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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61호] 2019.06.10

뉴트로, 습판 사진을 불러내다

▲ 콜로디온 습판 방식으로 찍은 인물사진.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에 위치한 북아현동,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풍경이 바뀌고 있는 곳이다. 추계예술대학으로 향하는 북아현로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 맞은편은 언덕길을 따라 연립주택들이 빼곡하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콘크리트 연립주택들 사이에 철제대문의 목조주택 한 채가 숨어 있다. 80여년 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이다. 2층 주택의 키를 훌쩍 넘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이 집의 역사를 말해준다. 아파트가 건너다보이는 마당 밖 풍경과는 달리 집 안은 오래전 시간에 멈춰 있다. 시대극에나 나올 법한 가구와 물건들이 마치 낡은 흑백사진첩을 마주한 듯하다.
   
   이곳은 송하규(50)·염준호(44) 사진작가가 지난 3월 문을 연 사진 스튜디오 ‘아날로그룸(analog-room)’이다. 두 작가는 이곳에서 시간을 거스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콜로디온 습판, 사이아노타입, 젤라틴 실버 프린트, 폴라로이드전사, 리퀴드 라이트, 핀홀카메라 등 전통 사진기법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이다. 이 중 콜로디온 습판은 필름카메라도 나오기 전인 초창기 사진촬영 방식이다. 두 작가는 콜로디온 습판(Wet plate collodion) 방식을 우리 시대로 불러내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 전통 사진기법을 연구하고 알리고 있는 송하규(오른쪽)·염준호 사진작가.

   콜로디온 습판 사진을 아십니까?
   
   콜로디온 습판은 1851년 영국의 조각가였던 프레드릭 스코트 아처(Frederick Scott Archer)가 고안했다. 콜로디온 용액을 유리나 금속의 표면에 도포한 후 건조되기 전 촬영에서 현상까지 모든 과정을 마쳐야 한다.
   
   콜로디온 습판 사진이 완성되는 과정은 마치 마술 같다. 금속이나 유리의 표면 위에 먼저 용액을 골고루 바른다. 요즘엔 질산은 용액에 넣어 감광성을 띠게 한다. 젖은 상태에서 카메라에 넣은 후 사진을 찍는다. 이때 필름판이 빛에 반응하는 감도는 아주 약하다. 필름 카메라가 100이라면 습판의 감도는 0.7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조명 앞에 서면 뜨거울 정도로 밝은 빛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는 순간 번쩍하는 불빛과 함께 시공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상이 맺힌 필름판은 암실에서 현상, 정지, 정착, 수세, 건조의 과정을 거친다. 정착 과정에서 필름판을 흔들면 음영이 바뀌면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난다. 필름이 사진이 되는 순간이다. 복제도 불가능하고 수정도 할 수 없다. 세상에 하나뿐인 사진이다. 이렇게 사진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약 30분이 걸린다. 몇 초 만에 터치 한 번으로 원하는 사진을 얼마든지 찍어대는 디지털 시대에, 두 작가가 전통 사진기법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사진을 너무 쉽게, 많이 찍다 보니 소중함도 모르고 애착도 없습니다. 컴퓨터에 한번 들어가면 안 보잖아요. 전통 기법의 사진들은 내가 원하는 한 장을 찍기 위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 가치들을 알리고 체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송하규 작가의 말이다.
   
   대상을 솔직하고 과장 없이 보여주는 것도 콜로디온 습판의 매력이다. 염준호 작가는 “디지털 카메라는 이미 카메라 자체가 과장되게 프로그램화돼 있습니다. 파인더를 통해 보는 대상의 색감, 형태 자체가 가공된 이미지인 거죠. 그에 비하면 콜로디온 습판 사진은 주름살 하나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송 작가는 미국에서, 염 작가는 영국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세상의 변화와는 거꾸로 오래된 물건, 오래된 방식에서 가치를 찾는 두 사람이 만나 ‘아날로그룸’이 만들어졌다.
   
   두 작가는 콜로디온 습판 사진을 재현해내기 위해 숱한 실험을 거쳤다고 한다. 외국 서적을 뒤지고, 워크숍을 하고, 종로 5가에서 원료들을 구입해 실험하며 수없이 실패했다. 국내에는 가르쳐주는 곳도 없고 정확한 자료도 없었다. 처음에는 아예 상이 맺히질 않았다. 배합을 달리하며 온갖 시도를 한 끝에 4개월 만에 손톱만큼 형태가 나타났다. 온전한 상이 맺히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렇게 찾은 ‘황금비율’은 영업비밀이다.
   
   똑같은 약품, 똑같은 방식이지만 약품의 양, 시간, 기온, 또는 작업자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다른 작품이 나온다. 이들은 필름부터 시작해 모든 약품과 재료를 직접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콜로디온 습판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전통 기법의 사진 촬영은 ‘원데이클래스’ ‘워크숍’ 등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뉴트로 바람과 함께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아날로그룸’처럼 습판 사진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늘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등대사진관’은 국내 습판 사진 1호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사진을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 SBS ‘빅픽처패밀리’의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에 있는 ‘스튜디오 보통’도 습판 사진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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