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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90호] 2020.01.06

페라라와 사갈라소스, 죽은 자들이 던진 질문

▲ 터키 고대도시 사갈라소스 유적지.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통 지방의 중세도시 페라라(Ferrara). 르네상스 건축물로 채워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도심의 대성당을 지나다 갑자기 폭우를 만났다. 유럽의 겨울 날씨는 예측불가다. 맞은편 건물 안으로 피해 들어갔다. 5m 높이 돔형 개방식 건물이다. 건물 안에 하늘로 오르려는 청동의 천사 입상이 세워져 있다. 특이한 것은 날개를 접은 천사란 점이다.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발견했다. 날지 못해 울부짖는 천사란 사실을 알게 됐다. 어둠에 가려진 벽에 100여장 정도의 흑백사진이 붙어 있다. 전몰자 기념관에 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족쇄에 묶인 날지 못하는 천사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사자들이다. 모두 페라라 출신이다. 1945년 4월 22일을 페라라 해방일로 포고하면서, 사진 속 인물들 모두를 자유민주주의의 투사로 찬미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독일·일본과 더불어 연합군에 맞선, 악의 축으로 불린 나라다. 그런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는 무슨 의미일까.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독일 나치 수중에 있었다. 사실상 독일 식민지라 보면 된다. 1943년 7월,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정권에서 추방된다. 히틀러는 1943년 9월, 억류된 무솔리니를 구출해 괴뢰정부 수반으로 내세운다. 이후 무솔리니는 1945년 4월 이탈리아인에 의해 처형된다. 애인과 함께 총살된 뒤 거꾸로 매달려 모두에게 공개됐다.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증오만이 아니라 나치를 위해 동포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반역행위가 단죄의 이유다. 따라서 페라라 전몰자 기념비에 새겨진 자유민주주의 투사란 표현은 나치와 파시스트에 맞선 이탈리아인이란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페라라와 같이 어느 지역을 가건 기념관과 기념비가 즐비하다. 페라라에서처럼 나치와 무솔리니에 맞선 전몰기념비도 있지만,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의 희생자, 1차·2차 세계대전 전몰자에 대한 추모관도 넘친다. 다소 큰 편인 페라라의 기념관과는 달리 교회나 주택 담벽에 지역 내 전사자 이름만 새겨넣고 화환 하나만으로 장식한 곳도 많다. 버스정류장, 공공주차장처럼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크고 화려하기보다, 작지만 지역 내 희생자와 애국자들을 쉽게 만나 기억하려는 추모의 공간이다.
   
   
▲ 이탈리아 베네통 지방의 중세도시 페라라의 전몰자 기념관에 세워져 있는 족쇄 채워진 천사상.

   망자에 대한 배려가 예의·품격의 척도
   
   인간에 대한 예의, 나아가 인간이 보여주는 품격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여러 각도에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추모하느냐가 예의와 품격을 가늠하는 나침반 중 하나다. 살아 눈앞에 있을 때만이 아니라 저세상으로 떠난 망자(亡者)에 대한 배려가 예의와 품격의 척도다. 부모·친구·스승·선배 같은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가슴속에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회상도 포함된다. 대상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억하고 배려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품격이 유지된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이다.
   
   반대로 추억하고 회상할 만한 사람이 적은 곳, 배려하고 가슴에 새길 시간이 얼마 안되는 사회일수록 척박하고 살벌한 곳이 된다. 세상을 뜨는 순간 곧바로 잊히는 허망한 사회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품격은커녕 강자 독식의 돈,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로 추락할 가능성이 많다. 망자에 대한 추억이 없다는 말은 생자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도 약하다는 의미다.
   
