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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71호] 2019.08.19

로마 한가운데서 만난 파시스트 건축

▲ ‘사각형 콜로세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로마세계박람회(EUR) 건축촌의 대표적 건물 시빌타. 현재 가방 브랜드 펜디가 사용하고 있다.
이미 20년도 지난 20세기 말 이탈리아 여행 때다. 시차로 인해 새벽 일찍 일어나 나폴리 중심가를 배회하던 중 골동품 노점상들을 만났다. 아침에만 열리는 골동품 전용 시장이다. 곧바로 쓰레기장으로 가도 될 만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아내는 것이 골동품 산책의 묘미다. 운 좋게도 18세기 네덜란드 에나멜 판화 하나를 발견했다. 반 고흐 그림에 등장하는, 네덜란드 민속 모자를 쓴 여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폴리에서 발견한 파시스트 건축미
   
   골동품 노점의 무대는 큰 건물에 둘러싸인 길이 10m, 높이 20m 정도의 가파른 계단이다. 물건을 고르던 중 계단 밖 건물벽에 새겨진 큰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1936년 파시스타(Fascista)’. 건물 완공연도이다. 1936년이라면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전성기다. 파시스트의 두체(Duce), 즉 최고영도자인 베니토 무솔리니 통치 기간 중 만든 건물인 셈이다. 무솔리니 파워가 하늘을 찌를 때다. 1500여년 전 고대 로마 멸망 이후 처음으로 이탈리아 파워가 세계로 울려퍼져 나갔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역사와 정치에서 ‘무솔리니=독재자’다. 더불어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망가뜨린 인물로도 통한다. 패전 직전 히틀러에게 이탈리아 방어를 맡기면서 사실상 독일의 식민지 같은 처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독재정치가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숲속의 야만인’ 독일에 판 약골 무솔리니에 대한 분노가 한층 더 강하다. 그 같은 배경을 안다면, 파시스타라는 글자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낙서와 오물로 인해 눈을 의심했지만, 완공일이 새겨진 건물은 나폴리 중앙우체국이다. 외관을 둘러보는데 엄청난 크기가 압권이다. 1936년 이래 지금까지 현역 건물로 쓰인다고 한다. 내친김에 개장시간에 맞춰 우체국 안으로 들어가봤다. 뭐라고 표현할까. 이탈리아 최대의 인구밀집도시 한가운데서 만난 대리석 궁궐이라고나 할까. 일단 천장이 엄청 높다. 편지나 소포물을 모으는 우체국이 아니라 황제의 무도장이 한층 더 어울린다. 넓고도 깊지만, 단순하면서도 소박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교회에서 느껴지는 ‘성(聖)’, 고대 그리스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혼(魂)’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베이징 거리 곳곳의 건물에 배어 있는 ‘욕(欲)’이나, 한국 강남 아파트에서 느껴지는 ‘속(俗)’도 아니다. 굳이 한자어로 표현한다면 ‘무위(無爲)와 위(爲)’의 중간 어디쯤에 들어선 건축이라고나 할까.
   
   
▲ EUR 건물을 수놓은 이탈리아 역사 벽화. 맨 아래 말을 탄 인물이 무솔리니다.

   단순하고 담백한 엄청난 스케일의 건축
   
   인간이 가진 머리와 가슴 전부를 투입한 힘(力)에 기초한 엄청난 스케일의 건축이라는 점에서 ‘위(爲)’가 어울린다. 인간이 아닌, 그리스 신화 속의 거인 키클로페스(사이클롭스)가 만든 이(異)차원의 건축물이다. 그러나 건축물을 구성하는 요소들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단순하고도 담백하다. 금 샹들리에 같은 비싼 장식물, 르네상스 스타일의 현란한 외벽이나 창문도 없다. 고전적 건축 재료의 상징인 대리석과 유리를 중심으로 한 신중하고도 진지한 느낌의 초대형 조형물이다. 자연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살아가던 태고의 순수함이 배어 있다고나 할까. 결국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라는 말이 적격인 건축물이다. 뭔가 꽉 차 있기는 한데 막상 대면해보면 6살 어린이의 미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나폴리에서 우연히 만난 ‘파시스트 건축(Fascist Architecture)’에 대한 필자의 첫인상이다.
   
   파시스트 건축에 대한 관심은 이후 이탈리아 여행의 기본이 됐다. 가는 곳마다 의도적으로 파시스트 건축을 찾아나섰다. 생활공간으로서의 건물이 아니라 미와 예술로서의 건축이다. 이탈리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탈리아 북부로 갈수록 파시스트 건축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대로 로마를 비롯해 남쪽으로 내려갈 경우 많아진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남부에 비해 북부 지역 파시스트 건축의 미적 감각이 다소 떨어지는 듯하다. 크기도 남부가 북부보다 한층 더 크다. 남부의 경우 활용될 부지가 북부보다 풍부하다는 점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도 있다. 파시스트 건축은 북부 지식인이나 부자들이 아닌, 남부의 노동자나 빈자들을 위한 조형물로 보인다는 것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다.
   
