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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64호]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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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런 전쟁’ 번역한 최필영 육군 소령

최준석  선임기자 jschoi@chosun.com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장관이 지난 2017년 한반도 위기 상황 속에서 읽어야 할 한국전 책이라고 추천해서 알려진 책이 있다.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제임스 매티스 전 장관은 2017년 10월 9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육군협회 행사에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미군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페렌바크의 책을 읽어 보라”고 말했다.
   
   최필영 육군 소령(국방대학교)은 당시 ‘이런 전쟁’을 번역하고 있었다. 예비역 육군 대위인 윤상용씨(현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와 함께 작업했다. 그로부터 햇수로 2년이 지났다. 6·25 발발 69주년이던 지난 6월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주간조선 회의실에서 최 소령을 만났다. 그의 앞에는 한글판 ‘이런 전쟁’이 놓여 있었다.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할 때인 2015년 초였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미국 장교의 책상 위에 ‘이런 전쟁’이 있었다. 그가 내게 책을 읽어보길 권했다. 미국인이 한국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알고 번역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는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을 한국에 소개해야 했다.”
   
   저자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는 6·25 참전용사다. 제72전차대대 소대장과 중대장으로 전투를 치렀다. 책은 1963년에 나왔다. 종전으로부터 10년 지난 시점이다. 책은 미국 시각에서 전쟁을 다룬다. 미국이 전쟁을 왜 막지 못했는지, 전쟁 초기에 왜 그렇게 패전했는지, 청천강 넘어 북진해서는 왜 중국군에 밀렸는지, 또 1951년에 시작된 정전협상에서 북한과 중국에 왜 질질 끌려다녔는지를 설명한다. 책은 큰 그림 못지않게 전투의 상세도도 잘 보여준다. 많은 군인을 만나 취재한 덕분인지 스미스부대 전투, 대전 전투, 낙동강 방어 전투가 바로 옆에서 보듯이 생생하다.
   
   저자 페렌바크는 ‘한국전은 미국에는 새로운 전쟁이었고, 그로 인해 당혹했음’을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적의 공격을 받지도 않았고 자국민의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하는 것도 아닌데 전쟁에 뛰어들었다. 1·2차 세계대전 때처럼 세계를 구한다는 성전의 정신으로 참전한 게 아니었다.”
   
   
   자신들이 로마제국인지 몰랐던 미군
   
   한국에 건너온 미군 사병들은 계속 간부들에게 따져물었다. “우리가 지금 조국을 위해 집에서 1만6000㎞나 떨어진 곳에 와서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까?”
   
   미국은 2차대전 승리 이후 자신의 바뀐 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미국은 좋든 싫든 어마어마한 강대국이 되어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로마 군단과 영국 여왕의 왕립 연대를 따라, 한국에 군대를 보냈다. 하지만 바뀐 자국의 위치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미국인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은 참전용사를 달래기 위해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전쟁 내내 미군의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력에 물건과 사치품을 보급하여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모든 노력이 이뤄졌다. PX에서는 수톤 분량의 청량음료와 초콜릿 캔디를 모든 전선으로 공급했으며, 언제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갔지만 시계, 카메라, 라디오를 면세 가격으로 팔았다.”
   
   극동사령부의 한 지휘관이 “전투 중인 병력에 이토록 호화로운 군수 지원을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페렌바크는 왜 6·25 발발을 미국이 막지 못했느냐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한반도가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다고 말한) 애치슨 국방장관이나 그의 동료들은 유럽 문제는 매우 잘 이해하고 있던 반면,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이해하는 바도 거의 없었다.”
   
   또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새로운 전쟁에 대한 대비가 안 돼 있었다. 페렌바크는 “1945년 이후로 미국은 (제국을 지키기 위해) 로마 군단과 같은 훈련된 병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1950년 중국이 개입한 이후 전쟁은 미국과 중국 간의 싸움이 되었다. 미국은 인명을 경시하는 중국군의 전투방법에 놀랐다. 병력 손실에 무신경한 중국군의 방식은 미국으로서는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당시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한반도에서 수없이 전력 손실을 입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얻은 게 있기는 있었다. 최 소령은 “중국은 참전을 통해 강국으로 떠올랐다.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밀리지 않음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군복을 입은 새로운 한국인의 탄생
   
   국군은 미군 지역을 피하고 약한 고리인 한국군 지역으로 파고드는 중국군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그러면서 성장했다. 특히 1952년 10월 한국군 9사단이 맡은 백마고지는 10월 6일부터 15일 사이에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 “고지는 수천 구의 한국군과 중국군 시신으로 뒤덮였다. 철의 삼각지 근처에 있는 백마고지와 중부전선 전투에서 한국 육군은 이제 충분히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중공군은 가급적 한국군을 타격하려 했다. 한국군이 강해지는 데는 2년이 필요했다. 성장한 한국군은 쉽게 꺾이지 않는 용기로 반격했다. 매번 중공군을 뒤로 밀어냈다.”
   
   페렌바크의 다음 문장은 오늘날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의미하는 게 있다. “한국군은 이를 통해 중국에 대한 선조들의 미신 같은 공포를 떨쳐버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페렌바크는 달라진 한국인을 이렇게도 표현한다. “1953년 봄, 예전과 다른 한국인이 나타났다. 이들은 대한민국 군복을 입었다. 소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전쟁에 나갔던 이들은 이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부하를 지휘하는 법을 배웠다. 미군과 함께 싸우며 많은 걸 배웠다. 삶이란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방식과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젠가는 그들이 아는 방법으로 갑자기 이것들을 이뤄낼 것이다.”
   
   6·25는 한국인이 계속 반복해서 들여다봐야 하는 주제다. 그런데 시중에는 관련 책이 충분히 나와 있지 않다. 최 소령은 한국군의 약한 기록 문화가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군인은 전투보고서를 작성한다. 한국군은 미국과 비교하면 매우 간략하게 쓴다. 1장 분량 이내로 만든다. 요즘도 연합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군은 매우 상세하게 작성한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그 사건의 맥락을 다 알 수 있다. 한국군의 전투상황 보고서는 나중에 역사가가 참고할 정도로 자료로서 가치가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저자인 페렌바크는 2013년 죽기 전 ‘이런 전쟁’을 포함해 18권의 역사책을 냈다. 역자인 최 소령은 1998년에 육사 54기로 임관했다. 최 소령은 이 책에 앞서 ‘디데이’ ‘수단내전’ 과 같은 전쟁사 책을 번역, 소개한 바 있다. 내년 전역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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