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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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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기행]‘모나리자’ 건너편 ‘가나의 결혼식’ 예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글·사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파리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룸에 걸려 있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1층 6호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걸려 있다. 파리에 들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 갔을 명소일 듯하다. 필자 역시 파리에 가면 반드시 찾는 곳이다. 필자가 모나리자룸에 들르는 이유는 다른 관람객들과 조금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인 ‘모나리자’ 때문만이 아니다. 루브르박물관 바깥에서부터 시작되는 장사진을 견디며 모나리자룸으로 향하는 이유는 모나리자룸에 걸린 다른 명화를 보기 위해서다. 별난 척하는 느낌이 들지 모르겠지만 ‘감히’ 모나리자를 멀리할 이유는 없다. ‘모나리자’를 대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모나리자’는 가로 53㎝, 세로 76㎝의 그림이다. 결코 크지 않은 유화다. 세계 최고의 유명세를 증명하듯 그림은 관객들과 3m 안전 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경비원의 감시 속에서 상당히 떨어져서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 ‘모나리자’를 찾는 관람객은 연간 600만명 정도이다. 대략 하루에 2만명꼴이다. 루브르박물관은 1주일에 6일,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문을 연다. 산술적으로 볼 때 1시간에 약 2000명, 1분에 33명이 ‘모나리자’를 감상한다는 얘기다. 작은 그림을 3m 밖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전 세계 관람객들과 함께 봐야 한다. 감상하고 느낄 만한 여유 시간과 공간이 없다. 결국 17초라는 계산까지 나왔다. 프랑스 한 예술단체가 조사한 1인당 평균 ‘모나리자’ 감상 시간이다. ‘모나리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시간도 누가 계산해 봤다. 1인당 5분으로 17초보다 훨씬 길다.
   
   운 좋게 ‘모나리자’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을 ‘장시간’ 확보했다고 치자. 그래봤자 그림 보호를 위한 유리벽만이 눈에 들어온다. 빛의 반사 때문에 보는 각도마다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유화의 특징이다. 유리벽을 통해 그림을 봐서는 신비한 미소는커녕 ‘모나리자’ 얼굴 형태도 알아보기 어렵다. 거기다가 주변의 숱한 관람객들이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모나리자룸에 가더라도 ‘모나리자’를 멀리서 대충 둘러볼 수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이렇다.
   
   

   모나리자룸의 다른 명화들
   
   모나리자룸에는 52개의 다른 명화도 걸려 있다. 전부 유화이고 이탈리아 명화다.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16세기 그림이 대부분이다. 500여년 전 베네치아의 역사와 영광을 티치아노(Tiziano), 틴토레토(Tintoretto), 로토(Lotto), 야코포 바사노(Jacopo Bassano) 같은 거장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모나리자’ 명성에 가려 놓치기 십상이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세계미술사에 남을 명작들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미’의 탄생 무대가 16세기 베네치아다. 굳이 비교하자면 2500년 전 고대 그리스만이 필적할 수 있을 뿐, 그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전대미문의 예술적 현장이 당시의 베네치아다. 비잔틴 대제국과 뒤이은 오스만투르크와의 독점무역, 십자군전쟁의 병참기지 등 베네치아는 거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를 기반으로 예술을 창조했다. 가난은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원천이지만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은 풍요의 산물이다.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의 그림 ‘가나의 결혼식(Les Noces de Cana)’은 필자가 모나리자룸에 반드시 들르는 가장 큰 이유다. 사실 개인적 호감도 측면에서 ‘모나리자’는 ‘가나의 결혼식’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니, 루브르 전체를 통틀어 ‘가나의 결혼식’만 한 작품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정확히 10년 전인 2008년 겨울이다. ‘모나리자’가 모나리자룸이란 이름의 특설전시장 중앙에 들어선 지 4년째 되던 해였다. 이때 처음으로 ‘가나의 결혼식’을 이해하게 됐다. 감동은 이해를 통해 확대 확산된다. ‘가나의 결혼식’은 루브르행이 시작됐던 1994년 이래 수시로 접했던 그림이다. 좋아하던 화가인 베로네세의 작품인 데다 원래부터 유명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가로 990㎝, 세로 666㎝에 이르는 초대형 그림이다. 천하의 어용(御用) 화가 자크 다비드(Jacques David)가 그린 ‘나폴레옹1세 대관식’이 루브르 최대 그림인데 크기 면에서 ‘가나의 결혼식’은 루브르 2위다.
   
