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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버이날] 쌈밥집 아줌마의 행복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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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56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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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쌈밥집 아줌마의 행복 레시피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 이수영 ‘쌈밥집의 풍경’. 80×100㎝. 장지에 채색. 2012
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내게는 이질녀가 되는 조카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자신의 엄마 손을 꼭 잡더니 이렇게 속삭였다. “엄마, 나를 낳아서 지금까지 길러줘서 고마워요. 엄마의 딸이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엄마 사랑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언니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조카가 엄마 귀에 대고 한 고백이야말로 평생 고생만 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언니의 일생을 보상하는 것 같았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는 ‘유자음(游子吟)’에서 “한 치의 풀과 같은 자식의 마음을 가지고서, 봄날의 햇볕 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보답하기 어려워라”라고 했지만 자식이 한 치의 풀과 같은 마음만 내비쳐도 한없이 행복해하는 존재가 어머니다. 물론 언니와 조카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 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딸과의 갈등으로 인해 힘든 심정을 하소연할 때도 있었다. 조카도 내게 전화를 해 엄마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을 때도 있었다. 어느 쪽 이야기를 듣더라도 나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남남 사이가 아니라 엄마와 딸의 관계이기 때문에 감정의 굴곡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론 야속하고 때론 섭섭한 그 모든 순간들이 쌓여 모녀지간의 유대감이 생기는 법이다. 그 감정의 끝에서 비로소 화해하고 눈물 흘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이다.
   
   
   자발적으로 여인에서 어머니 되기
   
   규모로 봐서는 조그마한 동네 골목식당 같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다. 그 가게 중에는 서민들이 큰맘 먹고 외식하러 갈 때 찾게 되는 아구찜과 쌈밥정식을 파는 식당도 있다. 그 식당에서 파란 앞치마를 두른 아낙네가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오로지 일하는 데 몰입해 있다. 아구탕에 들어갈 콩나물을 다듬거나 무를 썰고 있을 것이다. 난로 위에 얹은 누런 주전자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계절은 아마도 겨울일 것이다. 가게 내부에는 여느 집 식당과 마찬가지로 달력과 시계와 물컵이 구비되어 있고 잡다한 재료를 넣어두는 장식장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젊은 작가 이수영이 그린 ‘쌈밥집의 풍경’은 우리 시대의 풍속화다. 이수영은 다소 평면적인 화면을 파스텔톤으로 정리한 다음 그 안에 소박하지만 정감 어린 풍경을 그렸다. ‘쌈밥집의 풍경’은 누가 봐도 금세 공감이 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벽에 걸린 달력에는 연지곤지를 찍고 원삼족두리를 한 새색시가 눈을 활짝 뜨고 빙그레 웃고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색시의 모습은 아줌마가 되어 주방일을 하는 아낙네와 대조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줌마였을 것 같은 쌈밥집 주방의 아낙네도 달력 속의 새색시처럼 곱고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고운 여인이 드센 아줌마가 되어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식을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야 할 엄마이기 때문이다. 언니 또한 쌈밥집의 아낙네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해서 자식들을 길렀다. 남편과 일찍 사별했으니 두 사람의 몫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의 눈에도 그 삶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언니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신한평(申漢枰·1735~1809)이 그린 ‘자모육아’는 이수영의 ‘쌈밥집의 풍경’만큼이나 쉽게 공감되는 작품이다. 어머니가 젖을 빨고 있는 아기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 곁에는 다소곳이 앉아 있는 계집아이와 눈을 비비고 서 있는 사내아이가 있다.
   
   신윤복(申潤福)의 아버지인 신한평은 영정조 시대의 화원화가로 인물화와 화조화를 잘 그렸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신윤복이 당시 한양의 한량과 기생들을 선명한 색채로 세련되게 표현했다면 신한평의 ‘자모육아’는 그 반대다. 배경은 전부 생략되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이 걸친 입성만으로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자혜로움으로 가득하다. 그 자혜로움이야말로 자식 앞에 닥쳐오는 그 어떤 장애도 전부 걷어낼 수 있는 힘이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 신한평 ‘자모육아’. 23.5×31㎝. 종이에 연한색. 18세기

   효도와 불효 사이
   
   자식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존재다. 그런 사랑을 전폭적으로 받았으니 그 사랑을 잊어버린다면 ‘금수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겼다. 조선시대에 삼강오륜을 강조한 것도 그 안에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효(孝)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왕이 중심이 된 군주제사회에서 충(忠)을 가장 우선했지만 충과 효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충효는 조선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고 이 원칙을 어긴 강상죄(綱常罪)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였다.
   
