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산맥 남쪽 기슭, 평균 해발고도 395m의 깊은 산속에 보덴호(Bodensee)가 있다. 길이 63㎞, 폭 14㎞,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이 호수의 남동쪽 끝, 수심이 가장 얕고 잔잔한 쪽에 오스트리아의 작은 산골 마을 브레겐츠가 자리 잡았다. 독일·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한 인구 3만여명의 자그마한 이 산속 호반도시를 찾아간 것은 7~8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서였다.
뮌헨에서 서쪽으로 192㎞. 양쪽으로 너른 옥수수밭이 펼쳐진 96번 아우토반을 1시간 반쯤 달려 브레겐츠에 도착했다. 페스티벌 깃발을 따라가니 카지노와 페스티벌 극장이 나란히 방문객을 반긴다. 공연은 저녁 9시15분 시작하는데, 6시가 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 주변 카페와 간이식당을 꽉 채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와인과 맥주와 커피를 들고 공연을 기다리는 표정이 밝다. 올해 공연작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호반에 무대를 설치한 축제 극장에 들어서니 거대한 두 손이 카드를 펼쳐든 거대한 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카르멘을 상징하는 두 손은 붉은 매니큐어가 벗겨져 있다. 퇴락한 여성, 불운한 운명의 꼬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입장권을 뒤늦게 구입한 바람에 무대 왼쪽 앞에서 다섯째 줄 좌석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좋다. 무대 자락에 출렁이는 물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아름다운 석양, 밤하늘의 별빛”을 자랑하지만, 내가 간 날은 안타깝게도 공연 직전까지 부슬비가 내렸다. 호수 건너편 독일 땅 린다우에서 온 마지막 배가 관객을 부려놓자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는 대담하고 혁신적이다. 오페라 공연이 ‘당연하게’ 요구하는 관습을 다 깼다. 첫째, 가수들과 오케스트라 연주가 모두 마이크를 쓴다. 비엔나 심포니가 페스티벌 상주 오케스트라로, 잔향(殘響)을 최소화한 뛰어난 기술을 통해 최상의 예술을 실현하고 있다. 둘째, 무대 전환이 없다. 서곡부터 막이 내리기까지 모두 한 무대를 쓴다. 마지막으로,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스턴트가 공연 내내 등장하여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이 세 가지 특성은 호수 위 야외 공연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되었지만, 브레겐츠 호반 무대의 오페라들은 초현실적 무대장치와 역동적인 연출을 통해 오페라를 당대의 ‘대중예술’로 새롭게 만들어냈다.
관객들을 가장 매혹시키는 것은 시각적 스펙터클이다. 호수 위 무대에서는 무대장치의 변환이 어렵다. 그래서 거대하고 과장된 디자인을 내세워 시선을 붙잡는다. 영화 007시리즈 중 ‘퀀텀 오브 솔라스’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이 브레겐츠 페스티벌 중 ‘토스카’ 공연이었다. 커다란 눈동자만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올해 ‘카르멘’ 무대 높이는 24m. 카드 한 장의 높이가 7m다. 바닥에도 28개가 흩뿌려져 있다. 두 손을 합친 무게는 40t이 넘는다. 카드는 영상을 담은 스크린으로 공연 내내 다채롭게 활용되었다.
밤 11시30분. 공연이 끝났다. 비운의 카르멘과 돈 호세가 호수 물에 발을 적신 채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흥분이 가시지 않은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응답했다. 관객을 태우고 온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주차장을 떠났다. 독일 번호판이 가장 많지만 폴란드 번호판, 네덜란드 번호판도 눈에 띄었다. 본래 브레겐츠는 독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조그만 호숫가 휴양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지난 번 소개했던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영국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한 호반 무대 음악회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지선 두 대를 띄우고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소박한 수준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콘크리트 구조물로 무대를 만들어 대형 오페라 작품을 2년간 공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무대의 가로 폭은 30m가 넘고, 부채꼴로 설치된 객석은 7000석.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2300석이니, 3배가 넘는 규모다. 그런데 이 좌석이 매진이다. 30회 이상 공연하니 20만명 넘게 오는 셈이다. 홀수 해에 새 작품을 올려 이듬해까지 같은 레퍼토리를 공연한다.
최근에는 호반 무대뿐 아니라 시내 페스티벌 극장의 실내 오페라 공연도 함께 이어진다. 올해는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를 공연했다. 오페라 관람료는 일반 좌석 기준 최고 130유로에서 최저 70유로로 오페라 페스티벌 중에는 저렴한 편이다. 2018년 일정은 7월 18일부터 8월 19일까지. 홈페이지(https://bregenzerfestspiele.com/en)에서 예매할 수 있다.
음악도시 잘츠부르크는 해마다 7~8월이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뜨거운 열기를 뿜는다. 지난 여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미라벨공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의 일곱 남매가 커튼 뜯어 만든 옷을 입고 ‘도레미송’을 부르며 뛰어다니던 곳이다. 미라벨공원 바로 옆 모차르테움 음악원의 크고작은 극장에서는 오전부터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올해 페스티벌은 7월 21일부터 8월 30일까지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 모차르트 하우스(Haus f r Mozart),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대령 가족이 달아나기 전 마지막으로 공연했던 암벽 극장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 등에서 진행되었다. 모차르트작 ‘티토 황제의 자비’와 쇼스타코비치의 ‘므젠스크의 맥베스 부인’, 베르디의 ‘아이다’, 알반 베르그의 ‘보체크’ 등 오페라 10편과 모차르트 음악회, 연극 공연 등 6주간 수백 개의 무대가 펼쳐졌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간판은 세계 최상급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이들은 휴양과 관광도시인 잘츠부르크의 여름을 ‘클래식 음악의 낙원’으로 만든다. 여기에 더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와 성악가들 역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꽃이다. 지난 여름 ‘아이다’의 주역으로는 현재 세계 최고의 인기 소프라노로 불리는 안나 네트렙코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