   ‘가나의 결혼식’에 대한 이해와 감동은 그림이 걸려 있는 위치에서 시작된다. ‘모나리자’ 반대편 벽에 걸린 그림이 130명의 초대객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 유화, ‘가나의 결혼식’이다. 예수의 고향인 이스라엘 풍경이나 의상과는 무관한, 16세기 베네치아의 모습을 담은 일종의 풍속화 같은 그림이다. ‘모나리자’에 몰린 글로벌 팬들의 열기는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나리자’ 정반대편 벽에 걸린 ‘가나의 결혼식’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관람객들의 무관심이 반갑다. 예술은 독점하는 데서 그 의미를 한층 더 절감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공유’가 대세지만, 예술은 논외로 하고 싶다. 명화나 조각품 앞에 누군가가 있다면 나중에 아무도 없을 때 다시 찾아와 관람하는 것이 좋다. 미(美)와 예(藝)는 스스로와의 대화, 즉 독백과 사색의 대상이다.
   
   
▲ ‘가나의 결혼식’이 본래 걸려 있던 베네치아 산 조르지오 교회.

   예수의 시선과 입 모양에 감춰진 비밀
   
   ‘가나의 결혼식’에 감춰진 ‘코드’에 대한 관심과 해석은 그 같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얻은 부산물이었다. ‘가나의 결혼식’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2장1~11절에 나오는 얘기를 근거로 삼은 그림이다. 갈릴리 지방에 머물던 예수는 가나에서 벌어지는 결혼식에 초대된다. 어머니 마리아도 동행한다. ‘가나의 결혼식’ 한가운데는 예수가 그려져 있다. 예수 오른쪽에는 마리아가 앉아 있다. 보통 성화에서 좌는 악, 우가 선이다. 하객들이 넘쳐나서 포도주가 동이 나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마리아가 예수에게 사정을 알린다. 베로네세의 그림은 그 순간 예수와 하객들의 반응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가 “이뤄졌다(Done)”고 말하는 순간 주변에서 함성이 터진다. 텅 빈 항아리에 다시 포도주가 넘친다. 예수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피라고 말하면서 나눠준 포도주가 예수 기적의 시발점이다.
   
   ‘가나의 결혼식’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예수의 입이다. 예수가 “이뤄졌다”고 말하는 순간을 베로네세는 과연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까. ‘가나의 결혼식’에는 모나리자와 같은 안전 라인이 없다. 관심 밖의 그림이기에 경쟁자 없이 아주 가까이 다가가 유화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 예수의 입이 살짝 열린 상태로 그려져 있다. 130명의 하객 가운데 입을 연 채 뭔가 말하는 인물은 예수 혼자뿐이다. 예수를 빼고는 129명 모두의 입이 굳게 닫혀 있다.
   
   ‘가나의 결혼식’과 관련된 코드는 예수의 입을 살피는 동안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예수의 시선이 코드의 핵심이다. 예수가 정좌한 상태에서 시선을 그림 한가운데로 투영하고 있다. 직선으로 꽂히는 시선을 관찰하면서 주변을 살피던 순간, 전율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가 반대편 ‘모나리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와 예수와의 거리는 약 20m 정도다. 양쪽을 오가며 살펴봤지만, 예수의 눈높이는 모나리자에 비해 2m 정도 높다. 20m 거리를 사이에 두고, 2m 높이에 선 예수가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응시한다. 예수의 일직선 눈동자에 모나리자가 전부 녹아 들어가 있다. 신비하고도 흥미롭다. ‘모나리자’의 최고 열성팬은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1년 365일 ‘모나리자’를 쳐다보는, 바로 예수다.
   
   큐레이터는 무슨 메시지를 던지려고 한 걸까?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미’라 선포하는 것일까. 필자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여성이 가진 원죄에 대한 용서’가 예수의 시선의 배경이 아닐까 싶다. 기독교 서방세계에서의 여성은 약자인 동시에 원죄의 대명사다. 예수의 여성에 대한 사랑(박애)은 다른 종교와 확연히 다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여성의 원죄에 대한 용서가, 예수가 던지는 시선의 의미로 보였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어머니로서의 여성, 예수의 정면에는 미와 예술로서의 여성, 예수가 참석한 결혼식 축하연에는 신부로서의 여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사흘 만에 부활했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한 인물도 여성인 막달라 마리아다. 미술관의 수준은 얼마나 많은 작품이나 유물을 갖고 있느냐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작품을 독자적 창조적 관점에 의거해 설명하고 배치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나리자’와 ‘가나의 결혼식’을 마주 보게 배치한 큐레이터의 발상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인 시투(In Situ)’는 고고학이나 예술계에서 통용되는 ‘원래의 현장’이란 의미다. 유물이나 예술작품을 원래 있던 장소나 환경 속에서 연구 관찰한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고고학자나 예술 전문가들은 ‘인 시투’를 통할 경우 원래 의미나 가치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유물이나 작품을 주변환경을 통해 총체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미라를 피라미드 지하실에서 보면서 연구하는 식이다. 성화의 경우 원래 걸려 있던 교회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성스럽게 느껴진다. 관음상이나 예수의 그림은 원래 어디에 어떤 식으로 배치돼 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살펴보는 것이 좋다. 큐레이터의 해박하고도 참신한 발상에 기초한 현대의 전시도 중요하지만 원칙대로 한다면 ‘인 시투’, 즉 원래 장소나 공간에서의 관람이 한층 더 의미 있다.
   
