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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59호] 2019.05.27

자전거 유럽일주 여대생의 당찬 실험

▲ 박영아씨가 유럽을 일주하면서 휴대했던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태극기에는 각국에서 만난 이들이 적은 격려 인사가 빼곡하다.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홀로 7개월간 유럽 18개국 1만3000여㎞를 자전거로 여행한 20대 여대생이 있다. 인덕대 시각디자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영아(23)씨 얘기다. 박씨는 지난해 6월 24일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 독일 베를린부터 모로코 카사블랑카까지 혼자 자전거로 여행했다.
   
   박씨가 세계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마음먹은 건 아주 어릴 때부터다. 세 살 때 그의 어머니가 방에 놓아준 골판지 상자가 그에게는 아마존이고 세렝게티였다. 상자에 들어가 담요를 덮고 과자와 귤을 까먹으면서 언젠가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입시 전쟁에 치여 잊혀가던 그의 모험심이 되살아난 건 대학교에 입학한 뒤였다. 자유로운 대학 생활이 시작되면서 어릴 적 기억이 돌아왔다. 처음 생각한 건 미국.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라는 점이 걸렸다. 영어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다음 후보는 유럽이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보다는 외국어로 쓰는 이들과 어울리는 게 나아 보이기도 했다. 저가항공과 때때로 뜨는 인터넷 특가를 이용하면 비용도 크게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EU로 묶인 나라들은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 요소였다. 그에게 유럽 여행은 처음이었다.
   
   “일반 배낭여행객들처럼 가기엔 돈도 없었고, 뭔가 특별하게 가보고 싶었어요. 처음엔 무전여행을 갈까 했는데 그것도 많이들 도전해 봤을 것 같고. 더 특별한 걸 찾다가 마침 집에 자전거가 있는데 이걸 타고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박씨는 어려서부터 체력이 좋았다. 5살 무렵부터 부모님을 따라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동네 뒷산을 올랐다. 조기교육 덕분인지 중·고등학교 때 박씨의 취미는 마라톤이었다. 하지만 장거리를 지나치게 자주 뛰다 보니 무릎 연골에 무리가 왔다. 병원을 찾은 박씨에게 의사가 권해준 운동은 자전거.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먼 거리를 다니면서 심폐지구력을 기를 수 있었다. 그가 자전거로 유럽 일주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다.
   
   박씨는 자전거 유럽 일주를 하기 전, 국내에서 자체 훈련을 했다. 훈련 코스는 서울에서 전주까지 약 250㎞를 하루에 주파하는 것. 아침 7시에 출발해 4대강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니 오후 7시에 전주에 도착했다. 짐도 없고 몸이 가벼워 새벽부터 밤까지 달리면 대략 하루 200㎞ 이상을 달릴 수 있었다. 고산지대 훈련 차 대관령도 자전거로 다녀왔다.
   
   
▲ 박영아씨가 7개월간 자전거로 달린 지역을 표시한 구글맵 지도. photo 박영아

   산·돌길 하루 평균 100㎞ 주파
   
   국내를 돌며 사전 훈련을 한 결과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그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출발 전에 로드바이크도 새로 장만했다. 처음 정한 목표는 3개월간 하루 평균 100㎞를 달리는 것이었다.
   
   마침내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면서 출발 장소로 정한 곳은 독일 베를린. 이후 각국의 자전거 길을 주로 달리면서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슬로바키아, 헝가리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등 각국 대도시를 거쳤다. 동유럽권의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를 거쳐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이후에는 스위스, 프랑스를 거쳐 영국 런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찍고 다시 내려와 이베리아반도로 향했다. 새해는 포르투갈 남부에서 맞았다.
   
   박씨가 유럽 전역을 달리면서 주파한 거리는 하루 평균 100㎞에 달한다. 오르막길이 계속 나올 땐 하루 60㎞, 평지만 계속 나오면 180㎞를 달릴 때도 있었다. 평균 100㎞는 거의 채웠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진짜 힘들긴 힘들어요. 다니면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하루 50~60㎞ 정도를 달린다고 했죠. 제가 100㎞를 달린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박씨가 무리를 하면서도 빠르게 달린 이유는 처음 일정을 3개월로 잡았기 때문이다. 일단 빨리 돌아서 최대한 많은 곳들을 다녀보자는 계획이었다. “이게 나중엔 습관이 돼서 하루에 100㎞를 달리지 않으면 숙제를 남긴 기분이었어요.”
   
   주로 텐트로 야영을 하니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다. 여름에는 옷이 얇으니 옷을 입은 채로 씻고 말렸다. 머리는 이따금 수도가 나오면 휴대용 샴푸로 감았다. 밥은 주로 들고 다니는 버너로 끓여 먹고, 잠은 텐트를 펼치고 야영하거나 대도시에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자전거를 맡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게스트하우스도 많이 갔지만 생각해보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집에 초대해줘서 간 게 더 많아요.”
   