   
▲ 나폴리 골동품 노점상과 중앙우체국.

   로마세계박람회가 열린 파시스트 건축 집단촌
   
   로마는 이탈리아 전체를 통틀어 파시스트 건축의 성지로 통한다. 로마 여행에 나선 사람치고 파시스트 건축에 눈을 주거나 우연히라도 만난 사람은 극히 드물 듯하다. 로마 중심가의 경우 아주 열심히 찾아야 파시스트 건축을 발견해낼 수 있다. 그러나 건축에 관해 무관심하더라도 누구나 탄성을 지르게 되는 파시스트 건축 집단촌이 로마 내에 존재한다. 로마 테르미니 중앙역을 기준으로 할 때 남쪽으로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EUR(Esposizione Universale Roma)이다. 로마세계박람회의 약자가 EUR이다. 1942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무대가 바로 EUR이다. 무솔리니 주도하에 추진된, 일명 E42 프로젝트에 의해 창조된 공간이다.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모습을 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전쟁 발발과 함께 무산됐다. 로마인은 물론 이탈리아인 모두에게 EUR은 무솔리니 전성기의 영광이 드리워진 회색빛 시간여행 무대이다. 박람회를 위해 창조된 수많은 파시스트 건축은 EUR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EUR 방문은 정오쯤으로 잡는 것이 좋다.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석양의 EUR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로마는 7개 언덕으로 구성된 도시다. 시내 중심가에서는 곳곳에 있는 높은 언덕으로 인해 석양을 접하기가 어렵다. EUR은 주변에 높은 언덕이 없다. 하루 종일 로마를 불태운 태양의 흔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전부 다섯 번 정도는 될 듯하지만, 최근 EUR에 들른 것은 지난 5월 중순이다. EUR 전체를 굽어보는 교회, 베드로 바울 바실리카(Basilica parrocchiale dei Santi Pietro e Paolo) 외벽에 새겨진 성화 조각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물론 EUR의 파시스트 건축물 재음미도 필수다. 베드로 바울 바실리카는 후미치노공항에서 로마 중심가로 들어갈 때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교회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천재라면 단 한 번만으로도 예술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범인의 경우 보고 읽고 느끼고 새겨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다. 필자의 주관적 체험이지만,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조각상을 구별해내고 그 가치를 알아내기까지 무려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매년 유럽과 그리스, 터키 박물관 유적지를 돌며 관찰, 음미, 공부한 뒤에야 알아낸 것이다. 평소 지론이지만 예술세계에서의 절대 미는 절대적 시간을 필요로 한다. 첫눈에 보고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첫사랑이 그러하듯 마지막까지 맺어지기가 어렵다. 오래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정치와 이념은 미에 대한 가치와 평가를 왜곡시키기 쉽다. 자칫 예술적 진가를 제대로 파악해내기 어려운 것이 파시스트 건축물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와 이념으로 덧칠을 한다 해도 진짜 예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이성은 진짜 유무를 구별해낼 수 있다. 사실 예술치고 정치와 이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극히 드물다. 넓게 보면 종교도 이념의 한 부분이다. 히틀러가 사랑했다는 이유로 악의 예술이 되고, 무솔리니가 멀리했기 때문에 명작으로 추대받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솔리니와 파시스트의 작품이지만, 많이 보고 느낄수록 미·조화·평화라는 관점에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필자가 EUR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 EUR 건축촌의 국회의사당과 물결 문양 모자이크. 무솔리니 정권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쓰였고 1960년 로마올림픽 때 펜싱경기장으로 활용됐다.

