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총 13명의 승객이 용의선상에 오릅니다. 그리고 콧수염이 매력적인 사설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나타나서 기가 막힌 추리 실력으로 진범을 찾아냅니다.

영화 속에서 멋진 활약을 펼친 에르큘 포와로와 같은 탐정은 아쉽게도 한국에서 활동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사설탐정 활동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호 커버스토리로 ‘흥신소 일주일 체험기’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흥신소를 찾는지, 또 흥신소 사람들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흥신소 직원들은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스’ ‘에르큘 포와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은 콧수염과 파이프담배 대신 각종 첨단장비들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흥신소 직원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설탐정에 대한 논의를 1998년 15대 국회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벌써 2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법안은 매번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에 발의된 공인탐정업법도 지금까지 표류 중입니다. 이 때문에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사설탐정이 없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사설탐정산업을 국가산업의 한 축으로 발전시키고 있는데 말이죠. 직접 흥신소 직원이 돼 보니 선진국들이 왜 사설탐정산업을 국가산업으로 육성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사건에는 경중(輕重)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경찰이 모든 세세한 일까지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흥신소는 실종·불륜·사실관계 확인 등 다양한 일을 해결해주고 있었습니다. 흥신소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이제 흥신소를 음지에서 양지로 꺼낼 때가 온 건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경찰의 치안유지나 범죄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물론 탐정제도 합법화 추진에서 넘어야 할 장애물은 사생활 침해입니다. 가뜩이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한 한국에서 사설탐정업 도입은 시기상조란 것이죠. 기사의 댓글창에는 사설탐정 합법 여부를 놓고 찬반 입장이 갈렸습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댓글이 한 개 있었습니다.

“합법화에 찬성한다. 다만 사설탐정이 할 수 있는 영역·권리·의무를 명시하고 감시하는 기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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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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