   자전거 뒷부분에는 태양광패널을 장착했다. 해가 날 때 USB로 보조배터리를 연결하면 아주 느리게 충전됐지만 실용성은 별로 없었다. 2만암페어짜리 샤오미 대형 보조배터리 두 개면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숙소나 캠핑장에 들러 물과 전기를 충전했다.
   
   동양인 여성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니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았다. 대부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박씨를 친절히 대해줬다. 종종 이용한 ‘웜샤워’라는 자전거 여행자 전용 앱이 큰 도움이 됐다. 이 앱을 통해 방을 내놓은 집에 도착하면 주인에게 숙박료 대신 자전거 여행 경험담을 들려줬다. 집주인들과 음식을 함께 만들고, 늘 갖고 다니는 고추장, 된장으로 한국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초대받는 일이 늘었다. 자기소개에 여행한 나라를 정성 들여 쓸수록 초대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7개월 중 대부분은 자신이 갖고 다니던 텐트에서 잤지만 나머지 기간은 현지 주민들로부터 초대받은 집에서 묵었다고 한다.
   
   7개월간의 자전거 여행 동안 어려운 일도 수없이 많았다. 돌길을 달리다 보니 타이어가 펑크 나기 일쑤였고, 길이 막혀서 도는 일도 많았다. 비포장도로에 지친 나머지 한 번은 아스팔트 길을 달렸는데 처음에는 왕복 2차선 도로가 4차선이 되더니 터널이 나왔다. ‘뭔가 이상한데’ 하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경광등 불빛을 번쩍이는 순찰차가 다가왔다. 알고 보니 차량만 다닐 수 있는 고속도로에 들어온 것이었다. 한국과 달리 톨게이트가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경찰관들하고 이것저것 떠들며 얘기를 했어요. 이야기하다 보니 경찰 아저씨들이 과일도 먹으라고 주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죠. 혼자 다니다 보니 다들 호기심이 많았어요.”
   
   당시 고속도로 통행 위반 범칙금으로 박씨가 부과받은 금액은 8유로. 일반적으로 100유로 가까운 범칙금을 부여받는 이들에 비하면 거의 최소치의 벌금을 부과받은 것이다. “벌금을 깎아달라고 이야기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엄청 잘 됐어요.”
   
   
▲ 지난해 12월 5일 박영아씨가 스페인 북부 아라곤 근처를 자전거로 달리고 있다. photo 박영아

▲ 지난해 9월 박영아씨가 스위스 산 고타르도 지역을 여행하고 있다. photo 박영아

   7개월 경비 400만원
   
   슬로바키아의 한 산길에서는 돌멩이가 가득한 비포장도로를 시속 23㎞로 달리다가 핸들을 잘못 꺾어 넘어지기도 했다. 팔뒤꿈치 살이 뜯어지고 피가 쏟아졌다. 보호용 헬멧도 벗겨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지러웠다. 팔꿈치에 박힌 돌멩이는 바늘로 빼고 팔은 토시로 묶은 뒤 근처 캠핑장에 가서 쉬었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산속에서 혼자 자다 보면 늑대 울음 소리가 들려요. 한번은 새끼곰을 만났는데 서로 놀라서 도망갔어요. 만약 엄마곰이 옆에 있었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아찔하죠.”
   
   20대 동양인 여성이 혼자 유럽 전역을 다닌 만큼 남자들의 음험한 접근으로 인한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9월 초 보스니아에서 하루는 돌산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물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고 그늘도 쉴 곳도 없었다. 일사병에 걸릴 것 같은 상황에서 옆을 지나는 차가 “정상까지 태워주겠다”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운전자 옆에 타자 그는 “결혼했냐” “남자친구가 있냐” 등을 묻더니 점차 노골적인 성적 관심을 보였다. 불쾌해진 박씨가 “내려달라”고 해도 좀처럼 내려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거든요. 차에서 찬송가를 틀었어요. 추근대는 남자가 좀 경건해지라고.” 갈림길이 나오자마자 “목적지가 바뀌었다”며 급히 내렸다. 이후부터는 결혼 여부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결혼했다”거나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모로코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인 데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라 자전거 대신 버스와 차로 이동했다. 지난 1월 22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카사블랑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7개월간 총 소요 예산은 불과 400만원(비행기표 제외) 정도. 숙식을 자체 해결하고 친절한 주민들의 도움을 받은 결과다.
   
   귀국해 새 학기가 시작되자 박씨는 학과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부모님 주변 분들은 ‘여자애가 혼자 유럽 자전거 여행? 미쳤다. 한 달 안에 돌아올 것’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너라면 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이 시대의 한비야가 돼라’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박씨는 당분간 학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자전거와 함께 다시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그가 꼽은 다음 여행지는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 돌로 뒤덮인 해발 5000m의 고원이라 하루 30㎞를 가기도 버겁지만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유럽을 다니면서 친해진 친구들이죠.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번엔 제가 친구들을 도와줄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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