   무솔리니 시대의 국회의사당 펜싱경기장으로
   
   EUR 방문은 버스로 이뤄지는 ‘귀중한’ 여정에서 시작된다. 테르미니역 주변에서 714번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 차창을 통해 로마 유적, 교외의 상가와 주택가 풍경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이미 2000여년 전부터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진화된 곳이 로마다. 글로벌 시대 이전에 이미 구축된,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사람들을 버스에서 만날 수 있다. EUR은 버스를 타고 40분쯤 가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질서정연하게 구축된 흰색 대리석 계획도시와 큰길이 눈에 들어온다. EUR은 크게 보아, 높이 10m 정도의 마르코니 오벨리스크(Obelisco di Marconi)와 통일국가거리(Piazzale delle Nazioni Unite)를 종(縱)으로 하면서 횡(横)로는 오른쪽 국회의사당(Palazzo dei Congressi), 왼쪽 이탈리아 시빌타(Palazzo della Civiltà Italiana)로 구성된 작은 도시다. 전체면적은 가로 세로 4㎞ 정도로, 전부 돌아다니며 살펴볼 경우 반나절 정도 걸린다. 모두 웅장하면서도 소박하지만, 이탈리아 시빌타는 EUR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이다.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조형물로 2015년 이래 가방 브랜드로 유명한 펜디(Fendi)의 총본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EUR 전체가 정부 소유임을 감안하면, 기부금을 통해 장기임대했다고 볼 수 있다. 검투사의 무대였던 원형 콜로세움에 대비되는, 사각형 콜로세움(Colosseo Quadrato)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건축이 갖는 신비로운 미를 실감케 하는 명작이다. 18m 높이 언덕 위에 세워진, 전체 50m 크기의 사각형 흰색 대리석 6층 건물이다. 층마다 9개의 타원형 출구가 있다. 1층 타원형 출구의 경우 전부 고대 그리스 신들로 채워져 있다. 파시스트를 종교라 볼 때 파시스타 신자들을 위한 제단으로 활용됐을 법하다. 그러나 크리스천 교회가 보여주는 성(聖)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이성주의(Rationalism)는 사각형 콜로세움을 비롯한 파시스트 건축의 사상적 배경이다. 종교적 신비주의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건축의 구조 외관 목적이 수학·물리학과 같은 이성적 학문에 의해 분석될 수 있어야 한다. 왜 지붕 끝이 오각형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신이나 사랑이 아닌, 구체적인 숫자와 효용가치가 제시돼야만 한다는 사상체계다. 건축 하나에도 사상이 배어 있다. 형이상학적 차원의 답이라도 이성적으로 풀어내야만 한다. 고대 로마시대의 고전미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의 화려한 장식은 배제한다. 큰 규모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다목적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파시스트가 구현하는 ‘모두를 위한 하나(One for the All), 하나를 위한 모두(All for the One)’에 맞춰진 건축이다.
   
   EUR 국회의사당은 사각형 콜로세움 정반대 쪽에 들어선 건축이다. 이름 그대로 파시스트 정권하의 국민 의사결정 대회의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들이 모여 사용한 적은 한번도 없다. 비록 전쟁으로 인해 EUR을 선보일 기회는 잃었지만, 전혀 다른 이벤트를 통해 EUR 국회의사당이 세계에 전해진다. 1960년 로마올림픽 당시 펜싱종합경기장으로 활용되면서 외부에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국제박람회보다는 더 크고 권위 있는 행사지만 국회의사당이란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연(緣)이다.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다. 입구는 무려 14개의 단출한 기둥으로 장식돼 있다. 국회의사당 바로 앞마당은 물결 무늬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간단한 문양이지만 한번만 봐도 가슴에 남을 듯하다. 집단으로서의 전체주의만이 아닌 개인의 숨소리도 느낄 수 있는 체제가 이탈리아식 파시스트일지 모르겠다. 아시아식 홍위병 주도하의 하향 평등 전체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치체제다.
   
   
▲ 무솔리니 파시스트 어린이 유격대 훈련 모습.

   대공황기에 탄생한 무솔리니의 업적
   
   무솔리가 파시스트당을 통해 정권을 잡은 것은 1922년이다. 파시스트 건축은 1943년 7월 무솔리니가 최고통치자 자리에서 해임될 때까지 이어진 파시스트 업적 중 하나다. 역사에 남을 만한 크고도 위대한 건축은 고대 로마가 남긴 가장 큰 전통이자 유산이다. EUR 프로젝트가 시작된 1930년대는 전 세계 초유의 대공황기였다. 월스트리트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변하면서 전 세계 모두가 전쟁을 통한 해결책에 매진한다. 흥미롭게도 예술은 그 같은 전쟁 상황의 전위병 역할을 맡게 된다. 미국의 경우 가난한 예술가를 위한 기금이 탄생하면서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양산된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도 대공황기에 탄생한 화가 중 한 명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건축은 그 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다른 독재자나 나라와 다른 것은 예술의 원조답게, 예술미도 겸비했다는 점이다. 히틀러가 남긴 전체주의 스타일 건축은 히틀러에 관한 얘기와 더불어 전후 완전히 사라진다. 이탈리아는 다르다. 무솔리니 개인에 관한 부분은 사라지지만, 무솔리니가 남긴 건축은 그대로 살아남는다. “이탈리아는 예술이란 말과 동의어다.” 독재자 무솔리니의 말이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다. EUR은 바로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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