   
▲ 산 조르지오 교회 수도원 식당에 걸려 있는 ‘가나의 결혼식’ 모작.

   본래의 자리를 찾아 베네치아로 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조르지오(San Giorgio) 교회를 찾은 것도 ‘인 시투’ 때문이었다. 루브르에서 봤던 ‘가나의 결혼식’이 원래 어떤 곳에 어떻게 걸려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산 조르지오 교회 바로 옆 수도원이 가나의 결혼식의 원적지다. 1591년 이 그림이 완성된 후 1797년까지 200년 넘게 수도원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베네치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전리품으로 뺏어가 버렸다. 그림이 너무 커서 몇 부분으로 잘라서 들고 갔다고 한다. 당시 나폴레옹은 산 마르코 광장의 상징인 네 마리의 청동 기마상도 훔쳐갔다. 이탈리아 정부가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했다. 결국 청동 기마상은 돌아왔지만, ‘가나의 결혼식’은 아직 모나리자룸에 있다.
   
   산 조르지오 교회는 베네치아 산 마르코 맞은편에 있다. 바다에서 200m 떨어진 작은 섬이 산 조르지오 교회, 즉 ‘가나의 결혼식’이 원래 걸렸던 곳이다. 과연 예수는 어디를 응시하고 있었을까. 베로네세의 명작을 품었던 공간과 건물은 어떤 모습일까. 산 마르코 광장에서 두 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섬에 도착했다. 수도원은 주말에 한해 1시간 정도의 내부 투어를 허락한다. 오후 3시 영어 투어 참가자는 필자 혼자다. 대학생 안내원과 함께 철창문을 열고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정적만이 감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코끝을 맴돈다. 수도원은 나폴레옹 실각 후 합스부르크제국 군대가 점령하는 기구한 역사를 겪었다고 한다. 제국의 군대가 막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수도원 안 식당을 둘러보는 것은 주말투어의 하이라이트다. ‘가나의 결혼식’은 현재 모나리자룸에 있지만 똑같이 베낀 그림이 이 수도원 식당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부터 걸려 있는 이 모작은 스페인 전문회사 팍툼 아르테(Factum Arte)가 그렸다. 루브르의 진짜 그림을 3개월에 걸쳐 정밀 분석한 뒤 그렸다고 한다. 너그럽게도 루브르가 모사를 허락한 것은 이탈리아의 반환요구를 불식시켜 보자는 의도 아니었을까.
   
   바깥에서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멀리 벽에 걸려 있는 ‘가나의 결혼식’이 보인다. 여백 없이, 벽 한 면에 그림이 들어선 느낌이다. 꽉 차 있다고나 할까? 언뜻 보면 진위 여부를 알기 어렵다. 컴퓨터로 색상과 재질을 전부 분석해 120% 클론화했다고 한다. 모나리자룸보다 5m 위에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한다. 수도원에 있는 ‘가나의 결혼식’이 관람객들로부터 한층 더 ‘경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까이에서 즐기는 그림이 아니라 거리를 두면서 숭배되는 존재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예수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아들이다.
   
   16세기 당시 수도사들은 이 식당에서 식사를 했을 것이다. 가운데는 비워둔 ‘ㄷ’ 자 배치로 식탁이 놓여 있다. 따라서 높은 벽에 걸린 ‘가나의 결혼식’은 수도사들의 식사를 지켜보는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투어 안내원도 “예수의 시선이 수도사를 응시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예수의 시선이 100여명에 달했던 수도사만이 아니라 좀 더 높고 깊고 넓은 곳으로 향했으리라 믿는다. 예수를 믿고 따르며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다. 사랑을 믿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의 시선이 바로 ‘가나의 결혼식’이 원래의 자리에서 던지는 메시지다. ‘모나리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를 통해 아름다운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예수의 시선도 항상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브르 모나리자룸과 베네치아 산 조르지오 교회는 그 같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인 시투’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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