   선진국의 주요한 특징이자 요소지만 죽은 자에 대한 공적 차원의 배려가 남다르다. 부모나 스승만이 아니라 조직·사회·국가 차원의 추억이다. 전몰희생자 기념은 그 같은 증거 중 하나다. 페라라의 기념관 같은 곳은 유럽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품위 있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같은 개념이지만, 대규모로 한곳에 조성한 것이 아니라 지방마다 마을마다 들어서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공적 차원의 추모와 기억은 고대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유적지인 히룬(Heroon)이 대표적인 현장이다. 도시국가의 독립과 주권을 위해 싸우거나 지역 주민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모신 곳이다. 공공시설을 기준으로 할 때, 고대 그리스 도시는 어디를 가도 비슷한 구도로 건설됐다. 음악·연극을 관람할 극장(theatre)과 200m 길이의 경마용 공간인 스타디움(stadium), 시장으로 활용되는 아고라(agora)와 물건보관소이자 집단토론장인 스토아(stoa), 현지 최고 지도자가 거주하는 포르티코(portico)와 시민대표들의 회의장인 불레우테리온(bouleuterion), 작은 음악회나 공공 발표장으로 활용된 오덴(odeon)과 긴급피난처인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공공도시의 기본요소다. 고대 로마도 그리스와 비슷하지만, 규모를 한층 더 넓히고 도시의 위치도 산이 아닌 평지로 옮겼다는 점에서 다르다. 로마의 도시들에는 공중 목욕시설(bath)과 스포츠클럽인 김나지움(gymnasium)도 들어섰다. 그리스 권력자와 달리 황제를 신으로 받들면서 신전에 안치했다는 점도 로마의 특징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높이 위치했던 히룬
   
   도시 내 공공시설인 히룬은 그리스·로마 모두에서 볼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다. 죽은 자의 뼈와 생전의 유품들을 함께 묻은 집단 공동묘지로 현대판 위령 전몰기념관에 해당한다. 그러나 거주민 모두로부터 ‘신’적 존재로 숭배됐다는 점에서 현대 기념관과 구별된다. 규모 면에서 히룬은 아주 작다. 큰 기둥이나 받침대로 이뤄진 신전인 아고라나 목욕시설에 비하면 작은 창고 수준에 그친다. 따라서 소멸되기 쉽다. 그리스·로마 도시가 아직도 살아남게 된 것은 ‘무게와 크기’에 기인한다.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옮길 수가 없다. 잘 다듬어진 대리석은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원형 대리석은 올리브기름 짜기 맷돌로 안성맞춤이다. 사각형 대리석들은 집과 방어벽 재료로 변신했다.
   
   터키 고대도시 사갈라소스(Sagalassos)는 히룬 연구의 보고로 통한다. 1800여년 전 로마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갈라소스는 히룬의 위치는 물론 히룬 주변 장식과 관련된 유물도 갖춘,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다. 지중해에 인접한 터키 제3의 도시 안탈리아(Antalya)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산속에 있다. 높이 1500m의 고산지대로, 멀리서 차로 들어가면서부터 분위기가 느껴진다. 급경사의 황무지 산을 배경으로, 최근 복원된 듯한 고대 건축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고대도시에 관심이 있다면,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네스코 권위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모르는 세계적 국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미쉐린이 모르는 골목길 맛집이 있듯이, 유네스코 영역 밖의 세계적 문화유산도 많다. 사갈라소스는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에 비견될 만한 아름다운 도시다. 그러나 찾는 사람 하나 없는 정막한 공간이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혼자 천천히 관찰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사갈라소스에 처음 들른 것은 7년 전인 2012년이다. 이후 거의 매년 찾아가지만 처음 느꼈던 탄성과 감동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항상 강조하지만 고대도시에는 욕(欲)과 속(俗)이 모르는 영(靈)과 혼(魂)이 표류한다.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인류의 흔적을 대하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세계로 빠져든다. 고대도시는 머리가 아니라 인간 본능에 기초한 공간이다. 신이 24시간 함께하고, 외부 침략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상시 존재하는 상황에서 구축된 도시다. 한번이라도 경험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신비한 공간이다.
   