   조선시대는 배불숭유(排佛崇儒)가 국가의 기본이념이었지만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을 여러 차례 간행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님의 은혜가 매우 크고 깊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다. 정조는 ‘부모은중경’에 그림을 곁들인 ‘부모은중경도’를 간행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를 효과적으로 인식하게 했다. 정조의 명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가 밑그림을 그려 한층 예술성이 돋보인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의 ‘어머니의 마음’도 ‘부모은중경’이 그 모태다. 조선왕조 기간 내내 효는 인륜을 실천하는 기본강령으로 중요시되어 그 가치관은 글과 그림을 통해 전파되었다. ‘이륜행실도’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등이 지속적으로 간행된 것도 그런 분위기를 입증한다. 나라에서는 이런 유교의 가르침을 잘 지켜 ‘타의 모범이 된 사람들’을 선발해 상을 내리고 격려하면서 효를 실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다 보니 지금 보면 엽기적이라 할 수 있는 부작용도 속출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자해(自害)’ 수준의 효행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명종 16년 신유(1561) 윤 5월 21일에 서막동이라는 사람은 팔순이 된 노모가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던 중 기절하자 ‘손가락을 끊어 불에 태워 물에 타 먹이니’ 한참 만에 다시 살아났는데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고 적혀 있다. 허수는 어머니가 흉복통을 앓아 백약이 무효였는데 병세가 급박해져 기절하자 역시 ‘손가락을 끊어 불에 태워 약에 타서 먹이니’ 어머니가 즉시 소생하였다. 울진 사람 이개미치는 어머니가 광병과 학질이 발작해서, 울진의 관노인 김석은 아버지가 열병을 앓아서, 하동 사람 강씨는 아버지가 광질을 앓아서 손가락을 끊어 약으로 먹였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제법 많은 자식들이 가망 없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끊어내는 단지(斷指) 행렬에 합류했다. 심지어 이천 사람 김인복은 어머니가 흉복통을 앓자 ‘자신의 오른쪽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 어머니를 소생시켰다.
   
   이런 신체훼손의 풍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에 호남에 살았던 실학자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1727~1798)는 ‘존재집’에서 ‘단지 신드롬’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요즘 세상에 어버이를 섬길 줄 아는 사람은 백에 한둘인데 손가락을 자르고 허벅지를 베는 사람이 거의 열에 다섯이나 된다는 사실이 괴이하다.’ 그러면서 그는 자르고 벤 뒤에 얼토당토않게 ‘효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자들이 있으니 세상 습속이 몰락해가는 풍조를 보면 실로 긴 한숨만 나온다’고 한탄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조선시대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했던 것은 아니다. 인륜을 중시하고 충효를 강조한 조선시대에도 자식이 부모에게 상해를 입히는 ‘막장 드라마’는 있었다. 중종 10년 을해년(1515) 2월 6일에는 전라도 낙안군에서 이막동이라는 자가 사소한 일로 다투고 싸우다 친어머니와 아우는 물론 조카딸까지 죽이는 변괴가 발생했다. 이막동 사건이 발생한 2년 후인 중종 12년 정축(1517) 윤 12월 14일에는 밀양 사람이 아비를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중종 18년 계미(1523) 4월 20일에는 실구지라는 사람이 그 어머니를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헌부에서는 강상죄를 범한 극악무도한 죄인들의 목을 베었고 그들이 살던 고을을 강등하여 현(縣)으로 만들어버렸다.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인가
   
   이수영의 ‘쌈밥집의 풍경’과 신한평의 ‘자모육아’에는 여성이 짊어져야 할 가사노동의 무게와 육아의 부담감이 담겨 있다. 그만큼 자식은 부모에게 큰 짐이다. 짐도 보통 짐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다. 그런데도 부모는 그 짐을 기꺼이 짊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짐이야말로 부모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 때문에 산다. 목숨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고비를 맞이할 때 자식이 있는 부모는 쉽게 몸을 던지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에게 그 어떤 칼로도 끊어낼 수 없는 단단한 목숨줄이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으니까 자식을 낳지 않겠다며 지레 겁을 먹을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식을 낳아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또다시 나에게 인생이 주어진다 해도 주저하지 않고 엄마가 될 것이라고. 엄마로 사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니 조카의 슬픔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슬픔 중에 최고의 슬픔은 살아서 이별하는 것’이라고 적었듯이 죽음은 그 어떤 만남의 기회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고의 슬픔이다. 이 글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엄마를 떠나보내던 조카의 모습이 계기가 되어 엄마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나 또한 두 아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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