼증명서.

영국에서 가장 복잡한 대도시 런던에서 상업과 쇼핑의 도시 리즈를 거쳐, 증기기관차가 오가는 키슬리와 하워스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나는 ‘도시의 삶에서 우리가 얻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의 대차대조표를 그려 보았다. 나 또한 대도시에서 살지만 소도시의 매력에 이끌려 무작정 길을 떠나기도 하고, 시골마을의 매력에 사로잡혀 갑자기 짐을 싸기도 한다. 이런 끊임없는 역마살의 뿌리에는 ‘지금 이 도시의 삶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내 안의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브론테 자매는 반대로 도시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는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고, 때로는 더 넓은 세계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신열에 들뜨기도 했을 것이다.

브론테 자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더 넓은 세상, 알 수 없는 바깥세상과의 교신이자 소통이었다. 그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내딛는 간절한 발걸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외딴 시골에서 이토록 위대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까’라고 질문하지만, 실은 바로 이런 외딴 시골이었기에 더욱 간절한 목마름으로, 도시의 시끌벅적함과 냉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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