   
▲ 페라라 교회 담에 새겨진 2차대전 전몰자 기념비(왼쪽). 고대 그리스 전사(戰士)가 새겨진 도기. 전사(戰死)할 경우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사갈라소스의 10대 무명용사들 묘
   
   사갈라소스의 기원은 기원전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 때부터다. 헬레니즘문화권에 편입되면서 동과 서를 잇는 도시로 급성장한다. 이후 로마와 비잔틴을 거쳐 이슬람권에 흡수된다. 도시 기능이 상실된 것은 8세기부터다. 고고학적 고대도시로 태어난 것은 불과 1990년대다. 현재 복원된 도시 건축물의 대부분은 로마 당시 모습에 기초한 것이다. 히룬도 로마 당시 건립된 건축물이다. 사갈라소스는 계단형 도시다. 황무지인 흰 산을 배경으로 언덕 위 빈 공간에 각종 건물을 세운 뒤, 다시 바로 밑 공간에 다른 용도의 건물을 세웠다. 수직으로 내려간 언덕 계단은 분수를 통해 이어진다. 믿기 어렵지만 사갈라소스는 배경이 된 황무지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유지됐다고 한다. 물은 도시 건립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도시 규모를 보면 최소한 1만명의 상주 인구는 가졌을 듯하다. 어디서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왔는지는 수수께끼다.
   
   사갈라소스 히룬은 정면으로 남쪽을 보면서 산을 등지고 있다. 작지만 깊은 그 무엇이 느껴진다. 그 옛날 사갈라소스를 지켰던 용사들의 결의와 권위라고나 할까. 무명용사를 찬미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히룬 받침대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코와 입술 사이를 보면 10대 여성들이다. 망자가 된 무명용사들 대부분도 10대들이라 추측된다. 그리스·로마 조각의 특징이지만, 코와 입술 사이가 아주 좁다. 젊다는, 아니 어리다는 말이다. 보통 50대부터지만 나이가 들면서 코 아랫부분의 살이 아래로 처진다. 코와 입술 사이의 좁은 간격은 그리스·로마 조각에서 느껴지는 애절함의 원인 중 하나다. 모두 일찍 저세상으로 갔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인들은 젊을 때 죽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이 일찍 좋은 곳에 데려간다는 의미에서, 영광이자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사갈라소스 히룬의 특징 중 하나는 위치에 있다. 도시 맨 꼭대기에 들어서 있다. 제우스신전과 로마황제신전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공간이다. 무명용사들의 위령비가 제우스와 로마 황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터키권 고대도시의 대부분은 산 위에 들어서 있다. 도시 바로 뒤는 비상용 피난처인, 산 정상 아크로폴리스다. 신전의 경우 들어설 공간의 방향과 높이가 중요하다. 출입구가 동쪽이냐 아니냐가 핵심이다. 그러나 최고 정상 자리가 반드시 제우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우스를 포함한 12신은 모두 평등하다는 게 그리스·로마 문화의 특징이다. 제우스가 올림푸스 총사령관이기는 하지만 신과의 관계일 뿐 인간과는 무관하다. 제우스라도 12신 중 한 명으로 대우받을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처럼, 도시 수호신인 아테네가 최고 높은 공간의 중심에 들어선 경우도 많다. 사갈라소스 히룬을 보면, 더 이상 더 높은 곳에 들어선 신전이 없다. 히룬 자체가 사갈라소스 수호신인지 착각할 정도다. 고원지대의 사갈라소스는 난공불락 도시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명성을 알고 있던 알렉산더는 용이주도한 준비 끝에 새벽 기습작전으로 단 하루 만에 사갈라소스를 점령했다. 추측건대 히룬은 알렉산더 점령이 이뤄지기 훨씬 이전에 이미 건립된, 불패의 상징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신이 아닌 인간을 가장 높은 곳에 뒀다는 점에서 사갈라소스의 남다른 기상이 느껴진다.
   
   워싱턴 알링턴국립묘지는 현대판 사갈라소스 히룬이다. 심야에 링컨기념관을 지나 메모리얼(Memorial)다리를 건널 때 알링턴국립묘지 한가운데를 지키는 불빛을 볼 수 있다. 24시간 워싱턴을 수호하는 용사들의 영과 혼이 깃든 불빛이다. 이곳에서도 무명용사의 무덤이 중심에 있다. 높이 3m, 가로 5m, 세로 3m 정도의 고대 그리스풍 대리석 무덤이다. 사갈라소스 히룬이 그러하듯, 작지만 세상 그 어떤 조형물보다도 성스럽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품격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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